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할 부분이 뭡니까? 돌아가신 건 안타깝지만, 의원이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의원님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이야기는 냉정했다. 짧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지금 정신없어요. 선거 이후에 전화 주세요.”

또 다른 의원님은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이유로 통화를 피했다. 이미 늦을 대로 늦어버린 한마디. 짧게는 4개월 전, 길게는 1년 반 전에 국민들이 들었어야 할 말을 아직도 듣지 못했다.

공무원만 죽었다. 의원들은 또 선거에 나왔다. 국민들은 그들이 누군지 몰랐다.

그리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경기도의회. 의석 수 156석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지방의회다. ⓒ셜록

사건의 배경에는 경기도의회 의원들의 ‘국외출장’ 문제가 있다.

권익위는 2024년 12월, ‘지방의회 국외출장 실태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 보고서의 맨 앞에는 ‘항공권 조작 등을 통한 항공운임 과다 청구’ 사례가 소개됐다.

수법은 이렇다. 우선 비싼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끊고 예산 집행 이후 다시 싼 이코노미석으로 바꿔치기 하는 식. 항공권 차액만큼 출장지에서 쓸 여비를 부풀리는 거다.

권익위에 적발된 ‘항공료 부풀리기’ 사례는 모두 405건. 과다 청구된 금액은 약 18억 8000만 원이다(2022년 1월 ~ 2024년 5월). 경기도의회와 경기도 내 기초의회로 범위를 좁히면, 60건, 약 2억 4300만 원의 국외출장비가 과다 청구됐다.

권익위는 ‘항공료 부풀리기’가 적발된 국외출장 건들을 지난해 4월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중 2023년 경기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의 유럽 국외출장 건이 포함됐다.

경기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 의원 9명은 2023년에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로 7박 10일간 국외출장을 다녀왔다. 당시 계획서상 의원 1인당 483만 4770원의 여비가 책정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여비를 쓰기 위해, 실비로 지급되는 항공료를 부풀린 것으로 의심된다.

나중에 ‘항공료 부풀리기’ 사실이 드러난 경기도의회 2023년 농정해양위원회 공무국외출장 보고서 중. 현지 기관이 아니라 주스웨덴 한국대사관을 방문해 스웨덴 농업 현황을 청취했다. ⓒ경기도의회

항공료를 부풀려 남긴 돈을 유럽 국외출장에서 ‘쓴 사람’은 도의원들이다. 항공료 부풀리기의 명백한 ‘수혜자’들. 하지만 수사 대상에 오른 도의원은 ‘0명’이었다.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사람은 ‘의원들을 잘 모시기 위해’ 일했던 실무 담당 공무원들뿐이었다.

그리고 비극이 일어났다.

지난 1월 경기도의회 7급 공무원 A 주무관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경찰 조사를 받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는 국외출장에서 비용 처리 등을 담당한 서무 직원이었다.

경기도의회 건물 안에 근조 화환이 가득 놓였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질적인 이득을 취하고 불법 집행을 묵인·지시한 의원들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월 4일 ‘지방의회 외유성 국외출장 근절 및 책임전가 중단 촉구’ 국회 기자회견. 전종덕 진보당 국회의원은 “출장을 결정하고 승인한 주체는 빠진 채 서류를 처리한 하위직 공무원만 수사 대상이 되는 현재의 수사는 정의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민들은 몰랐다. ‘항공료 부풀리기’ 국외출장을 통해 “실질적인 이득”을 취한 의원들이 누구인지. 권익위도, 경찰도, 의회도,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까. 그 흔한 ‘유감’의 말 한마디, 스스로 밝힌 사람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돈을 쓴 의원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돈을 만들어준 공무원만 목숨을 잃은 사건. 2023년 ‘문제의’ 유럽 국외출장을 다녀온 경기도의원들은 바로 이들이다.

