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국회의사당 청록색 돔 지붕이 보인다. 직선 거리로 약 1km. 달리기를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몇몇. 오전 7시 양화한강공원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주차장에 서 있는 흰 승합차에서 한 남자가 내린다. 기자가 물었다.

“어젯밤에도 여기서 주무신 거예요?”
“아이, 나 노숙자 아니라니까.”

다른 데서 자고 아침 일찍 나왔다는 남자의 말을 다 믿지는 못하겠다. 뒷좌석을 다 뜯어내고 개조한 그의 승합차 안에는 전기장판도 있고, 매트도 있고, 이불도 있으니까. 승합차는 그의 연구실이자, 집이자, ‘아지트’가 됐다. 2026년 7월 3일 ‘압수수색’ 이후로.

한강 둔치에 세워둔 승합차는 김현석 씨의 ‘아지트’가 됐다. 답답할 때면 하루에 몇 번씩 한강 둔치를 달린다. ⓒ셜록

남자의 이름은 김현석(59). 위성PRE(위치보고장치)를 개발한 27년 경력의 군 통신 전문가. 그에겐 두 가지 수식어가 더 있다. ‘내란 공익제보자’와 ‘군사기밀 누설 혐의 피의자’.

승합차에 시동을 걸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군 헬기의 비행경로를 따라가 볼 계획이다. 첫 목적지는 경기 이천시. 계엄군 헬기가 이륙한 곳이다. 그에게 이 길은 너무도 익숙하다. 각 부대에 보급된 위성PRE 시스템의 유지·보수 업무를 위해 수도 없이 오간 길이다.

“제보 이후로, 이 길을 다니시는 기분이 좀 달라지진 않았어요?”
“예. 눈앞에 막 계엄군 헬기가 보이려고 그래요.”

12.3 계엄 당시 계엄군의 위법적 이동 사실을 제보한 김현석 씨와 함께 그날 계엄군 헬기의 비행경로를 따라가며 인터뷰를 했다 ⓒ셜록

12.3 계엄 이후 어느 날, 군부대를 방문한 김현석에게 한 군인이 말했다. 계엄 당시 ‘위치보고장치를 쓰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다고. 다른 부대에서도 같은 증언을 들었다.

위치보고장치를 지참하면 실시간 부대 위치가 자동으로 지휘소에 보고되고 합동참모본부 스크린에 뜨게 된다. 누군가 ‘위치보고장치를 쓰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건 무슨 뜻일까.

합참의 합법적 지휘·통제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무력화’ 시킨 상태에서 무장한 군인들을 이동시켰다는 의미다. 그 자체로 군 형법상 반란죄에 해당할 수 있는 무거운 죄다.(관련기사 : <합참 스크린에서 사라진 유령부대… ‘그 남자’는 알았다>)

물증을 남겨둔 군인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삭제되는 계엄군 이동 기록 파일을 보존해둔 것. 폴더의 이름은 ‘12.3’. 그 속에 담긴 디지털 정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김현석뿐이었다. 그렇게 ‘군복 입은 시민’들의 용기가 김현석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경기 이천시 특전사 부대 앞에서 선 김현석 씨 ⓒ셜록

“제가 ‘12.3’이라는 폴더를 확인하는 과정에 그렇게 우연과 필연이 겹쳐진 상황이 있었어요. 이 장소에 와보니, ‘12.3’ 폴더에 계엄군 불법 이동의 증거를 남겨놓으신 분이 참 용감한 행동을 했다, 그래서 제가 공익제보를 할 수 있었다,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특전사 부대 앞에 선 김현석의 소회. 12.3 계엄 당시 최초 여섯 개 부대는 ‘매뉴얼대로’ 위치보고장치를 갖고 출동했다. 이들 부대의 위치 데이터가 “초 단위로” 모두 기록됐다.

하지만 계엄 선포 후 약 36분을 전후해 ‘위치보고장치를 쓰지 말라’는 명령이 하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출동한 부대부터는 위치보고장치를 쓰지 않았다. 김현석은 ‘12.3’ 폴더 속 정보를 분석해 2025년 6~7월, 국회의원실과 1차 내란 특검에 제보했다.

김현석 씨가 방배역 앞에 서 있다 ⓒ셜록

다시 차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지하철 방배역 근처에 차를 세웠다. 대우효령아파트 어린이놀이터. 계엄군 헬기의 위치 데이터가 남은 곳이다. 아파트와 빌라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지역이다. 계엄군 헬기는 이곳 하늘을 시속 200km 이상의 속도로 날아갔다.

“전쟁 중이라도 적군에 발견될 위험이 없는 한 인구 밀집지역을 비행하면 안 됩니다. 그날은 전시도 아니고, 적에게 발각될 위험도 없잖습니까? 그런데 (계엄군 헬기는) 부대와 국회를 거의 직선으로 잇는 경로로 비행합니다. 최대한 빨리 가서 내란을 성공시키려 한 겁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군 헬기가 국회 운동장에 착륙한 장면. 헬기가 어떤 경로로 국회까지 왔는지, 김현석 씨의 제보는 밝히고 있다. ⓒ국회

국방부가 발행한 <(RK)P73 인근지역 비행안내서>(2023년)에는 이렇게 규정돼 있다.

