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여성이 사기결혼 피해자에서 전세사기범이 된 기막힌 사건은 한 통화에서 출발한다. 아래 영상의 목소리를 잘 들어보길 바란다.
허스키하면서도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운 목소리. 여성일까, 남성일까.
“남편 목소리예요. 제 휴대전화를… 가져가서 본인이 직접… (세입자와) 통화를 한 거예요. 목소리도 바꿔서… 여성 목소리를 흉내 내고요. 제가 옆에 있기는 있었는데… (남편이) 조용히 하고 있으래서… 조용히 있었어요.”
지적장애인 유나비(가명, 여성, 29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지적 능력(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을 갖고 있다.
남편은 여성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까지 무엇을 숨기고 싶었을까. 그 비밀을 알기 위해선 6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물세 살 유나비는 독립을 꿈꿨다. 뇌전증을 앓는 아빠와 지적장애인 엄마, 그리고 두 살 어린 비장애인 남동생과 함께 한 집에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 집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집에서 저랑… 엄마만 돈을 벌어왔어요. 그래서 아빠가 술 먹고 맨날… 엄마 때리는 것도… 너무 보기 싫었고, 남동생이 돈을 뺏어가는 것도 너무 싫었고, (남동생한테) 핸드폰… 뺏기는 것도 너무 싫었고.”
이 집에선 여자들만 돈을 벌어왔다. 유나비는 한 협회에서 행정보조 업무를 하면서 약 200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하루는 데이팅앱에 접속했다. 의지할 곳 없는 마음과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다. 앱에서 만나 얼굴도 모르는 상대가 가족보다 내 마음을 더 알아주는 듯했다. 그런 상대가 갑자기 소액 투자를 권했다.
“10만 원만 투자하면 3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순간 혹했다.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50만 원뿐. 유나비는 그중 40만 원을 투자했다. 투자금을 금방 돌려준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매일같이 “돈을 돌려달라” 요구하자, 상대는 투자회사 이사를 연결해줬다. 그 사람이 바로 윤지훈(가명, 남성, 36세)이었다.
윤지훈은 유나비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제안을 했다.
“투자금 돌려받고 싶으면, 인천에 있는 회사로 오세요. 투자회사 직원으로 등록을 해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돈을 꼭 돌려받아야만 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40만 원일지라도, 그에게는 전 재산과도 같은 돈이었다.

유나비는 인천에 있는 투자회사로 직접 찾아갔다. 그곳에서 윤지훈을 만났다. 2020년 5월의 일이다. 윤 씨는 아이돌을 떠올리게 하는 준수한 외모를 지녔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할 정도로 행색도 화려했다. 그리고 화려한 게 또 있었다. 바로 전과 이력. 윤지훈은 사기 전과 9범(2022년 기준)이었다. 물론 당시 유나비는 그런 역사(?)를 몰랐다.
윤지훈은 곧바로 유나비에게 접근했다. 그는 취직을 빌미로 유나비의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 재직증명서 그리고 휴대전화까지 모두 가져갔다.
그리고 유나비의 마음마저 가져갔다. 다정한 말투로 칭찬을 해주거나, 좋아하는 디저트와 음식을 자주 사줬다. 유나비는 윤지훈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꼈다.
“처음 만났는데 얼굴이… 정말 제 스타일이었어요. 살면서 그렇게 잘생긴… 사람을 처음 봐서… 다른 세계 사람 같았어요. 성격도 다정하니까… 제가 좋아했죠. 윤지훈이 저를 좋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지훈은 그 마음을 이용했다. 2021년 윤지훈은 유나비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투자금 40만 원을 돌려받으려면, 저와 혼인신고를 해야 합니다.”
왜 혼인신고를 해야 하는지 유나비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윤 씨에게 호감을 느꼈던 유나비는 마음이 흔들렸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던 차에 그를 한번 믿어보고 싶었다.
“윤지훈이 롤렉스, 디올,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를… 보여줬어요. 차도 포르쉐, 람보르기니 있다고 직접 보여주니까… 성공한 사업가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제게 ‘내가 이렇게 돈 많고 잘 사는데, 네 돈 뺏어갖고 뭐하겠냐, 내가 이런 제안을 하는 거는 다 너 잘 되라고 해주는 거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사랑에 목말랐던 유나비는 더 빨리 더 깊이 윤지훈에게 빠져들었다. 결국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2021년 5월 12일, 윤지훈과 유나비는 혼인신고를 했다. 유나비는 윤 씨 없이 혼자 구청을 찾아가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호감이 있으니까… 혼인신고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혼인신고가… 그렇게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윤지훈은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유나비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지시했다. 사무직 일을 그만둔 유나비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다. 택배 상하차부터 식품·화장품 공장 생산직까지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유나비는 일을 오래하지 못하고 자꾸만 ‘짤렸다.’ 매달 유나비가 버는 돈은 약 50만 원뿐. 생활비 10만 원을 제외한 모든 돈을 남편 윤 씨가 가져갔다. 유나비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본가가 있는 충북에서 경기 수원시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이때도 남편과는 함께 살지 않았다.
빚이 쌓여갔다. 남편 윤 씨의 지시로 빌린 대출금만 약 1600만 원. 유나비는 이 돈을 모두 윤 씨에게 넘겼다.
남편은 아내를 아예 사기꾼으로 만들었다. 윤 씨는 소형가전을 렌탈한 후 중고거래로 되파는 소위 ‘렌탈깡’을 하거나, 새 핸드폰 5개를 개통한 후 중고로 파는 ‘폰깡’을 저질렀다. 모두 아내 유나비 이름으로. 이때 유나비 앞으로 생긴 빚만 1500만 원에 달한다.
“윤지훈이 소형가전을 직접 쓸 거라면서… 물건들을 빌렸어요. 당시에는 중고거래로… 되파는 사기를 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윤지훈이 제게 너무 다정한 사람이라서…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윤지훈이 ‘돈을 벌어오라’고 구박해도… 나중에는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제게 말했으니까요.”
죄는 남편이 저질렀지만, 시달리는 건 유나비였다. 유나비는 영문도 모른 채 채권자와 렌탈업체로부터 납부 독촉 연락을 받았다. 검찰에 불려가 조사도 받아야 했다.