김성남 의원(국민의힘, 포천2/ 도의원 3선 출마)

방성환 의원(국민의힘, 성남5/ 도의원 3선 출마)

장대석 의원(더불어민주당, 시흥2)

강태형 의원(더불어민주당, 안산5)

남종섭 의원(더불어민주당, 용인3/ 도의원 4선 출마)

서광범 의원(국민의힘, 여주1/ 도의원 재선 출마)

이오수 의원(국민의힘, 수원9/ 도의원 재선 출마)

임상오 의원(국민의힘, 동두천2/ 도의원 재선 출마)

최만식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남2/ 도의원 3선 출마)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들 모두에게 입장을 물었다. 지금이라도 국민들께 공개 사과하라고.

셜록은 ‘문제의’ 국외출장을 다녀온 경기도의회 의원을 직접 찾아가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셜록 조아영 기자(왼쪽)와 장대석 의원. ⓒ셜록

공개 사과 요구에 응한 도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사과할 게 뭐냐”고 반문한 의원은 있었다. 기사 서두에 언급한 서광범 의원(국민의힘, 여주1). 서 의원은 “아직 수사 결과도 안 나왔는데 사과할 부분이 뭐냐”며, “(도의회) 직원이 돌아가신 건 안타깝지만, 의원이 세세하게 알 수 없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반성”을 언급한 의원은 딱 한 명 있었다. 당시 농정해양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장대석 의원(더불어민주당, 시흥2). 지난 12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셜록과 만난 그는 “(공무원 사망에) 마음이 아프다”며, “심도 깊게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이나 공개 사과에 대한 입장 없이, “지금 말씀드리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인터뷰를 거절하고 자리를 떠났다.

2023년 당시 농정해양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성남 의원(국민의힘, 포천2)도 공무원 사망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했으나, 공개 사과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그는 “여행사에서 (국외출장) 비용을 부풀려서 이익을 본 것”이라며, “의원들은 전혀 몰랐다”고 항변했다.

그밖에 ▲이오수 의원(국민의힘, 수원9) ▲임상오 의원(국민의힘, 동두천2)은 통화가 이뤄졌으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최만식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남2) ▲강태형 의원(더불어민주당, 안산5) ▲남종섭 의원(더불어민주당, 용인3)은 셜록의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 공문 등 모든 연락에 답변하지 않았다.

2023년 당시 농정해양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방성환 의원(국민의힘, 성남5)은 “선거운동 중이라 정신없으니 선거 이후에 전화 달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그는 “사과는 도의회 차원에서 했다”는 말로 공개 사과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

국외출장 경기도의원 인포그래픽 1 ⓒ셜록
국외출장 경기도의원 인포그래픽 2 ⓒ셜록

방성환 의원이 말한 ‘도의회 차원의 사과’란 아마도 지난 1월, A 주무관 사망 9일 뒤에 나온 김진경 의장(더불어민주당, 시흥3)의 입장문을 말하는 듯했다.

김 의장은 입장문에서 “비통한 마음으로 고개 숙입니다”라며, “명복”, “위로”와 같은 낱말을 언급했다. 그리고 “뼈를 깎는 성찰로 변화하겠습니다”라며, 수사받는 공무원에 대한 법률지원과 심리상담 강화, 국외출장 제도 개선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부당한 이익을 봤는지, 어떤 책임을 질 건지. ‘사과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입장문’에 불과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기 때문일까. 2023년 유럽 국외출장 ‘멤버’였던 경기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 의원 9명 중 7명은 이번 6․3 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지난해 6월 경기도의회는 ‘공무국외출장 혁신 TF’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김진경 의장의 특별 지시”임을 강조한 보도자료에서 “실질적인 제도개선 효과가 있기까지 공무국외출장을 지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바로 같은 달 경기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는, 또 다시 유럽(네덜란드-독일-체코)으로 국외출장 계획을 세웠다. 국외출장 문제에 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와중이었다. 비판 여론에 맞닥뜨리자, 3개월이 지난 그해 9월 행선지를 일본으로 바꿔 국외출장을 다녀왔다.

지난해 7월 15일 열린 경기도의회 청렴 서약식. 이날 김진경 의장은 “도민 눈높이에 맞는 기준을 세우고, 실천할 장치를 만드는 것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회

국외출장 실무를 담당한 공무원은 경찰 수사를 받다가 숨졌다. 하지만 그 국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들은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채, 또 유럽으로 국외출장을 계획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며 일본으로 국외출장을 강행하고, 다시 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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