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의 가해자 실명 보도 이후, 저는 처음으로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아동학대 피해자 연서(가명, 현재 25) 씨가 탄원서를 썼습니다. 기자인 저의 처벌을 걱정하며 쓴 탄원서입니다. 왜 피해자가 저를 걱정해야 할까요.

연서 씨는 초등학생 시절 피겨 선수였습니다. 김연아 선수처럼 국가대표를 꿈꾸던 아이. 아래 사진은 2012년 연서와 함께 선수생활을 하던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비록 기사에는 얼굴이 전부 가려진 사진을 올렸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웃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미소 뒤에는 학대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습니다.

사진 속 초등학생이던 연서와 아동 선수들이 웃고 있다. ⓒ셜록

연서 씨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코치의 일상적인 폭행과 폭언 속에서 훈련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합숙훈련에서도 해외 전지훈련에서도 가혹행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도 없이 코치가 유일한 ‘보호자’였던 그곳. 화장실에 끌려 갔던 그날의 공포, 주먹에 맞아 코피가 터지고 스케이트의 뾰족한 앞코로 정강이를 걷어차였던 고통. 그때 연서 씨는 고작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어린 연서는 왜 학대를 견뎠을까요. 어째서 그 코치의 곁을 떠나지 못했을까요. 스포츠 지도자의 절대적인 권력 때문입니다. 코치에게 반기를 드는 행위는 곧 선수생활을 그만둔다는 것, 태극마크를 향한 꿈을 포기한다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후 10년이 지났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시간은 약이 아니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성인이 됐지만, 어린 시절 학대 사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특히 연서 씨는 학대 트라우마로 10년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 가해자는 주니어 국가대표 코치로 승승장구 했습니다. 피해자들이 학대의 악몽 속에서 발버둥치는 동안, 코치는 명성을 쌓았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간을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인이 된 연서 씨는 2024년 12월 코치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대구빙상경기연맹에 징계요구서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처벌이나 징계는 감감무소식. 오히려 김상윤 대구빙상연맹 회장은 연서 씨 모녀를 찾아와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결국 연서 씨는 언론 제보를 결심했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된 정의와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기 위한 선택이었죠. 그렇게 저는 피겨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만났습니다.

코치가 고소한 사건의 피의자 조사를 받으러 지난해 10월 대구 수성경찰서에 출석했다 ⓒ셜록

보도 이후, 코치는 반성 대신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기자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선택했습니다. 기사를 삭제하라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하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습니다. 코치는 저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등으로 고소했고, 김상윤 회장도 명예훼손 등으로 저를 고소했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가 기자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고소하다니. 아동학대 가해자인 자신의 신상을 보도한 ‘죄’를 묻겠다는 거였습니다.

아동학대처벌법 제35조2항에 따르면, 아동보호 사건에 관련된 아동학대 행위자를 포함해 피해 아동과 주변인의 인적사항 등을 보도하면 안 됩니다.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함이죠. 하지만 코치는 법 취지와는 거꾸로 법을 악용했습니다. 가해자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동학대처벌법 조항을 교묘히 이용한 겁니다.

“아동학대 피해자가 가해자를 비판하고 공개하고 사죄받고자 할 때, 정작 아동학대처벌법으로 인해 피해자와 조력자를 옥죄고 가해자를 비호하는 법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

아동학대 피해자 연서 씨가 어릴 적 신던 피겨스케이트화 ⓒ셜록

고소장에는 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을 겁니다. 피해자를 향한 ‘보복’입니다. 피해자를 돕는 주변인을 고소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속셈 아닐까요.

“성인이 된 피해자들이 자신의 아픈 과거를 딛고 용기를 내서 보도가 된 건데, 경찰은 사건의 맥락은 무시한 채 문자 그대로 법 조항을 받아들여 공익을 추구한 기자를 범죄자 취급하고 있습니다.”(박광제 내부제보실천운동 사무국장)

가해자가 악용하는 아동학대처벌법의 ‘독소조항’. 이미 국회에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대구수성경찰서는 지난해 12월, 코치를 상습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올 1월에는 저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기자를 범죄자로 만들겠다고 법을 악용했고, 경찰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위한 일이라는 걸 경찰이 몰랐을까요. 법의 취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경찰의 나태한 수사 결과입니다.

피해자들은 인터뷰 도중 코치로부터 학대를 당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셜록

사건은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수사 중입니다. 검찰이 기소를 결정하고 기자가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보도를 통해 저는 오랜 시간 이어진 의심에서 벗어나, 피해자로서 존재하게 됐습니다.”

연서 씨는 말합니다. 진정한 피해자 보호는 가해자의 이름을 가려주는 일이 아니라, 진실과 책임의 자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만약 기자가 아동학대 피해자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다면, 그 누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을까요. 아동학대 피해자는 평생 말 못할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그게 과연 정의입니까.

이 사건은 단순히 기자 한 명의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자의 ‘권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가해자에게 사과받을 권리를 빼앗는 일. 연서 씨처럼 어린 시절 지도자에게 학대당한 스포츠 선수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수많은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문제입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부조리를 세상에 알리는 용기 있는 공익제보자들의 입을 틀어막는 일.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가는 언론인들을 향한 탄압입니다.

검찰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법정에 세워 엄벌을 받게 하고, 피해자의 편에 섰던 기자에게는 ‘불기소’ 결정을 내리는 것.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싸움에 탄원으로 함께해주십시오.

➡️ 셜록 조아영 기자 불기소 탄원 구글폼 : https://forms.gle/hGSZrEwy2tjHT5M67

※ ‘칼날 위의 아이들’ 프로젝트 기사 보기
[1화] ‘김연아의 꿈’은 사라지고… 학대의 악몽만 남았다
[2화] 423분의 녹음파일… ‘학대’의 진실은 이 안에 있다
[3화] “스케이트 날집으로 300대” 피겨 학대 피해자 더 있다
[4화] ‘피겨 학대’ 국감에서 질타… “이게 화해될 일인가!”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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