– “국가항공기와 군용헬기는 한강회랑을 우선 사용하여야 하며, (…) 수도방위사령부 JAOC(합동항공작전통제소)의 허가를 획득한 경우에 한해 해당 구간을 통과비행 할 수 있다.”

– “한강회랑을 따라 비행하는 헬기는 한강의 남·북쪽 강변 및 강상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정해진 속도(80kts, 148km/h) 이하로 한강 중심에서 남쪽 강변 상공으로 비행하여야 한다.”

규정대로라면 헬기가 서울 상공을 비행할 때, 고속도로와 한강 위를 통해 ‘ㄱ’자로 가야 한다. 하지만 계엄군 헬기는 도심을 대각선으로 관통해 국회까지 직선으로 비행했다.

계엄군 헬기는 고속도로와 한강 위를 통해 ‘ㄱ’자로 가는 정상경로 대신, 부대와 국회를 거의 직선으로 잇는 불법경로로 비행했다. ⓒ셜록

당시 120 다산콜센터에 헬기 민원이 접수된 지역을 봐도 헬기의 ‘이상 비행’이 확인된다.

– “여기 서초구 우면동인데요 (…) 한 20~30분 전부터 비행기 소리가 계속 돌리는데.”
– “여기 우면동인데 지금 밤에 막 (헬기가) 아파트 위로 너무 떠서 시끄러워서”
– “밤 12시 다 됐는데 헬기 소리가 막 들려요. (…) 계속 동작구 쪽으로 지나갔는데요.”
– “헬기가 지나가면서, 소음, 진동에 (…) 건물 흔들리고. 관악구 남현동입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이희동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제공)

아파트와 헬기. 떠오르는 사고가 있다. 2013년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헬기추락사고. 한강남안을 따라 비행하다 항로를 이탈한 헬기가, 한강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아파트에 충돌해 추락했다. 기장과 부기장이 현장에서 숨지고 아파트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013년 11월 16일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아파트에 헬기가 충돌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강남소방서 제공

계엄 당시 헬기의 서울 진입을 세 차례나 보류시키며 약 40분간 지연시킨 김문상 대령(당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계엄군 헬기는 그렇게 지연된 시간을 만회하려 했던 걸까.

“최초의 헬기 세 대는 이 (직선)경로로 국회로 갔고요, 이후 헬기부터는 수방사의 계속된 경고로,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서 한강을 따라 오게 됩니다. 두 경로의 차이는 시간상으로 10분 정도 납니다.

당시 국회의 엄중한 상황(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정족수 확보)을 생각해보면, 10분 차이라는 건 내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는 중대한 차이예요.”

계엄군 헬기가 착륙했던 국회 운동장에 선 김현석 씨. ⓒ셜록

방배역을 떠나 국회 운동장에 도착했다. 김현석도 직접 여기 온 건 계엄 이후 처음이다. 그날 밤, 계엄군 헬기가 이곳에 착륙하던 장면이 떠올랐을까. 잠시 감회에 젖은 표정이다.

차를 몰고 오는 중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어느 군부대의 기술지원 요청이었다. 그는 압수수색 당하기 2주 전에도 특전사 사령부를 ‘공식’ 방문해 유지·보수 업무를 했다. 이럴 거면 그에게 ‘군사기밀 누설 피의자’라는 무시무시한 딱지는 왜 붙여놓은 건가. 아이러니다.

“제가 27년간 끊임없이 노력해서 위성PRE(위치보고장치)를 만든 거거든요. 대한민국 군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통신장비를 만들고, 그것으로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저를 모욕하고 있는 거예요. 뭐, 내가 군사 기밀을 유출했다고요?”

‘피의자’가 된 김현석은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단, 과거 ‘홍제동 대공분실’로 불리던 악명 높은 곳으로 소환돼 조사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제보한 내란범들, ‘위치보고장치를 쓰지 말라’ 명령한 자, 헬기의 도심 직선비행을 명령한 자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관련기사 : <천재, 제보자, 그리고 ‘간첩’… 내 이름은 무엇입니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국회 앞에 선 김현석 씨 ⓒ셜록

김현석을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몇 번이나 카메라를 보며 “국민 여러분!”을 외쳤다.

“국민 여러분! 이거 참아야 됩니까? 저의 제보를 특검이, 경찰이 수사하지 않아서 저 내란범들이 저 기고만장하게 구는 모습을 보는 제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잠시 한숨을 쉬고) 제가 너무 화를 낸 것 같습니다. 화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흥분하지 않아야 되는데….”

국회의사당 앞에 김현석이 섰다. 시민들이 목숨을 건 저항으로 내란을 막아낸 현장. 그의 머리 뒤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지금 김현석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는 권력은 누구로부터 나온 건가. 누구로부터 나와서 누구를 향하고 있는 건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셜록

2024년 겨울,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 사람이 있다. 2026년 겨울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란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사람. 김현석은 지금도 간절히 외치고, 뜨겁게 묻고 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이 정상입니까?”

양화한강공원 주차장에서 국회까지 불과 1km. 그의 외침은 그 사이 어디쯤에 멈춰 있을까.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12.3 폴더의 비밀 시리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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