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회를 알리는 의사봉을 치기 전부터 본회의장 문 앞에는 남자 직원 몇몇이 어느새 자리를 잡고 섰다. 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더불어민주당, 시흥3)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던 그에게 ‘의회로 만나러 가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뒤였다.

본회의가 끝났다. 김 의장이 나오자마자, 문 앞에 대기하던 수행 직원들이 그를 경호하듯 둘러쌌다. 기자가 김 의장에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돌아온 말.

“언론홍보팀하고 얘기를 (하세요).”

그는 잰걸음으로 앞만 보며 걸었다. 이미 직원이 엘리베이터를 잡아두고 있었다. 김 의장은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수행 직원들도 좌우, 앞으로 그를 둘러싸고 함께 탔다.

“(인터뷰 거절 이유가) 유가족 뜻이라고 얘기하던데, 그럼 국민들은 부풀려진 예산으로 국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들이 누군지 영영 몰라야 하는 겁니까!?”

경기도의회 김진경 의장. 지난 12일 경기도의회 본회의. ⓒ경기도의회

도의원 국외출장 비용 문제로 수사를 받던 실무 담당 공무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원 국외출장비 환수’ 조례가 있지만 의회는 환수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의원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 지원 예산만 다섯 배 가까이 늘렸다. 의장은 “유족의 뜻”이란 말 뒤에 숨어 인터뷰 요청도 끝내 회피했다.

2023년 경기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 의원 9명은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로 7박 10일간 국외출장을 다녀왔다.

결과보고서만 봐도 이 출장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의문을 품게 하는 대목이 많다. 7박 10일 일정 중 ‘공식방문’ 일정은 4건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계획과 달리 추진됐다. ‘노르웨이 해양연구소 방문’은 ‘베르겐수산시장 방문’으로 변경됐고, ‘스웨덴 농민연맹 방문’ 일정이 틀어지자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방문’으로 대신했다.

‘노르웨이 도시농업 텃밭 시찰’ 보고 내용은 황당한 기분까지 들었다. 2시간 동안 일정이 진행됐다 했지만, 현지에서 만난 ‘접견자’ 이름도 없었다.

농사를 짓는 시민들 모습은 다른 자료에서 내려받은 ‘자료사진’이었고, 실제 현장 시찰에서는 농작물 하나 없이 눈이 쌓여 있는 텃밭 모습만 사진으로 찍어왔다.

경기도의회 <2023년 농정해양위원회 공무국외출장 보고서> 중 ‘노르웨이 도시농업 텃밭 시찰’ 부분. 농사짓는 시민들 모습은 ‘자료사진’이었고(위), 실제 현장 시찰에서는 눈 쌓인 텃밭 모습만 찍어왔다(아래). ⓒ경기도의회

더 큰 문제는 결과보고서 밖에 있었다. 해당 국외출장에서 ‘항공권 조작’을 통해 경비를 부풀린 사실이, 1년 뒤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방의회 국외출장 실태점검’에서 적발된 것.

권익위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항공료 부풀리기의 ‘수혜자’인 의원들은 모두 법망을 빠져나갔다. 실무를 담당했던 공무원들만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1월. 경기도의회 7급 공무원 A 주무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문제의’ 국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들 대부분은 ‘조용히’ 또 선거에 출마했다. 끝내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기사를 통해 9명의 의원들 이름을 밝히고, 모두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관련기사 : <공무원만 죽었다, 의원들은 ‘조용히’ 또 선거에 나왔다>)

국외출장 경기도의원 인포그래픽 1 ⓒ셜록
국외출장 경기도의원 인포그래픽 2 ⓒ셜록

셜록이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또 있다. 바로 과다 청구한 국외출장비의 ‘자진 반납’.

그들에게만 특별히 억울한(?) 일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국외출장비가 문제가 되는 경우 자진 반납하거나 환수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 선거의회자치법규과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광역의회 중에서는 광주시의회가 국외출장 여비를 반납했다. 지난달 9일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남도의회도 전·현직 의원과 도의회 직원들을 대상으로 국외출장 비용 일부를 환수하고 있다. 이들 역시 권익위의 실태점검과 그에 따른 경찰 수사가 그 배경이 됐다.

기초의회의 경우는 훨씬 더 많다. ▲부산 금정구의회·남구의회·부산진구의회·동구의회·사상구의회 ▲대구 북구의회 ▲대전 중구의회 ▲광주 동구의회 ▲경기 고양시의회 ▲충북 증평군의회·진천군의회·음성군의회·단양군의회 ▲충남 아산시의회·천안시의회 ▲전북 익산시의회·군산시의회·완주군의회 ▲전남 목포시의회·고흥군의회(2025. 11. 26. 기준).

