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곁을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발달장애인이 너무 많았습니다.“ (최은숙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사법체계상 발달장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제도는 두 가지가 있다.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검사 제도와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

지난 기사에서 살펴봤듯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검사 제도는 아직 허점이 많다. 형식에 그친 전담 경찰관 숫자와 떨어지는 발달장애 전문성, 그리고 아직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전담 검사의 숫자까지. 개선해야 할 지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관련기사 : < ‘제가요?’ 한 경찰서에 90명까지 있지만… “본인도 몰라”>)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검사 제도는 아직 허점이 많다. ⓒ주용성

그렇다면,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는 잘 운영되고 있을까. 이 제도는 발달장애인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하거나 법정에서 증언할 때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옆에 함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에서도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가 이슈가 됐다. 지적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염전 업주의 폭행과 협박 등으로 감금돼 무임금 강제노동을 당한 사건.(관련기사 : <돌아온 ‘염전노예’ 오빠의 첫마디… “니, 대학은 졸업했나”>)

그런데 검찰이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를 무시한 채 발달장애인 피해자와 가해자인 염전 업주를 대질조사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 피해자가 보호자나 조력자 등 동석자도 없이 가해자와 대면해 조사를 받아야 했던 것.

해당 사건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지난해 11월 재발 방지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발달장애인들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제도가 아무리 많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수사기관에서 이 사람이 발달장애인이란 사실을, 혹은 발달장애인으로 의심되는 경계선 지능장애인이라는 걸 식별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거든요.

발달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전문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대부분의 수사관들은 발달장애인들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을 겁니다.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에서도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가 이슈가 됐다. ⓒ픽사베이

여러 진정 끝에, 인권위는 최근 ‘발달장애인 방어권 미보장’ 문제를 주제로 직권조사를 진행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3월부터 약 2개월 동안, 전국 교정시설을 방문해 발달장애인 수용자 127명을 면담 조사했다. 그 결과 발달장애인 수용자(응답자)의 약 80%가 신뢰관계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27명 중 27명 정도가 신뢰관계인의 조력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대상자 중 글을 전혀 읽고 쓸 줄 모르거나,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신뢰관계인의 조력을 받지 못한 사례가 확인됐다.

면담 대상자 중에는 가정폭력, 가출, 보호시설 생활 경험이 있는 등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부모 모두 지적장애인 경우, 보호자가 고령의 조부모인 경우, 혼자 생활하던 중에 체포·구속된 경우 등으로 신뢰관계인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24직권0001000)

해당 조사를 담당한 최은숙 인권위 장애차별조사1과 조사관은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신뢰관계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누구인지도 구체적이지 않은 문제가 있지만, 그 전 단계부터 발달장애인들에겐 주변에 (도와달라고)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나 놀라운 조사 결과였습니다.

지지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들 주변에 있었다면, 발달장애인 수감자들이 구속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 아래 (곁을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발달장애인이 너무 많았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2023년 기준 정신적 장애인(정신질환+발달장애) 범죄자의 기소율은 54.8%로, 절반을 넘는다. 전체 범죄자 기소율(33.1%)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수치다. 구속 비율 또한 전체 범죄자에 비해 무려 2배가량 높다.(출처 :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형사소송절차의 개선방안 연구> 사법정책연구원, 2025)

‘전세사기 주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지적장애인 유나비(가명)는 약 4억 빚을 갚기 위해 매일같이 새벽 출근을 하고 있다. ⓒ셜록

특히, 사기죄에 연루된 정신적 장애인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23년 기준, 4년 전에 비해 2.5배가량 증가했다.(2019년 259명 → 2023년 665명) 보이스피싱, 전세사기 등에 발달장애인을 범죄 도구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걸로 추정되는 상황.

국선전담변호사 손영현 변호사는 범죄에 이용된 발달장애인들이 공범으로 형사처벌 받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발달장애인은 본인에게 범죄를 교사했던 주범에 대해 진술하는 게 잘 안 됩니다. 그 진술이 (수사기관이 보기엔) 왔다 갔다 하니까 ‘증거 부족’으로 보고, 오히려 주범이 무죄를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물론, 발달장애인들을 형사처벌에서 완전히 제외시키면 앞으로도 계속 ‘범죄 도구화’가 더 심하게 될 수 있죠.

결국은 수사기관이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발달장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범죄에 노출된 발달장애인을 ‘처벌하면 끝’이 아니라, 근원에 있는 주범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하죠.”

손 변호사는 책 <헌법을 수호하는 악마의 변호사>에서 “때론 누군가의 죄를 무거워지지 않게 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의 죄를 밝혀내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대로, 수사기관에 요구하는 건 지적장애에 대한 ‘진단’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지적장애를 파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사법체계상 절대 약자인 발달장애인의 방어권이 최소한 보장될 수 있으니까. 의구심이 들면, 최대한 방어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달장애인 수사 조력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별한 배려가 아닌, 장애인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정당한 권리다.

한 경찰관은 지적장애인에 대해 위와 같이 표현했다. ‘그들은 범죄현장에서 가장 늦게 도망치고, 가장 먼저 체포되며, 가장 빨리 자백한다’(Edwards&Reynolds, 1997에서 재인용)

– <지적장애인 피고인의 형사사법절차상 처우에 관한 연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2022

‘사랑에 빠진 죄’로 전세사기 주범이 된 유나비(가명)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주용성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보도한 지적장애인 유나비(29세, 가명) 역시 ‘전세사기 사건 주범’으로 법정에 섰다. 유나비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지적장애인 여성이다. 하지만 그는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제도도,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도 적용받지 못한 채 재판에 넘겨졌다.(관련기사 : <“집주인이 이상해요” 피해자는 알았고 경찰은 몰랐다>)

2024년 6월 검찰은 지적장애인 유나비를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단독’ 기소했다. 검찰은 2025년 8월 첫 재판에서야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알았다.

서류상 남편에 의해 전세사기 범죄에 이용당하고, 아무런 경제적 이득도 취하지 못했으며, 수사기관으로부터 방어권도 보장받지 못한 지적장애인 유나비. 그를 단죄하는 게 과연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일까?

묻고 싶다. ‘사랑에 빠진 죄’로 전세사기 주범이 된 그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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