윤 씨는 유나비의 가족들에게도 접근했다. 신혼집 전세자금과 사업자금이 필요하다는 명목이었다. 유나비의 엄마와 남동생은 6050만 원 상당의 대출을 받아 윤 씨에게 건넸다. 아버지 역시 갖고 있던 땅을 팔아, 약 1억 8000만 원의 돈을 ‘사위’인 윤 씨에게 넘겼다.
남편은 ‘처가’ 가족들의 은혜를 사기로 갚았다. 그는 유나비 가족들 이름으로도 약 5000만 원 상당의 ‘렌탈깡’과 ‘폰깡’을 저질렀다. 유나비 가족들이 윤 씨로부터 당한 사기 피해액은 무려 3억 원에 달한다.
뒤늦게 윤 씨의 수법을 눈치챈 가족들은 2021년부터 그를 수차례 고소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과는 무혐의(증거불충분). ‘가족 간에 일어난 범죄’란 이유로 윤 씨가 무혐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루아침에 유나비와 그의 가족들은 빚더미에 앉았다. 이때까지 윤지훈과 유나비는 단 하루도 같이 산 적 없었다. 당장 이혼소송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유나비는 윤지훈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결혼 전에) 집에서 하녀… 생활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엄마, 아빠, 동생한테 벗어나서… 혼자 살 수 있으니까… 사실 그게 너무 좋았어요. 당시에 제 옆에… 그 사람(윤지훈)밖에 없었어요. 친구도 없었고… 부모님이랑도 (윤지훈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았고. 동생이랑은 말할 것도 없고. 완전히 다… 사이가 나빠졌거든요. 생활에 있어서 윤지훈이 (가족들과 다르게) 저를… 간섭하지 않으니까 좋았어요.”
2023년의 어느 날, 윤지훈은 휴대전화로 네이버 부동산 카페 화면을 보여주며 유나비에게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이 일 하면 돈 벌 수 있는데 한번 해볼래?”
윤지훈이 설계한 새로운 사건은 다름 아닌 ‘전세사기’였다. 물론 이번에도 ‘총대’를 메게 될 사람은 윤 씨가 아니라 유나비였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유나비는 윤지훈을 믿었다. 비록 혼자서 대전에 있는 고시텔에 살고 있지만, 윤 씨가 방세 29만 원을 대신 내주는 것도 고마웠다. 윤 씨는 유나비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지시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부동산 가서 도장 찍고 와.”

