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해야 될 일 있으면 해야죠. 지금 선거 중이고, 당선되느냐 마느냐 절박해요. 선거 끝나고 나면은, 예, 사과하라면 뭐, 하죠. 선거 끝나고 (의원들과) 한번 또 협의해서 할게요.”
의원님의 목소리는 정말 절박한 듯, 아니면 그저 급박한 듯 들렸다. 알쏭달쏭한 그의 말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거였다. 두 번이나 강조한 다섯 글자, “선거 끝나고”.
잘못을 아주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사과는 ‘나중에’ ‘조건을 갖춰서’ 하겠다는 말. 잘못한 게 없어서 사과하지 않겠다는 말보다 더 이상하게 들렸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유럽 국외출장비를 ‘뻥튀기’ 했다는 의혹을 받는 충남도의원들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아, 이제 ‘의혹’이라 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 국외출장비 문제로 경찰 수사까지 진행되자, 의원들은 조용히 경비까지 ‘반납’했으니까.
하지만 셜록이 취재를 시작하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이미 문제를 인정한 셈인데도, 국외출장비로 문제가 된 의원이 누구인지 국민들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과 한마디 없이 군수 후보로, 도의원 후보로 또 선거에 나왔다.

2024년 12월 국민권익위원회 ‘지방의회 국외출장 실태점검’ 결과가 공개됐다. 보고서 맨 앞, ‘항공권 조작 등을 통한 항공운임 과다 청구’ 사례의 장본인이 바로 충남도의회다.
수법은 이렇다. 우선 비싼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끊고 예산 집행 이후 다시 싼 이코노미석으로 바꿔치기 하는 식. 항공권 차액만큼 출장지에서 쓸 여비를 부풀리는 거다.
충남도의회 농수산해양위원회 의원 7명은 2022년 네덜란드-벨기에-독일로 7박 9일간 국외출장을 갔다 왔다. 권익위가 파악한 ‘항공료 부풀리기’ 액수는 약 1700만 원. “1인당 1,644,700원인 항공료를 3,385,900원으로 하여 총 17,412,000원을 과다 지출”했다고 밝혔다.
권익위에 적발된 ‘항공료 부풀리기’ 사례는 약 2년 5개월간 전국 405건, 금액은 약 18억 8000만 원이었다. 약 1740만 원을 부풀린 충남도의회 사례는 평균의 4배에 육박했다.

“공무(국외)출장에 대해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제가 전반기 부의장이고 지금 의장으로서 언론인 여러분들한테 얼굴을 뵙기가 어렵고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2025년 1월 충남도의회 신년 기자회견. 홍성현 의장은 “도의회 차원에서” 사과했다. 홍 의장은 과다 청구된 국외출장비가 “1741만 원이 아니라 1250만 원”이라 해명하기도 했다.
의장이 ‘총대’를 멘 덕분일까. 의원들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권익위 보고서 첫 페이지를 불명예스럽게 장식(?)한 장본인들. 국민들이 그들의 이름을 알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조용히 이번 6·3 지방선거에 또 출마한 의원들. 셜록이 그들의 이름을 공개한다.
▲정광섭 의원(국민의힘, 태안2/ 도의원 4선 출마)
▲오인철 의원(더불어민주당, 천안7)
▲김복만 의원(국민의힘, 금산2/ 도의원 4선 출마)
▲김민수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 부여군수 출마)
▲신영호 의원(국민의힘, 서천2)
▲유성재 의원(국민의힘, 천안5/ 도의원 재선 출마)
▲주진하 의원(무소속, 예산2/ 2026. 3.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후 국민의힘 탈당)
셜록은 그들에게 직접 요청했다. 지금이라도 국민들 앞에 공개 사과하라고.