교육감을 상대로 국외출장 비용을 환수한 사례도 있다. 지난달 전남교육청은 김대중 교육감과 직원들을 상대로 과다 청구된 출장비를 환수했다. 김 교육감은 출장 7건에서 항공료가 부풀려진 사실이 확인돼 총 734만 원을 반납했다.

하지만 셜록의 질의에 자진 반납 의사를 밝힌 경기도의회 의원은 ‘0명’이다.

서광범 의원(국민의힘, 여주1)은 “직원에게 맡겨서 의원은 세세하게 알 수 없는 문제”라며, “돈이 얼마나 문제가 됐는지도 잘 모르는데 자진 반납을 어떻게 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셜록은 ‘문제의’ 국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님들을 찾아가 물었다. 경기도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의원들을 기다리는 조아영 기자와, 그 앞을 지나가는 다른 의원들. ⓒ셜록

“의장은 천재지변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심사위원회에서 의결된 출장 목적 및 계획과 달리 부당하게 지출된 경비를 환수 조치한다.”

‘경기도의회 의원 공무국외출장에 관한 조례’ 제16조⑥.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스스로 만든 조례에, 잘못 쓰인 국외출장비는 ‘환수 조치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경기도의회는 권익위 실태점검 결과 발표 이후로 1년 반, A 주무관의 사망 이후로도 4개월이 지나는 동안 조례에 따른 환수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지난 22일 경기도의회 총무과 담당자는 “(국외출장비) 환수 조치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의원이) 자진 반납한 사례는 있다”고 했으나, 반납 시기가 언제인지, 그 의원이 농정해양위원회 소속인지를 질문에는 “저희가 답변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또 하나 경기도의회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서약서’다.

경기도의회 의원들은 국외출장 계획서를 작성할 때, 자필 서명이 들어간 서약서를 제출한다. 출장 목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윤리적 문제 등이 발생했을 경우 “향후 공무국외출장이 제한되더라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의원들이 국외출장 전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서약서에 ‘국외출장 경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진 반납하겠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것. 그 역시 경기도의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국외출장 계획서와 함께 제출하는 서약서 양식 ⓒ경기도의회

국외출장에서 잘못 쓰인 국민 세금은 환수하지 않으면서, 의원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 지원 예산은 ‘또 국민 세금으로’ 크게 늘렸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김진경 의장을 찾아간 날은 지난 12일. 그날 경기도의회는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을 통과시켰다. 그 중에는 9700만 원의 ‘의원 소송비 지원’ 예산이 포함돼 있다. 기존 2000만 원에서 7700만 원 증액돼, 총액은 무려 다섯 배에 가깝게 늘어났다.

경기도의회는 항공료 부풀리기 외에도, 국외출장 경비 대납(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도 문제가 됐다. 그 때문에 수사를 받는 의원들이 있다. 지난달 27일 추경예산안 심사에서 경기도의회 사무처는 “공무국외출장 관련 도의원 법률 지원을 위하여” 증액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경기도의회 제390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이날 경기도의회는 ‘의원 소송비 지원’ 예산이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난 추경 예산을 통과시켰다. ⓒ경기도의회

셜록은 김진경 의장에게, 환수와 서약, 경기도의회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두 가지 일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었다.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여려 차례 인터뷰를 요청하고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낸 뒤 답변을 기다렸지만, 아무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본회의가 열리는 날 직접 만나러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에야 ‘언론홍보팀을 통해 입장을 들으라’는 짧은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언론홍보팀을 통해 전달받은 입장도 짤막했다.

A 주무관 유가족의 뜻에 따라 언론 인터뷰에 응할 수 없습니다.”

셜록의 취재는 고인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국외출장의 ‘수혜자’인 의원들과 의회의 정치적 책임을 논하자는 의도임을 거듭 설명했지만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의원님들을 ‘잘 모시기 위해’ 관행에 따라 일했던 공무원은 세상을 떠났다. ‘문제의’ 국외출장을 갔다 온 의원들은 또 선거에 나와 표를 구하고 있다. 의원들 스스로 만든 ‘국외출장비 환수’ 조례는 잠자고 있고, 의장은 ‘유족의 뜻’을 방패 삼아 입을 닫았다.

경기도의회 김진경 의장은 수행 직원들이 잡아둔 엘리베이터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수행 직원들은 좌우로 그를 둘러싸고 자리 잡았고, 엘리베이터 문 앞쪽도 직원들이 가로막듯 서 있었다. ⓒ셜록

지난 12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만난 김 의장은 기자의 질문에 아무 답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끝까지 질문을 던졌다.

“의회에서 책임지고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김 의장을 둘러싼 수행 직원들의 어깨 사이로 그의 얼굴만 겨우 보였다. 그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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