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취재를 하면서 정말 화가 났던 순간이 있습니다.

경기도의회 김진경 의장(더불어민주당, 시흥3)을 만나기 위해 며칠간 연락을 한 뒤였습니다. 의회로 찾아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에야 ‘홍보팀을 통하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홍보팀을 통해 어렵사리 듣게 된 ‘공식’ 입장 역시 짤막했습니다.

유족의 뜻에 따라 언론 인터뷰는 응할 수 없습니다.”

유족의 뜻이라뇨. 그 단어를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난 12일 경기도의회로 김진경 의장을 만나러 갔다. 하지만 김 의장은 “홍보팀을 통하라”는 말만 남기고 수행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 ⓒ셜록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방의회 국외출장 실태점검’ 결과를 발표한 때가 2024년 12월. ‘항공료 부풀리기’ 등에 대해 수사 의뢰가 이뤄졌습니다. 경기도의회도 그중 하나였고요.

하지만 수사가 시작되자 국민들은 의아함에 휩싸였습니다. 국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들은 다 빠져나가고, 실무 담당 공무원만 수사를 받게 된 겁니다. 그리고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1월, 경찰 수사를 받던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며칠 뒤 김진경 의장은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참담”, “명복”, “위로” 같은 낱말과 함께, 수사받는 공무원에 대한 법률지원과 심리상담, 국외출장 제도 개선 등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꼭 있어야 할 내용이 없었습니다. ‘문제의 국외출장을 누가 다녀온 것인가.’ 문제의 국외출장을 통해 이익을 본 ‘수혜자’는 바로 의원들이란 분명한 사실, ‘항공료 부풀리기’는 의원님들을 더 잘 모시기 위해서 행해진 일이란 중요한 맥락이 삭제돼 있습니다,

하지만 의원들은 침묵했습니다. 사망 이후에도 책임과 사과의 말 한마디 직접 한 의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의회의 대표인 김진경 의장은 ‘유족의 뜻’을 방패막이 삼아 침묵했습니다.

경기도의회 공무원 사망 이후 열린 ‘책임전가 중단 촉구’ 국회 기자회견. 전종덕 진보당 국회의원은 “출장을 결정하고 승인한 주체는 빠진 채 서류를 처리한 하위직 공무원만 수사 대상이 되는 현재의 수사는 정의롭지 않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그럼 세 가지만 묻겠습니다. 경기도의회가 하거나, 또는 하지 않은 이 일들은 ‘누구의 뜻’인지.

하나. 지난해 6월 경기도의회는 ‘공무국외출장 혁신TF’ 혁신안을 발표하고, “실질적인 제도개선 효과가 있기까지 공무국외출장을 지양할 예정”이라고 밝혔죠. 하지만 바로 같은 달 경기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는 또 유럽(네덜란드-독일-체코)으로 국외출장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비판 여론에 맞닥뜨리자 3개월간 눈치를 보며 출장을 미루다가, 기어이 그해 9월 행선지를 일본으로 바꿔 국외출장을 갔다 왔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뜻입니까?

둘. 지난 12일 경기도의회는 ‘의원 소송비 지원’ 예산을 2000만 원에서 9700만 원으로 늘린 추경예산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유는 “공무국외출장 관련 도의원 법률 지원을 위하여”.

국외출장 돈 처리를 맡은 공무원은 목숨을 잃었고, 그 돈을 쓴 의원들은 처벌을 피하겠다고 법률 지원비를 다섯 배로 늘린 겁니다. 이것은 또 누구의 뜻입니까?

셋. 경기도의회에는 의원들 스스로 만든 ‘국외출장비 환수’ 조례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권익위 실태점검 결과 발표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문제의 돈을 환수하지 않는 건, 대체 누구의 뜻입니까?(관련기사 : <국외출장비 환수는 외면… “유족의 뜻” 뒤에 숨은 의회>)

지난 12일 경기도의회 본회의. 이날 경기도의회는 ‘의원 소송비 지원’ 예산이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난 추경 예산을 통과시켰다. ⓒ경기도의회

한 사람이 목숨을 버릴 정도로 문제가 된 국외출장. ‘항공료 부풀리기’를 통해 유럽으로 ‘공짜여행’을 갔다 온 의원들이 누구인지 국민들은 몰랐습니다. 그들은 이번 6·3 지방선거에 또 출마했습니다.(관련기사 : <공무원만 죽었다, 의원들은 ‘조용히’ 또 선거에 나왔다>)

저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유족의 뜻’을 운운하며 침묵하는 의원들이 정말로 걱정하는 건 아마 따로 있을 거라고. 근거 없는 의심은 아닙니다. 충남도의회 정광섭 의원(국민의힘, 태안2)은 셜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많은 의원들의 속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선거 중이고, 당선되느냐 마느냐 절박해요. 선거 끝나고 나면은, 예, 사과하라면 뭐, 하죠. 선거 끝나고 (의원들과) 한번 또 협의해서.”

권익위 보고서 ‘실태점검 결과’ 첫 페이지에 소개된 ‘항공료 부풀리기’. 그중에서도 첫 번째 ‘대표’ 사례가 바로 충남도의회였습니다. 충남도의회 의원들이 유럽으로 국외출장을 가면서, 무려 1700만 원 이상의 예산을 ‘뻥튀기’ 했다고 권익위는 밝혔습니다.

