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뭐라도 꼭 하고 싶었나 봅니다. 제가 ‘하늘을 짓는 여자’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 말입니다. 유희와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를 알게 된 사람들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하나둘 모이고 나섰던 것처럼.
같이 밥을 짓겠다는 사람, 현장 배식을 돕겠다는 사람, 쌀과 농산물을 보내겠다는 사람, 후원금을 보태겠다는 사람, 그도 저도 아니면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홍보에 나서준 사람들까지. 덕분에 유희와 밥묵차는 십시일반의 작은 기적을 매일같이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유희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저는 그녀를 알았습니다. 이제 와서 제 작은 재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질문 끝에 남은 건, 결국 그녀의 삶을 기록하는 일뿐이었습니다.

사실은 조금 이기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과 뜻을 좇아가며, 제가 잃어버린 것을 찾고 싶다는 바람 말입니다.
인간의 선한 마음에 대한 신뢰.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 유희가 남긴 이야기에서 그것을 다시 찾고 싶었습니다. 그녀를 위인(?)으로 만들겠다는 거창한 생각만으로 시작했다면, 오히려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게 뻔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유희의 삶 속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구해가는 과정이라고 봐야 맞을 겁니다.
일대기가 아니라 인터뷰 형식을 취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녀에 관한 기억을 나눠준 사람들과 마주 앉아 묻고 답하며 그녀의 뜻을 되짚어가는 과정에, 독자들 역시 간접적으로 함께해주길 바랐습니다.
사실 유희라는 이름은 유희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희가 ‘거리의 사람들’을 지켜온 것처럼, ‘유희의 사람들’ 역시 유희를 지켰습니다. 인터뷰 형식을 선택한 이유에는, 그녀의 곁을 지켜온 사람들의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습니다.(첫 기사 : <프롤로그. 나는 그녀의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했습니다>)



취재에 석 달, 연재에 두 달이 걸렸습니다. 혼자 책상 앞에 앉아서 모니터 속 백지와 싸우며 두 달을 보내는 동안, 때로는 동굴에 갇힌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댓글이나 메시지로 공감해주신 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동시대 여성 활동가의 생애사를 이렇게 깊이 다룬 콘텐츠가 있었을까요?” (독자 댓글 중)
유희는 ‘밥묵차’에서 밥을 짓기 오래전부터, 노점상 동지들을 위한 밥을 지어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홀로 계신 노인이나 노숙인 등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밥주걱 대신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청중을 웃고 울리는 ‘명MC’였고, 길거리든 요양원이든 무대를 가리지 않는 가창력과 퍼포먼스의 ‘가왕’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전국노점상연합 최초의 여성 부의장이었다는 사실도 더 알리고 싶었습니다. 투쟁 현장에선 깡패들도 겁먹게 만들던 욕쟁이 언니, 동지들을 지켜야 할 때면 가장 먼저 달려나가 싸우던 든든한 싸움짱, 조직의 원칙 앞에서 절대 타협하지 않던 강철여인.
“이런 게 걸크러시지.” (독자 댓글 중)
유희 같은 사람은, 유희 이전에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언니’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걸,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컸습니다.

사실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혼자 생각한 목표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연재를 계기로, 유희의 영전에 상을 하나 올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거였습니다. 귀한 뜻을 남긴 운동가들에게 사후에 상을 드리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유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큰 조직에 속했던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아쉬움이 내내 남았습니다.
참 다행히도 바람은 이뤄졌습니다. 전태일재단은 제33회 전태일노동상 공로상의 주인공으로 유희를 선정했습니다. 1988년 제정된 전태일노동상은 “전태일이 그랬듯이 헌신과 연대를 가장 소중한 선정기준으로” 삼고 있는 귀한 상입니다.
지난해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기일에,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묘지 민족민주열사묘역 내 전태일 묘소 앞에서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지난해 여름 인터뷰를 통해 제게 기억을 나눠줬던 ‘유희의 사람들’도 함께했습니다. 인터뷰 이후 서너 달 만에 다시 만나는 얼굴들. 반가워 손을 잡고 웃다가, 문득 북받쳐 눈물도 훔쳤습니다.
유희의 막내아들 김청민이 어머니의 이름이 적힌 상패를 받았습니다.(관련기사 : <노점에서 자란 꼬마 ‘짱구’, 엄마의 평생동지가 됐다>) 전태일과 유희의 이름이 함께 적힌 상패. 그걸 보고 저도 마음이 조금 울컥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두 사람의 뜻이 만났다는 생각에. 전태일이 남긴 뜻을 유희가 살아냈고, 유희가 남긴 뜻이 전태일을 불러냈습니다.

유희가 살아 있었다면 이런 자리에 절대 빈손으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유희의 사람들’은 시상식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떡을 준비했습니다.
‘밥묵차’ 멤버 성미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희 언니에게 받은 옷과 신발로 맞춰 입었습니다.(관련기사 : <집회장에 나타난 검은 세단… 수상한 차와 고상한 ‘밥’>) 언니를 위한 ‘가을 한 상’도 푸짐하게 준비했습니다. 햅쌀로 지은 밥과 제철 농산물, 가을 들꽃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유희 묘소에 가득 차려졌습니다. ‘내 무덤에 와서 울지 말라’던 유희의 당부를 이날은 지켰습니다.
‘유희를 닮은 사람들’이 그녀의 묘소 앞에서 상패를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몇 달 전 저 혼자 상상하던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번엔 저도 그들 사이에 같이 섰습니다.

해가 바뀌어 또 한 번의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27일 열린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 2025년 11월 수상작으로 ‘하늘을 짓는 여자’가 선정됐습니다. 2025년 11월과 12월, 올해 1월 수상작을 한 자리에서 시상했습니다.
심사위원회는 “형식적이고 정형적인 기사의 시효가 끝나가는 시대에 비정형적인 기사로 미래에 새롭게 주목해볼 저널리즘의 형식”이라는 평가와 함께, “미디어 수용자를 배려하는 저널리즘으로 흡입력 있는 기사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유희와 ‘그녀의 사람들’이 제 삶에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작은 기적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곧 ‘하늘을 짓는 여자’ 이야기를 단행본 책으로 선보이기 위해, 여러 출판노동자들의 손을 거쳐가며 정성을 보태는 중입니다.

유희의 삶을 통해 제가 다시 한번 확인한 게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세상을 바꾸자는 말들은 많고 많지만, 세상은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는 것.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뭐라도 하겠다’는 소중한 실천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 말입니다.
거창한 말들이 허공을 채울 때, 바로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의 ‘한 끼’를 걱정하는 마음.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주저 없이 시작하는 마음. 혁명도, 그 어떤 위대한 단어도, 모두 그렇게 자그마한 마음에서 출발하고 완성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밥은 숭고하고, 사람은 아름답고, 연대는 위대하다.” (독자 댓글 중)
유희의 묘비에 적힌 말, “밥은 하늘이다.” 그녀가 온 삶으로 증명해온 말. 밥은 하늘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밥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짓는 사람입니다. 땅에서 디딜 곳 없이 밀려난 사람들에게, 평등한 하늘을 나눠준 사람입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그녀가 지은 하늘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유희처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선한 마음’들이 보이지 않게 이어지고 엮이며, 우리를 먹이고 살려 왔다는 걸.
지난겨울 추위는 유난히 길었습니다. 긴 추위를 거리에서 견뎌낸 사람들이 이 땅 곳곳에 여전히 많습니다. 새봄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하늘같은’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습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