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주인은 더듬으며 말했다.
“민증… 민증이요…?”
어수룩한 말투. 평소에도 전화 통화보다 문자메시지를 선호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나. 차분히 다시 설명했다. 실물 주민등록증을 보고 부동산 계약서상 집주인 주민등록번호와 같은지 확인하고 싶다고.
질문할 때마다 짧은 공백이 생겼다. 집주인은 자꾸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상대의 무응답에 몇 번이나 “여보세요?”를 외쳐야만 했다. 여러 번 되물은 끝에 새 집주인에게 간신히 들은 대답은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전화할게요”뿐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문자메시지로 소통할 때면 집주인은 딴 사람처럼 굴었다. 전화 통화에서는 대화를 회피하려고만 하던 사람이, 문자메시지로는 친근감이 묻어나는 스몰토크와 묻지도 않은 TMI(Too Much Information)까지 보냈다. 마치 ‘새로운 자아’가 등장하는 듯했다.
“집주인 변경 잘 하셧을까요?제가 주6일 물류센터에서 3년 전부터 정규직으로 일해서오후 7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하구 평일 근무시간에는 자고 그래서결혼도 했구여바로바로 답못드린점은 죄송해여^^”
(2023년 8월 21일 유나비가 A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취업을 위해 혼자 서울에 온 30대 여성 A 씨. 직장과 가까운 서울 화곡동의 한 오피스텔에 전세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약 3개월 후, 이삿날이 찾아왔다. 새 집주인한테 전세보증금 1억 4600만 원을 돌려받기로 한 날. 오후 2시 약속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직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보다 어수룩한 새 집주인을 먼저 걱정했다.
서울에서 집주인의 주소지인 대전으로 달려갔다. 이때까지도 새 집주인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삿날 오전까지도 별 문제 없이 소통했으니까. 집주인 주소지에 도착했다. 회색 빛깔의 건물. ‘○○빌딩 A동.’ 집주인 주민등록증에 쓰여 있던 주소가 맞았다.
하지만 건물 귀퉁이에 걸린 초록색 간판을 보자,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고시텔’
빌딩이 아니라 고시텔이었다니. 설마 뉴스에서나 보던…. 집주인이 ‘산다는’ 고시텔 문을 두드렸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옆방 사람에게 물었다. 이 사람 어디 갔냐고. 옆방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 방 주인이요? 새벽에 짐 싸서 방 키만 두고 사라졌는데?”
그때 알았다. 이 모든 게 계획된 전세사기였다는 걸. 2023년 11월 23일, 피해자 A씨가 겪은 일이다.

그의 직감이 맞았다. 전화 통화만으로도 어수룩함이 느껴졌던 새 집주인 유나비(29세, 가명).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지적장애인 여성이다.
“장애인이라고 확신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나비의 주민등록증 사진도 받아보고 직접 통화도 나눴을 때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전세사기 피해자 A 씨)
세입자와 의사소통도 어려운 지적장애인 유나비가 수법도 이해하기 어려운 전세사기를 혼자서 기획했을까? 주범은 따로 있다. 유나비의 남편 윤지훈(36세, 가명)이다.
사기 전과 9범의 윤지훈. 유나비와의 결혼부터 사기였다.
“투자금 40만 원을 돌려받으려면, 저와 혼인신고를 해야 합니다.”
당시 유나비는 뇌전증을 앓는 아빠와 지적장애인 엄마, 그리고 두 살 어린 비장애인 남동생과 함께 한 집에 살았다. 이 집에선 여자들만 돈을 벌어왔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폭력이 유나비의 일상을 옥좼다.
데이팅앱으로 만난 남자는 유나비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전 재산과 같았던 돈을 보냈다. 얼마 뒤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하자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던 유나비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2021년 5월 12일 유나비는 혼자서 구청을 찾아가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윤지훈을) 처음 만났는데 얼굴이… 정말 제 스타일이었어요. 살면서 그렇게 잘생긴… 사람을 처음 봐서… 다른 세계 사람 같았어요. 성격도 다정하니까… 제가 좋아했죠. 윤지훈이 저를 좋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지훈의 본색은 금세 드러났다. 그는 유나비 앞으로 대출을 받아 챙겼다. 소형가전을 렌탈한 후 중고거래로 되파는 소위 ‘렌탈깡’을 하거나, 새 핸드폰 5개를 개통한 후 중고로 파는 ‘폰깡’을 저질렀다. 모두 아내 유나비 이름으로. 이때 유나비 앞으로 생긴 빚만 1500만 원에 달한다.
그러다 전세사기까지 설계했다. 이번에도 모든 책임은 서류상 아내 유나비에게 돌아가도록.(관련기사 : <“그 남자를 사랑했어요” 전세사기범이 된 지적장애인>)