권익위에 적발된 ‘항공료 부풀리기’ 사례는 전국적으로 모두 405건이나 됩니다. 총 금액은 약 18억 8000만 원. 충남도의회의 경우는 그 평균의 약 4배에 육박합니다.

심지어 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국외출장비를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지난 4월, 의원 한 사람당 약 130만 원씩 반납했습니다. 충남도의회는 “경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과다 지급된 (국외출장비) 금액에 대해 자진 납부한 것”이라 밝혔습니다.

문제를 인정하고 국외출장비까지 반납했지만 국민들에게 알리진 않았습니다. 셜록이 취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의회와 당사자들만 알고 있던 ‘비밀 아닌 비밀’이었습니다. 이들도 사과 한마디 없이 이번 6·3 지방선거에 출마했습니다.(관련기사 : <항공료 부풀려 유럽 간 도의원들… 사과는 “선거 끝나고”>)

국민권익위원회 ‘지방의회 국외출장 실태점검’ 결과 보고서에 실린 항공권 조작 사례 설명 ⓒ국민권익위원회

셜록의 질의에 적극 항변한 의원들도 있습니다. 가장 많이 한 말은 바로 “몰랐다”입니다.

그럼 용서가 될까요? 국외출장을 가는 사람도, 계획을 수립하고 심의하는 사람도, 출장비를 쓰는 사람모두 의원들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주는 사람은 ‘국민들’입니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의원들에게는, 몰랐다는 말로는 덮어질 수 없는 ‘정치적 책임’이 있습니다.

‘여행사 탓’을 한 의원도 있었습니다. 그런 말로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참 한심합니다. 그 말이 정말이라 치더라도, 일개 민간 여행사가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동안 의원이 그걸 몰랐다면 직무유기인 거고, 알고도 묵인했다면 공범인 겁니다. 지독한 무능, 혹은 심각한 부패를 자백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 유권자 5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지방의원의 해외연수(국외출장)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데 무려 70.4%가 찬성했습니다. 국민들의 불신이 왜 이토록 깊은지, 멀리 갈 것도 없이 2024년 권익위 실태점검 결과만 한번 보겠습니다.

▲항공권 조작 등을 통한 항공운임 과다 청구 외에도, ▲지방의회의원이 직원의 개인 부담 경비 대납 ▲출장자가 자신의 출장을 심사 ▲허위 문서를 통해 비용 청구 ▲관광 목적의 가이드·입장료 등을 예산으로 지출 ▲여비 지급 기준을 위반한 체재비 초과 지급 ▲부적정 물품을 구매하는 등 예산을 목적 외 사용 ▲결과보고서를 부실하게 작성하거나 표절 ▲여행사에 대행수수료·수배비 등 항목으로 별도 비용 지급 ▲출장 취소시 취소수수료를 기준 없이 지출 ▲기자에게 출장 경비를 지원 등 숱한 문제점들이 지적됐습니다.

대한민국 지방정치의 ‘품질’이 이렇습니다. 몰랐다, 여행사 탓이다, 관행과 제도 문제다, 둘러대기 전에, 지방정치를 책임지는 정치인들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요?

국외출장비 문제로 출장비 반납까지 한 충남도의원들 역시 사과 없이 선거에 나왔다. 사진은 지난 15일 한 의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화환. ⓒ셜록

실무 공무원은 경찰 수사를 받고 징계와 처벌의 위기에 놓인 동안, 사과 한마디 없이 선거에 나와 재선을 노리는 경기도의회 의원들. 국외출장비 문제가 불거져 자진 반납까지 이뤄졌지만, 아무도 모르게 또 선거에 나와 유권자들의 표를 구하는 충남도의회 의원들.

이건 정의도 아니고, 공정도 상식도 아니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닙니다.

한 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초래한 국외출장의 수혜자, 경기도의회 의원 ▲김성남(국민의힘, 포천2) ▲방성환(국민의힘, 성남5) ▲장대석(더불어민주당, 시흥2) ▲강태형(더불어민주당, 안산5) ▲남종섭(더불어민주당, 용인3) ▲서광범(국민의힘, 여주1) ▲이오수(국민의힘, 수원9) ▲임상오(국민의힘, 동두천2) ▲최만식(더불어민주당, 성남2).

권익위 보고서 첫 장 ‘1700만 원 뻥튀기’ 국외출장의 수혜자, 충남도의회 의원 ▲정광섭(국민의힘, 태안2) ▲오인철(더불어민주당, 천안7) ▲김복만(국민의힘, 금산2) ▲김민수(더불어민주당, 비례) ▲신영호(국민의힘, 서천2) ▲유성재(국민의힘, 천안5) ▲주진하(무소속, 예산2).

책임 있게 사과하고 겸허히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길 바랍니다. 그리고 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은 부당하게 집행된 국외출장비를 조례에 따라 즉시 환수하십시오.

‘선거가 절박하니 선거 끝나고 사과하겠다’고 한 의원이 있었죠? 국민들은 더 절박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던진 표가 또 당신들 같은 정치인에게 갈까봐 절박합니다. 대한민국 지방정치의 ‘품질’을 높일 기회를 또 한 번 놓치게 될까봐 절박합니다.

그래서 더 절박하게 묻습니다. 의원에겐 의원다운, 의회에겐 의회다운 ‘책임’을.

지난해 7월 열린 경기도의회 청렴 서약식. 이날 김진경 의장은 “도민 눈높이에 맞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회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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