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출구를 나와 스무 걸음. 강남 빌딩숲 사이 자리한 은빛 건물이 한여름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지난 7월 3일, 기자가 찾는 ‘그곳’의 간판은 건물 밖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양옆으로 늘어선 14개 상가 중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은색 정사각형 현판에는 ‘주식회사 ○○’라고 새겨져 있었다. 가수 겸 배우 C의 ‘1인 기획사’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여러 번 두드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문 앞에는 약 한 달 전 법원에서 보낸 3차 반송 등기우편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바로 옆 사무실에도 똑같은 디자인의 은색 정사각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름은 ‘○○컴퍼니’. 배우 A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1인 기획사’ 사무실이었다.

두 사무실 사이에는 “부재로 인한 재방문 예정”을 알리는 등기우편물 도착 안내 스티커 두 장이 붙어 있었다. 벌써 두세 달 전에 붙여둔 것. 보낸 이는 각각 국세청과 강남구청.
인근 상인들에게 물었다. C의 1인 기획사 사무실에 드나드는 사람을 본 적 있는지.
“사람이 들어가는 걸 거의 못 봤어요. 문이 열려 있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똑 닮은 간판을 달고 나란히 자리한 두 연예인의 1인 기획사 사무실. 과연 우연일까? C와 A는 2017년 한 드라마에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또 하나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존재했다. 바로 부동산 디벨로퍼 이○○ 대표다.
가수 겸 배우 C와 그의 옛 연인인 배우 D. 그리고 또 다른 동료 배우 E. 이들이 수십억 원대 건물주가 된 데는 하나의 ‘공식’이 존재한다.
하나, 1인 기획사를 세운다. 둘, 어머니나 배우자를 대표나 이사로 앉힌다. 셋, 1인 기획사 명의로 건물을 사들인다. 이때 은행에서 고액의 대출을 받아 건물 매입금의 상당 부분을 해결한다. 넷, 새 건물을 지어 되팔아 수십억 원대의 차익을 남긴다. 모두 부동산 디벨로퍼 이○○ 대표의 설계대로 똑같이 진행됐다.

‘강남 건물주’인 가수 겸 배우 C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건물 두 채를 갖고 있다. 두 건물 모두 이 대표 회사의 성과를 자랑하는 ‘포트폴리오’에 올라 있다.
C는 2018년 본인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1인 기획사를 설립했다. 1인 기획사 대표는 그의 어머니. 2020년 그는 1인 기획사 명의로 서울 강남구의 빌라 한 채와 토지를 약 44억 원에 매입했다. 당시 신탁대출을 통해 약 32억 6000만 원을 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채권최고액을 통한 추정치). 매입금의 약 74%를 대출금으로 해결한 것.
이후 그 자리에 4층 건물(근린생활시설)을 새로 지었다. C는 법인 명의로 추가 대출을 또 받았다. 현재 C가 이 건물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만 약 53억 6000만 원에 달한다.
2022년 C는 강남 건물을 또 샀다. 이번에도 1인 기획사 명의로. 약 77억 5000만 원에 빌라 건물을 샀고, 이번에도 약 80%, 약 62억 4000만 원은 대출금으로 해결했다(채권최고액을 통한 추정치). 역시나 그 자리에 6층 건물(근린생활시설)을 새로 지었다. 이후 새 건물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일으켜, 현재 해당 건물을 담보로 총 85억 원의 대출금이 잡혀 있다.
C의 1인 기획사가 두 건물을 담보로 일으킨 대출 규모만 총 138억 6000만 원. 건물 매입가를 훌쩍 넘어서는 액수다.