A 씨의 이삿날, 유나비는 대전에 있는 신협을 찾았다. 그리고 세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을 A 씨에게 보내지 않고, 남편의 지인 통장으로 전액을 보냈다. 윤 씨는 은행 건물 건너편에 있는 커피숍에 앉아 유나비를 감시했다.
“세입자한테 전화가 오면… 윤지훈한테 카톡으로 바로 알렸어요. 윤지훈이 답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말했어요. 문자도… 윤지훈이 보낸 카톡을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해서… 세입자한테 전달했어요…”
윤지훈이 유나비에게 뒤집어씌운 전세사기 사건은 한 건이 아니다. 또 다른 사건에선 아예 아내 목소리를 흉내 내 직접 피해자와 통화하기도 했다. 여자인 척 목소리를 바꿔 상대를 속인 것이다.
이 같은 수법을 통해 윤지훈이 ‘먹튀’한 돈이 약 1억 원. 윤지훈이 주도한 범행이었지만, 그 어떤 서류에서도 그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류상 집주인은 유나비니까. 채무 역시 유나비 앞으로 잡혔다.
챙길 것을 다 챙긴 윤 씨는 유나비의 핸드폰, 신용카드, 신분증을 다 빼앗았다. 현금 300만 원과 새 핸드폰을 건네고, 한마디를 남긴 채 잠적했다.
“지금 당장 청주로 가. 이 돈으로 새 옷도 사입고.”
유나비도 도망자 신세가 됐다. 윤 씨가 문자메시지로 모텔 위치를 찍어주면 그곳으로 이동해 혼자 지냈다.
“사기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남편이 하라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같은 시각, 전세사기 피해자 A는 경찰서를 찾았다. 2024년 1월 서울강서경찰서 참고인 조사에 출석한 A 씨. 그는 담당 수사관에게 “유나비가 일반인에 비해 지적 능력이 좀 떨어진다고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문자메시지 역시 유나비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는 말도.

모든 것은 피해자 A 씨의 직감 그대로였다. 유나비는 이미 10년 전 보건복지부에 등록을 마친 장애인이다. 경찰은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인 것 같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듣고도 사실상 묵살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전화 통화만으로도 눈치챈 유나비의 지적장애 사실을, 그를 직접 만나 수사한 경찰은 놓쳐버리고 만 것.
A 씨는 전세금을 갖고 도망친 윤지훈만큼이나 경찰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경찰의 수사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느꼈어요. 신고하러 갔을 때 경찰이 저보고 ‘강서구에 전세사기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직접 증거를 갖고 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신고 못하고 돌아왔거든요. 그때부터 경찰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참고인 조사 받을 때도, 경찰이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남편 윤지훈은 수사망을 유유히 벗어났다. 경찰은 유나비에게 죄를 묻는 데만 집중했다.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도, 유나비의 이름과 얼굴 뒤에 숨은 ‘또 다른 자아’의 존재도 놓쳐버린 채 말이다.
2024년 6월 검찰은 지적장애인 유나비를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단독’ 기소했다. 검찰은 2025년 8월 첫 재판에서야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A 씨는 2024년 5월경 HUG(주택도시보증공사)를 통해 전세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았다.
“전세사기 당하고 피가 차가워질 정도로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너무 괘씸해서 (집주인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고 싶었습니다.
HUG 통해서 전세보증금 돌려받고 나서는 잊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집주인(유나비)이 지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들으니까 양가적인 감정이 드네요. (유나비가) 불쌍한데, 피해자인 제가 도와주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합니다.”
현재 유나비는 임시 주거지인 사회복지시설에서 혼자 지내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유나비 측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유나비는 전세사기 피해자 A 씨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밝혔다.
“너무 죄송하다는 말… 하고 싶어요… 저로 인해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 거니까… 너무 죄송하다는 말… 꼭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 저도 또 열심히 살고 싶어요….”
유나비의 지적장애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경찰의 입장은 무엇일까. 기자는 지난달 22일 유나비를 직접 수사했던 경찰관과 통화했다. 그는 기자의 어떤 질문에도 “답변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다. 서울강서경찰서는 지난 9일 보내온 서면답변서를 통해서도 “제3자에게 수사 관련 내용에 대해 답변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답을 반복했다.
기자는 지난 5일 윤지훈의 입장을 듣기 위해 그가 수감돼 있는 인천구치소로 향했다. 윤지훈은 2025년 4월, 또다른 전세사기 사건으로 징역 5년의 형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당일 윤지훈이 접견을 취소하면서,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반론을 요청하는 편지도 윤지훈 앞으로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윤지훈은 지난해 11월 14일 유나비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때 법정에서 이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유나비가 ‘자기도 이제 일하기 싫고 오빠(윤 씨 본인) 따라서 같이 도망 다니고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해서 본인이 선택한 겁니다.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 같이 한 것이지, 제가 강제로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시켜서 했다, 이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