하지만 지금 사과하겠다는 의원은 없었다. 오히려 사과의 조건으로 ‘선거’를 언급했다.
“선거 끝나고 (의원들과) 한번 또 협의해서 할게요.”(정광섭 의원)
“선거 이후에, 사과해야 할 상황이면 사과하겠습니다.”(유성재 의원)
“(사과 입장에 대해서는) 의원님들과 나중에 상의하기로 했습니다.”(김민수 의원)
정광섭·오인철·유성재 의원은 ‘이미 도의회 의장이 대표로 공식 사과를 했다’는 점을 언급했고, ‘사과를 한다 하더라도 의원들이 같이 상의해서 해야 한다’(정광섭·김민수·유성재 의원)는 답변도 있었다.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몰랐다”. 당시 농수산해양위원회 위원장이던 ▲정광섭 의원, 부위원장이던 ▲오인철 의원, ▲김복만 의원, ▲김민수 의원, ▲유성재 의원, ▲주진하 의원은 항공료 부풀리기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특히 주진하 의원은 “금시초문”이란 말과 함께, “국외출장 예산 집행 문제는 파악도 못하고 있다, 그걸 어떻게 예산을 부풀려서 집행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일부 인정하지만 ‘관례’와 ‘제도’를 동시에 탓하는 답변도 있었다. “제도적으로 일단 관례로 내려왔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신영호 의원)거나,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행안부에서 바꿔줘야 한다”(오인철 의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항변해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 있다. 국외출장의 ‘수혜자’는 바로 의원들 자신이란 것. 국외출장을 가는 사람도, 계획을 수립하고 심의하는 사람도, 국외출장비를 쓰는 사람도 모두 의원들이다. 그리고 그 돈을 주는 사람은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의원들에게는 ‘몰랐다’는 말로는 덮어질 수 없는 정치적 책임이 있다.
의원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답변도 있었다. 부여군수 선거에 출마한 김민수 의원은 “지적하면 달게 받겠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건 한번 고민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셜록은 지난 기사에서, 국외출장 문제와 연관돼 공무원 사망 사건까지 일어난 경기도의회 이야기를 보도했다.(관련기사 : <공무원만 죽었다, 의원들은 ‘조용히’ 또 선거에 나왔다>) 셜록의 취재 요청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던 경기도의회 의원들에 비해, 충남도의회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적극 항변했다.
그 배경에는 아마도 ‘국외훈련비 반납’이 있지 않을까. 충남도의회 의원 7명 모두 ‘문제가 된 국외훈련비를 이미 반납했다’고 답변했다. 시기는 지방선거 두 달 전인 지난 4월. 의원 한 사람당 약 130만 원을 반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들은 몰랐다. 당사자들과 의회만 알도록 ‘조용히’ 처리됐다.
충남도의회는 ‘의원 국외훈련비 환수’ 사례에 대한 셜록의 정보공개청구에도, ‘부존재’ 즉, “환수 사례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답변을 했다. 형식상 ‘강제 환수’가 아닌 ‘자진 반납’이었다는 점을 핑계 삼아, 교묘히 답변을 피해간 것.
나중에 충남도의회 총무과는 “도의원들과 공무원들은 환수 조치 이전에 선제적으로 자진 납부했기 때문에 ‘환수 사례’는 없다”며, “경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과다 지급된 (국외출장비) 금액에 대해 자진 납부한 것”이라고 셜록에게 밝혔다.
홍성현 의장에게 직접 물었다. 문제를 인정하고 국외출장비 반납까지 해놓고선 왜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는지.
“그걸 (보도자료로) 내기는 좀 그래서, 안 냈어요. 틀림없이 다 환수했어요.”

셜록이 접촉한 의원들 중에는 국외출장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이들도 있었다. 문제의 2022년 네덜란드-벨기에-독일 출장. 7박 9일 일정 중 공식방문 일정 5건은 사흘에 몰려 있었다. 2일차·5일차·7일차·8일차는 이른바 ‘현장견학’밖에 없었다.
현장견학 장소는 풍차마을, 치즈 공장, 나막신 공장, 암스테르담 중앙역, 2차세계대전 전사자 위령탑, 성니콜라스교회, 브뤼셀 시내, 쾰른성당, 베토벤 생가, 뮌스터성당, 본 구 시가지, 하이델베르크 낭만 고성도시, 철학자의 길, 고성 내부, 레지덴츠궁전, 뷔츠부르크대성당, 마리엔베르크요새, 프랑크푸르트 시청사, 프랑크푸르트대성당 등이었다.
“네덜란드 스마트팜 단지 보고 왔고, 독일은 할 게 없어서 재미없었습니다.”(주진하 의원)
“솔직히 말씀드리면, 패키지여행을 가면 유럽도 300(만 원)이면 구애 안 받고 갈 수 있잖아요. 우리는 (국외출장으로) 가면 하루에 한두 군데씩 (공식방문을) 꼭 들러야 하고 (…) 그 (국외출장비 문제) 터진 후로는 차라리 내 돈 내고 맘 편히 갔다 오는 거….”(정광섭 의원)

지난해 11월 충남도의회의 행정사무감사 현장. 도의원들은 한 충남도 산하 기관 공무원들의 외유성 국외출장을 질타했다. 그 자리에서 나온 한 도의원의 물음을, ‘항공료 부풀리기’로 국외출장을 다녀온 7명의 도의원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그러면 그 돈을 주고 있는 도민들은 뭐라고 하겠어요?”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