이 대표가 설계한 ‘건물 쇼핑’ 공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C의 전 연인인 배우 D. 그도 이미 잘 알려진 ‘강남 건물주’다.
D도 C와 비슷한 시기인 2018년에 1인 기획사를 설립했다. 1인 기획사 대표는 마찬가지로 그의 어머니. 이듬해인 2019년 1인 기획사 명의로 서울 강남구에 있는 약 58억 원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이중 대출금은 약 50억 원. 무려 86%를 대출금으로 채웠다. 이후 추가 대출금 약 17억 원을 포함해, 총 67억 원의 대출을 일으켰다.
이후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7층 건물을 새로 지었다. 2년 2개월 뒤 건물을 판 가격은 약 150억 원. 약 92억 원의 차익이 생겼다. 모두 1인 기획사 명의로 이뤄진 부동산 거래. 이 건물 역시 이 대표 회사의 포트폴리오에 들어 있다.
이들의 동료 배우 E도 부동산 디벨로퍼 이 대표의 ‘고객’이다. 그 역시 1인 기획사를 운영 중인데, 그의 배우자가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E는 2022년 1인 기획사 명의로 서울 강남구에 있는 빌라 건물을 약 74억 원에 샀다. 이중 79%, 약 58억 5000만 원을 신탁대출로 해결했다. 이후 같은 자리에 7층 건물을 새로 올렸다.
이 건물을 담보로 낸 대출금만 총 81억 6000만 원에 달한다. 대출을 내준 곳은 하나은행 ○○지점. 공교롭게도 E의 1인 기획사가 건물을 담보로 약 18억 2000만 원의 대출을 실행한 날(2023. 5. 4.), C의 1인 기획사도 같은 은행 지점에서 약 62억 4000만 원의 대출을 일으켰다.


절세일까, ‘탈세’일까. 연예인들이 1인 기획사를 설립하는 주된 목적은.
1인 기획사를 만드는 연예인들은 대개 ‘본 소속사 대 연예인’이 아닌, ‘본 소속사 대 1인 기획사’의 구조로 계약을 맺는다. 연예활동 수익을 개인소득이 아닌 법인 매출로 처리해, 세금 절감하는 방식이다. 과세표준 10억 원을 초과하는 개인에게는 최고 45%의 소득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법인세 최고세율은 25%다.
부동산 거래를 할 때도 1인 기획사는 여러 모로 쓸모가 많다. 법인은 개인과 다르게 금융기관에서 임대사업을 목적으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보다 손쉽게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다. 서류상으로도 법인 명의만 남아, 연예인들의 경우 일차적으로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을 피할 수도 있다. 건물을 처분해 이익이 발생할 때도 통상 개인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실제 이 대표의 부동산 컨설팅을 받은 ‘건물주 연예인’ 6명 모두 실제 연예활동을 위한 본 소속사가 따로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1인 기획사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
문제는 법인의 ‘실질성’이다. 세무당국은 해당 법인이 실질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세금을 추징할 수 있다. 이들 1인 기획사는 정말 ‘실체가 있는’ 회사일까.
몇 달째 사무실을 방문하지 않은 듯 우편물이 쌓여 있거나, 사람의 왕래를 보지 못했다는 주변 상인들의 증언. 기자가 직접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도,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포착됐다.

또 이들 1인 기획사의 본점 주소지가 겹친다. 배우 D와 E의 1인 기획사 주소지는 모두 이 대표의 부동산 회사로 등록돼 있다. 이 대표는 배우 D의 1인 기획사에서 직접 감사직을 맡기도 했다. 그의 임기는 2023년 3월 20일 만료됐다.
자금 흐름도 수상하다. 배우 D와 이 대표 회사 사이에 반복적으로 돈이 오가고 있다. D의 1인 기획사는 2024년 이 대표 회사에 약 2억 원을 빌려줬다가 다음 해 상환받았다.
2024년엔 D의 1인 기획사가 이 대표 회사에 전환사채 방식으로 총 28억 원을 빌려줬다. 그 결과, D의 1인 기획사는 이 대표 회사의 지분(우선주 지분 40.74%, 보통주 지분 4.17%)까지 확보했다.
동일한 주소지, 겹치는 인적 구성, 회사 간 자금 거래, 왕래 흔적 없는 사무실. 이런 정황들은 해당 1인 기획사들이 실질적 역할을 하는 독립된 법인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을 낳게 한다.
이러한 공통점은 배우 A와 그 배우자인 가수 B 사이에서도 똑같이 확인된다. 이 부부 역시 부동산 디벨로퍼 이 대표의 ‘서비스’를 받아 건물주가 된 연예인들이다.(관련기사 : <‘펜션’에 1인기획사를? 배우-가수 부부의 건물쇼핑 비법>)
연예인들이 1인 기획사 설립을 택하는 데는 절세나 투자뿐 아니라 사업 운영 측면의 이유도 있다. 서성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는 이렇게 설명했다.
“연예인의 경우 1인 기획사가 가장 안정적일 겁니다. 일반 회사는 의사결정 때 이사회 의결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1인 회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일반 회사와 똑같이 운영하면서도 절차가 단순하다는 장점이 있는 겁니다.”


