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취재’도
이제 안녕이다

사회부 기자 생활 내내 가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몰래카메라를 종이 가방에 담았다. 언뜻 보면 정말 명함지갑 같다. 그래서 이름도 ‘명함 몰카’다. 쌀 한 톨만한 구멍 사이로 카메라가 있어 웬만해선 눈치채기 어렵다.

성범죄자나 쓸 법한 이 요물, 알고 보면 방송 기자들도 애용한다. 잠입 취재가 많은 사회부 사건팀이 그중 단연 으뜸이다. 나 또한 숱하게 몰카를 숨겨 쥐고 위장 취재를 했다. 환자로, 민원인으로, 혹은 학생으로. 몰카 인생, 사회부 방송 기자 생활도 이제 끝이다.

노트북을 보니, 애틋한 감정이 든다. 어느 기자에게나 노트북은 애증의 대상이지 싶다. 그간 얼마나 두들겼는지 키보드에 새겨진 글자가 다 흐릿하다. 중지와 검지가 주로 닿는 D, F, J, K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내 노트북, 나만큼 고생 많았다. 3년간 두 번이나 박살 났다. 기자 딱지를 단 이후 같이 자고, 울고, 웃은 이 노트북을 반납하려니 좀 짠하다. 이렇게 회사 물건을 한데 모으니 이제 실감이 난다. 정말 끝이구나, 탈출하는구나. 오늘은 종편으로 향하는 마지막 출근이다.

내 인생에 이제
다시 기자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 100일을 맞아 다시 찾은 서울 광화문. 기자가 아닌 시민으로서 바라본 언론은 더욱 암울했다. ⓒ 이희훈 기자

대책 없이 왜 퇴사를 해?

“너, 나 좀 보자. 뭐? 퇴사라고? 내 출입처 앞에 있는 카페 알지? 거기로 와.”

때마침 A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따로 전하려 했는데, 그동안 시간이 맞지 않았다. 공대 출신에 나이도 제법 찼던 나를, 입사 때 밀어준 장본인이라는 얘기를 듣고 술만 마시면 늘 충성(?)을 맹세했던 선배다. 가능성만 보고 나를 믿어준 고마운 분인데, 왠지 당신 안목에 똥물을 끼얹는 것 같아 미안했다. 야근을 핑계로 집에서 더 뭉개려 했지만 결국 이불을 박찼다. 선배를 보기 위해 두어 시간 빨리 광화문으로 향했다.

“특별한 대책이라도 있는 거야?”

커피에 입도 대기 전부터 선배의 질문이 쏟아졌다. 술만 마시면 얘기했는데, 지금껏 그냥 힘들어서 부리는 투정인 줄 아셨던 모양이다. 멋쩍은 웃음으로 분위기 전환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선배 눈빛은 변함없었다. 진지했다.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개국 멤버면서 그처럼 아량 있는 선배는 이제 몇 없다. 주중 주말 구분 없이 과업에 시달리는 와중에 후배 기자까지 챙기는 것은 사치였다. 그간 참 많은 선배들이 회사를 떠났다. 3년간 대략 스무 명쯤 나갔으니, 나는 이제 곧 스물하고도 첫 번째 타자다.

“기자가 안 맞나 봐요. 인생은 뭐, 어떻게든 돌아가겠죠. 여행이나 다녀오렵니다.”

‘웃으면서 떠나자’ 종전의 다짐을 되뇌었다. 푸념 섞인 퇴사의 변을 늘어놓아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쓴소리 담긴 진짜 퇴사 이유는 사표 내밀 때만 쏟아낼 작정이었다. 어찌 됐든 나는 떠날 사람이고, 이들은 계속 남을 것이다.

“무슨 소리야. 기자하겠다고 전공도 때려 치웠으면서. 잡소리 그만하고, 취재 덜하는 부서로 일단 옮겨달라고 해.”

