주범은 놓치고, 주범에게 속은 지적장애인 여성만 잡은 경찰관. 그는 법정에서 ‘부실수사’ 가능성을 사실상 시인했다. 경찰이 피고인의 지적장애 사실을 의심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이를 놓쳐버렸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3단독(법관 남민영)은 24일 서울 강서구 오피스텔 전세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적장애인 여성 유나비(29세, 가명)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이날은 유나비를 직접 만나 수사했던 서울강서경찰서 A 수사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A 수사관은 유나비의 지적장애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경찰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진 유나비가 혼자서 전세사기를 계획하고 주도했다고 ‘확신’했다. 유나비를 주범으로 생각한 나머지 ‘진짜 주범’인 남편 윤지훈(36세, 가명)을 놓치고 말았다.
이후 검찰이 유나비를 주범으로 ‘단독’ 기소하면서, 유나비 혼자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왜 유나비의 지적장애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는가.
유나비는 지적장애와 상관없이 전세사기를 주도할 능력이 있는가.
그것이 이날 재판의 쟁점이었다. 검사는 “유나비가 조사 과정에서 경찰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A 수사관에게 집중적으로 물었다. A 수사관은 “유나비가 범행 과정에 대해 상세히 진술을 해, 답변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보이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다.
검사는 “유나비가 전세사기의 핵심구조를 이해했다고 본 이유”에 대해 묻자, A 수사관은 이렇게 답변했다.
“당시에 모텔 등을 돌아다녔던 피의자 유나비가 자수를 해서 바로 조사를 해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범행 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피의자의 진술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사 당시) 저의 질문에 피의자 유나비가 구체적으로 진술을 하면서 그거(수법)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에 대해 잘 알아볼 시간이 없어서 피의자의 진술에 의존했다는 말. 경찰의 부실수사를 사실상 인정하는 ‘자백’에 가까운 답변이다.
상당 기간 남편 윤지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유나비는, 경찰 조사 당시 ‘다 남동생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엉뚱한 자백을 했다. 모두 윤지훈이 지시한 ‘멘트’였다.(관련기사 : <“그 남자를 사랑했어요” 전세사기범이 된 지적장애인>)
이에 대해 A 수사관은 법정에서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조사 당시에는 자수하러 온 피의자 유나비가 굳이 거짓 진술까지 하면서, 본인과 혈연관계에 있는 친동생을 공범으로 만드는 취지로 진술할 것이라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유나비의 진술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믿었다면, 바로 남동생을 불러서 조사했어야 한다. 하지만 A 수사관은 유나비의 남동생을 직접 조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심지어 전세사기 피해자는 참고인 조사에서 A 수사관에게 “유나비가 일반인에 비해 지적 능력이 좀 떨어진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구두 확인 외에 다른 절차를 통해 유나비의 장애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관련기사 : <“집주인이 이상해요” 피해자는 알았고 경찰은 몰랐다>)
구두 확인 당시 유나비는 ‘당신은 발달장애인입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이는 발달장애인의 의미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한 대답. 유나비는 ‘나는 지적장애인인데 발달장애인이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답했다’는 거였다.
유나비는 이미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지적장애인이었지만, 경찰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기회는 또 있었다. 피의자 조사 당시 유나비는 피의자신문조서에 자필로 이렇게 썼다.
“대전역에서 남동생한테 보증금으로 줘어을 때 남동생이 인천 간다고 했습니다. 공기계는 부산역에서 남동생이 빼았습니다.”

성인이 작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삐뚤빼뚤한 글씨체와 곳곳에 맞춤법이 틀린 문장. 이 자필 조서에 대해서도 A 수사관은 “유나비가 작성한 문장의 전반적인 내용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지적 능력에 이상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어 유나비 측 변호인은 A 수사관이 발달장애인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질문했다.
유나비 측 법률대리인(박민서) : “법률상 발달장애인의 구체적인 종류가 어떻게 되는지 수사 당시에 인지하지 못했나요?”
A 수사관 : “구체적인 법 조항까지는… 보통 그렇죠.”
(…)
유나비 측 법률대리인(임한결) : “발달장애인은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사람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세요?”
A 수사관 : “심하면 그럴 수 있고, 경청하면 충분히 (조사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행법상 피의자가 발달장애인인 경우 발달장애 전담 경찰관 및 검사가 조사하는 게 원칙이다. 또 ‘신뢰관계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이 유나비의 지적장애를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유나비는 두 가지 권리를 모두 보장받지 못했다.
이날 재판에서 판사도 직접 A 수사관을 향해 질문했다. 판사는 “20대 중후반 여성이 휴대폰이 없고, 노숙인 쉼터에 있고, 신분증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로 수사를 받으러 오는 게 일반적인 일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A 수사관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답했다.
유나비 측 법률대리인 박민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이날의 증인 신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유나비가 전세사기를 혼자서 계획하고 주도할 수 없다는 증거들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경찰이 이를 지나쳤습니다. 수사 단계에서 아무런 조력을 받지 못하면서 유나비는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만 한 상황입니다. 이번 증인 신문을 통해 ‘유나비가 전세사기 수법을 이해하고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을 걸로 기대합니다.”
현재 유나비 측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다음 재판은 4월 28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