‘가족법인’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연예인 세 명의 1인 기획사 역시 모두 가족법인이었다. 어머니 혹은 배우자를 임원으로 올려놨다. 과거 1인 기획사 주소지를 장어집과 곰탕집으로 등록해 논란이 됐던 유명 연예인들의 사례 또한 가족법인이었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건물을 소유 중인 연예인 1인 기획사 33곳의 법인 등기부등본을 분석했다. 가족법인은 23곳, 약 70%에 달했다. 이들은 부모와 배우자, 그리고 형제자매를 1명 이상 포함해 등기부상 임원을 구성했다.
임경인 강남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세무사)는 ‘진짜 1인 기획사’의 제대로 된 운영을 돕기 위한 행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등록이 인허가 업종이 아니다 보니까, 등록할 때 요건을 엄격하게 따져보는 절차가 아니잖아요. 주무부서나 관청에서 행정적인 절차를 통해 일차적으로 걸러줄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짜1인 기획사를 열심히 해보려고 등록하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요.”
1인 기획사를 통한 연예인들의 건물 쇼핑.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이야기를 위해 기자들은 비행기를 탔다.
셜록은 가수 겸 배우 C와 배우 D, 배우 E의 본 소속사와 부동산 컨설팅 회사 대표인 이 씨 측에 이메일, 서면, 사무실 방문 등 여러 방식으로 반론을 요청했다.
▲가수 겸 배우 C의 본 소속사는 “부동산 및 경영관리 등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에 대하여 이 대표의 회사와 정식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업무를 위임하였으며, 전문성이 필요한 범위에 한하여 외부 전문업체의 자문 또는 실무 지원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 외 배우 E와 같은 날 같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이유, 1인 기획사의 실질성 여부 등에 대해 물었지만, C의 본 소속사는 “C의 1인 기획사는 본 소속사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별도 법인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답변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밝혔다.
▲배우 E의 본 소속사는 E의 1인 기획사에 대해 “광고 등 대외적인 출연계약과 관련된 매니지먼트 업무는 본 소속사가 담당하고, E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및 뮤지컬 기획 등 별도의 콘텐츠·사업 활동은 E의 1인 기획사가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 E 등 1인 기획사들이 중복해서 이 대표 회사의 주소지로 등록된 데에 대해 E의 본 소속사는 “연예인 1인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획사의 업무 특성상 다수의 상주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점과 업무상 편의 및 운영 효율성을 고려하여, 과거 본 소속사 사무실 중 일부 공간을 실제로 임차하여 본점 사무실로 사용하였다”고 전했다.
▲배우 E와 이 대표의 관계에 관해서는 “1인 기획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경영 및 부동산 관리와 관련한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한 경우 조언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D의 1인 기획사와 이 대표 회사 간 자금거래와 지분 소유에 대해 이 대표는 “D의 1인 기획사는 당사의 우선주와 일부 보통주를 보유한 주주”라며, “D의 1인 기획사가 보유한 지분의 대부분은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로,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 지분은 4.7%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D의 1인 기획사에서 감사직을 맡았던 사실에 대해 이 대표는 “퇴임 후 D의 1인 기획사의 경영이나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양사는 독립적으로 각각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배우 D 측에 이메일 문의, 등기 발송, 담당자를 통한 서면질의서 전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입장을 물었지만, D의 본 소속사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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