유나비는 2023년 8월 14일, 남편의 지시에 따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약 5평짜리 오피스텔 한 곳을 매입했다. 매입금은 1억 4600만 원. 하지만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부동산 매매금과 임대차보증금 액수가 차이가 크지 않아 전세 세입자를 승계하는 조건으로 오피스텔을 사들인 것. ‘무자본 갭투자’ 수법이었다.
“당시엔 전세사기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남편이 하라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새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은 그대로 윤지훈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전 세입자는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윤지훈이 주도한 범행이지만, 그의 이름은 서류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류상 집주인은 유나비니까. 윤 씨는 자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약 1억 원을 벌었다.
윤지훈은 잠적했다. 그가 사라지기 전 유나비의 핸드폰, 신용카드, 신분증을 다 빼앗았다. 그리고 현금 300만 원과 새 핸드폰을 건네며 이렇게 지시했다.
“지금 당장 청주로 가. 이 돈으로 새 옷도 사 입고.”
유나비도 도망자 신세가 됐다. 대전-청주-대구-원주-경주-진주-전주-여수-수원-천안-부산…. 모두 윤지훈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윤 씨가 문자메시지로 모텔 위치를 찍어주면 그곳으로 이동해 혼자 지냈다. 현금 300만 원은 금세 차비로 다 써버렸다.
“혼인신고 하고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지니까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일단 제 옆에는… 그 사람(윤지훈)밖에 없었어요. 그 사람이 있으면 핸드폰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일단 그 사람을 믿은 거예요.”
각자 전국을 돌던 이 둘은 약 4개월 뒤 강원 속초시에서 만났다. 경찰의 눈을 피해 한 아파트에 숨어 살았다. 함께 살지만 각방 생활을 했다. 스킨십도 일절 없었다. 거기서도 남편 윤 씨는 유나비에게 “온라인 게임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오라”고 지시했다. 참다못한 유나비의 불만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남편이) 저보고 게임을 못한다면서… ‘바보’, ‘멍청이’라고 구박했어요. 한바탕 싸우고… 새벽에 부산으로 도망갔어요. 윤지훈이 자수할 거면… (아무 연고가 없는) 부산으로 가서… 자수하라고 말했거든요. 자수할 때도… ‘남동생 지시로 전세사기를 저질렀다’고 답하라고… 저를 앉혀놓고 여러 번 훈련시켰어요….”

2024년 3월 어느 밤, 유나비는 부산에 도착했다.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나비는 곧장 부산동래경찰서로 가 자수를 했다. 남편의 지시에 따라 거짓 답변을 했다. “남동생 지시로 전세사기를 저질렀다”고.
문제의 오피스텔이 위치한 주소지에 따라, 서울강서경찰서가 사건을 넘겨받았다. 2024년 4월 4일 피의자 조사.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경찰 수사관은 유나비에게 물었다.
- 경찰 : “피의자는 발달장애인법에 규정하는 ‘발달장애인’에 해당하나요. 의사소통이나 의사 표현에 어려움이 있나요?”
- 유나비 : “아니오.”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유나비는 왜 아니라고 대답한 걸까.
“저는 지적장애인인데, 경찰이 ‘발달장애인이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대답했어요.”

검찰은 2024년 6월, 유나비를 강서구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단독 기소했다.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진짜 주범’인 윤지훈은 당시 수사 대상에 오르지도 않았다. 검찰은 2025년 8월 첫 재판에서야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알았다.
현재 유나비 측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은 진행 중이다.
유나비의 마음은 복잡하다. 후회, 자책, 미움, 원망, 동경…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윤지훈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지금 윤지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허무함이에요. 내게 (사기라고) 설명만 해줬어도… 제가 이렇게까지 (재판을 받는 처지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 그때 윤지훈이 저를 (이성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유나비는 현재 임시 주거지로 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노숙인자활시설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윤지훈 꿈을 꿔요. 꿈에서 윤지훈은 위험에 빠진 저를… 구해주기도 하고요. (외모가) 제가 꿈꾸는 이상형이랑 가까워서… 꿈에 나오는 것 같아요. (윤지훈과) 비슷하지만 (행실이) 바른 사람이… 제 앞에 또 나타났으면 좋겠죠.”
한 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유나비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지적 능력에, 이미 10년 전 보건복지부에 등록까지 한 장애인이다. 하지만 경찰은 유나비를 직접 수사하고도 그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경찰은 놓쳐버린 이 사실을, 일찍부터 눈치 챈 사람이 있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그 사람을 만났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