“저만큼 부서 많이 옮긴 동기도 없는데, 부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딱히 계획도 없어 보이는 데 무슨..도망부터 치지 마라.”

‘도망치지 마라’ 정곡을 제대로 찔렸다. 퇴사의 강력한 동기는 도피가 맞다. 포장만 번지르르한 뉴스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기자들끼리만 알아주는 단독 기사, 시청률에 목맨 신변잡기 이야기, 추측성 말을 서슴없이 토해내는 시사 평론가들..다 싫다.

따지고 보면 사실이 아닌 뉴스도 태반이다. ‘관계자’ ‘취재원’이라는 표현으로 권력자들의 말을 재생산하는 일이 빈번했다. 팩트 확인도 없이 말이다. 창피했다. 약 반세기 전 프랑스였으면 단두대에 오를 각오는 해야 했을 거다. 2차 세계대전 말, 프랑스 정부는 나치에 부역한 기자들을 가혹하게 단죄했다. 톨레랑스, 관용의 나라 프랑스 얘기다.

“지쳤습니다. 선배. 그만하고 싶어요. 내년, 내후년이라도 바뀔 것은 없어 보여요.”

“곧 경력 채용이 뜬다고 하니까 이직해. 내가 좋게 입김 불어 줄게.”

선배가 내린 답은 이직이었다. 국제부나 편집부처럼 상대적으로 취재 부담이 덜한 부서에서 버티며 이직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지금껏 퇴사를 미룬 이유도 이직 가능성 때문이었다. 최소 경력 지원 기준 ‘3년 재직’ 조건만 충족하면 언제라도 나갈 심산이었다. 실제로 방송 기자 경력 공채 시즌이 되면 보도국 전체가 술렁인다. 주로 같은 종편으로 옮겼고, 운이 좋으면 지상파로 점프도 가능했다.

이직한들
뭐가 바뀔까요?

웃으며 떠나려는 계획은 엎어졌다. 선배에 제안에 대한 내 답은 인색했다. 속내가 드러나버렸다. 이직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 보였다. 발악을 하며 경력 지원 조건을 채웠지만, 정작 그 ‘3년 재직’을 되돌아보니 다 부질없었다. 다른종편이든 지상파든 큰 틀에서는 같았다.(지금의 JTBC라면 모르겠다.)

어차피 출입처로 출근할 것이고, 담당 영역 즉 ‘나와바리’ 기사만 써야 할 것이고, 뜨거운 감자에 오른 이슈만을 좇을 것이다. 때때로 업계만 알아주는 단독 기사도 써가면서. 게다가 이 모든 것을 1분 40초 안에 구겨 넣어야 한다.

끝내 선배의 회유는 통하지 않았다. 내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 나는 퇴사한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만을 쓰는 언론들. 사진은 2013년 7월 아시아나 항공 추락 사고 당시 취재진들의 모습이다. ⓒ 이명선 기자

우리는 왜 기자를 하는가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온 건 사회부 사건팀 MT였다. 즐거워야 하는 MT에 퇴사자가 가는 꼴이 우스워, 여태 참석을 피하고 있었다. 야근 당직이라는 핑계도 있었다.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 야근 짝꿍 선배 때문이었다. 인사라도 하고 오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정말 인사만 할 요량으로 택시를 타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선배, 왜 이제 왔어요! 기다렸어요.”

그래도 식구는 식구다. 문을 열자마자 팀원들이 박수로 맞아줬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지만 다행히 위기를 잘 모면했다. 그곳에는 선배 둘에 동기 하나, 후배들이 있었다. 늘 그렇듯 사회부 사건팀은 젊다. 대학 동아리 분위기 나는 곳도 사건팀이다.

‘머릿수만 채우자’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팀장이 내게 마이크를 넘겼다.

“뭐 잘할 게 있다고 MT까지 피하냐. 어디 한번 좌판 깔아줄 테니 실컷 말해봐.”

“잘 한 게 없어서 못 왔습니다. (웃음)”

“살 붙이고 일한 기간이 있는데, 그럼 되겠냐.”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못 이기는 척 결국 발언권을 넘겨받았다. 그래,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 어쭙잖게 퇴사 얘기는 안 하기로 했다. 최대한 알맹이 없는 말들로, 아름답게 퇴장하는 게 목표다. 의도대로 “그동안 고마웠다” “종종 보자” 등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로 시간을 축냈다.

역시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주거니 받거니 홀짝거린 술이, 애써 세운 방어벽을 무너뜨렸다. 피곤에 절어 있는 팀원들 모습에서, 내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봐왔던 내 거울 속 모습이다. 생기가 없다.

수습을 갓 뗀 후배들에겐 긴장한 모습이, 동기에겐 무력감 쌓인 자조가, 선배에겐 쓸쓸한 의무감이 보였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경력 최소 조건 ‘3년 재직’의 기록이 여기 다 있었다.

“죄송해요. 추하게 이런 모습 안 보이려고 했는데..”

기어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시선을 돌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어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흐느낌에 온몸이 들썩였다. 농담을 나누던 팀원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눈물은 주체가 안 됐다. 무너진 감정은 빠르게 감염됐다. 옆자리에서 그 옆자리로, 하나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 순간 모두가 훌쩍거리고 있었다.

내가 기자를 왜 했지?

갑자기 우리 존재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우리는 뿌듯하지도, 행복하게 하지도 않으면서 왜 이토록 기사를 무섭게 찍어내고 있지? 회사 잘 되라고? 조직에서 인정받으려고? 돈 때문에? 기자’님’이란 직함이 주는 사회적 지위 때문에?

3년간 마음속으로 물었던 질문들이 믹서기를 통째로 삼킨 듯 이리저리 뒤섞였다. ‘웃으며 퇴사하기’ 작전은 완벽히 실패다.

왜 종편을 떠났나

나는 종편에서 3년을 취재기자로 일했다. 버티기만 하면 언젠가 임원까지 단다는 개국공신 ‘공채 1기’로 2011년 10월 17일 입사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 17일 퇴사했다. 딱 3년을 일한 격이다. 당시에는 더 견딜 이유도, 힘도 없었다. 오직 경력 기자 지원 조건 ‘재직 3년’을 채우고자 달렸고, 완전히 연소됐다.

‘3년을 버텼는데
왜 이제 와서 그만 두나?’

정말 많은 사람이 물었다. 당시에는 잘 대꾸하지 못했다. 입사 초기에는 시키는 대로 하느라, 적응된 이후에는 장차 나아질 줄 알고, 2년~3년 차가 됐을 때는 딱히 대책이 없어서 퇴사를 주저했다. 계속 생각을 유보한 것이다. 질문은 뒤엉켜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만 갔고, 3년째 되던 해 폭발했다.

그리고, 2년이 다시 흘렀다. 슬프게도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 종편, 지상파는 대체로 그 모습 그대로다. 여전히 해직 기자는 복직을 못했고, 사람들은 SNS와 팟캐스트로 ‘뉴스 망명’을 떠났다. 

진실 탐사 그룹 <셜록>에서 못다 이룬 참기자의 꿈을 실현 중이다. ⓒ 이희훈 기자

가히 저널리즘의
실종 시대라 부를 만하다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 오랫동안 망설였던 이 기획을 통해 종편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을 풀어낼 생각이다. 때로는 내부고발을 하겠지만, 분노에 찬 비난만을 쏟아내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이 기획은 “종편에는 나쁜 기자만 있는가”라고 묻는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

현장에 남은 동료, 선후배, 그리고 나 자신. 우리 모두가 좀 더 좋은 기자가 되는 데 작은 주춧돌이 되면 좋겠다. 우리들의 ‘새로 고침’에 작은 힘이 됐으면 한다. 바람은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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