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은 가림막 뒤에 앉아 있었다. 2025년 2월 국회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수첩에 나오는 용어들은, 다른 사람들은 그거를 그냥 (노상원) 혼자(만의) 상상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던데, 저는 노상원 사령관이라면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노상원. 12.3 내란의 배후인물 중 하나로 지목된 전 정보사령관. 그의 수첩에는 윤석열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수거’ 및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 적혀 있었다. 가림막 뒤에 앉은 군인은 ‘노상원 수첩’ 내용의 신빙성에 대한 놀라운 증언을 이어갔다.
“노상원 사령관이, (대북) 임무 끝나고 (북파) 요원들을 제거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원격 폭파 조끼를 입혀가지고, 임무 끝나면 (남쪽으로) 들어오기 전에 폭사시키라고….”
생중계 화면을 보고 있던 한 남자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아, 그때 내가 만든 게 저거구나!’

남자의 이름은 김현석(59). 직업은 군 지휘통제 기술 전문 엔지니어. ‘통신장비에 폭탄을 달아달라’는 제안은 평생에 딱 한 번밖에 없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16년 김현석은 ‘원격 폭탄 제어’ 기술을 개발했다. ‘최대한 작게 만들라’는 요구 때문에 장치의 크기는 라이터만큼이나 작아졌다. 어디에 어떻게 쓰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김현석은 세 개의 샘플을 만들어 전달했다. 하지만 부대에서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김현석은 생중계 화면 속 가림막 뒤에서 증언하는 군인의 말을 듣고, 그제야 자신이 만든 장비의 용도를 알았다. 아군을 위해 개발한 기술을 아군을 죽이는 데 쓰려 했다니….
김현석은 제보를 결심했다. 다시 한번 ‘샘플’을 만들었다. 두 달이 걸렸다. 2016년에 만든 것과 똑같은 샘플까지 만들어 국회의원실로 보냈다. ‘노상원 수첩’에 적힌 반대파 ‘수거’ 계획의 신빙성 또한 높여주는 결정적 제보였다.
이후 국회에서는 ‘노상원 폭탄조끼’ 실물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고,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노상원 폭탄조끼’ 제보자가 김현석이란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기억하는 김현석은 ‘천재’ 또는 ‘별종’이었다. 김현석은 ‘국민학생’ 때인 1970년대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1985년 대학 신입생 때는 가스안전공사 지사의 업무 프로그램을 혼자 완성해서 납품했다.
대다수는 컴퓨터를 흔하게 접할 수도 없을 뿐더러,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던 1980년대. 다른 대학생들이 타자기와 등사기로 유인물을 만들던 시절에 김현석은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수준이었으니 ‘별종’이라 불릴 만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김현석은 이후 군 지휘·통제 기술 전문가로 일했다. 우리 군의 C4I체계(전술지휘자동화체계) 구축이 그의 손에서 이뤄졌다. 호국훈련 기술지원과 G20 정상회의 경호작전 지원 공로 등을 인정받아 표창장과 감사장을 받기도 여러 번. 27년 세월 동안 군을 위해 헌신한 그가 ‘훈장’처럼 간직하는 기억들이다.
2024년 2월 방위사업청은 ‘신형 위성위치보고장치’ 도입을 홍보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통신위성을 기반으로 자체통신이 가능함에 따라 지상·해상·공중 모든 영역에서 (…) 직접 국내 지휘소와 데이터 및 음성통신을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름하여 ‘위성PRE(Positioning Report Equipment)’. 방위사업청이 “우리 특수부대 작전반경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라 자랑한 이것 역시, 김현석이 만들었다.

그해 겨울이었다. 12.3 비상계엄의 여진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던 때. 김현석은 여느 때와 같이 일선 군부대를 다니며 위성PRE 장비의 기술지원 업무를 하고 있었다. 계엄에 동원됐던 어느 부대를 방문했을 때, 한 군인이 김현석에게 조용히 말했다.
“김 선생님, 저희 그때 위성PRE 안 썼어요.”
한 사람만의 증언이 아니었다. 다른 부대를 방문했을 때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군인들이 있었다. 의아했다. 김현석은 이유를 물었다.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어요. (위성PRE) 쓰지 말라고 해서 안 썼습니다.”
작전 시 반드시 지참해야 하는 위성PRE. 그것을 휴대하는 것만으로 부대 위치가 실시간으로 통제실 화면에 표시된다. 그럼 그 장비를 쓰지 않았다는 건? 무장한 군인들이 합법적 지휘·통제 시스템 밖에서 이동했다는 뜻. 군 형법상 반란죄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한 불법행위다.
여기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바로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계엄군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지휘통제실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 ‘수방사 지역으로 이동하는 항공기가 있다’ 제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비행기(헬기)가 어디에서 떠서 어디로 가는지 도착지가 어딘지 이런 내용은 사실 없는 상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2024. 12. 10. 국회 국방위원회)
계엄군 이동도 모르는 계엄사령관이라.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싶지만, 누군가 실시간 지휘·통제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명령을 했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들어맞는다.
당시 윤석열 등은 12.3 비상계엄이 ‘합법적인 통치행위’라 항변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 군인들에게 ‘위치보고 장비를 끄고 지휘통제 시스템 밖에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계엄의 불법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어느 계엄군 부대를 방문했을 때였다. 컴퓨터에 저장된 폴더 하나가 눈에 띄었다. 폴더 이름을 보는 순간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내용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폴더의 이름은 ‘12.3’.
원래 위성PRE 정보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삭제된다. 누군가 ‘일부러’ 2024년 12월 3일 그날의 정보를 보존했다는 뜻. 그는 대체 누구를 향해 ‘12.3’ 폴더를 남겼을까. 폴더 속 정보를 분석해서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바로 김현석.
김현석은 ‘12.3’ 폴더를 열어 내용을 분석했다. ‘위성PRE를 쓰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 매뉴얼대로 위성PRE를 지참한 계엄군 부대들이 있었다. 최초 출동한 6개 부대. 헬기를 타고 국회로 출동한 특전사 부대였다. 그런데 이들의 이동경로가 이상했다.
규정대로라면 경기 이천시에서 출발한 헬기가 서울 상공을 비행할 때, 고속도로와 한강 위를 통해 ‘ㄱ’ 자로 가야 한다. 전시 상황이라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켜야 하는 규정이다.
하지만 계엄군 헬기는 서울 도심을 관통해 국회까지 직선으로 비행했다. 지도상 방배동 아파트단지 위에 헬기의 이동 지점이 찍혀 있었다. 12.3 계엄 당시 헬기 관련 민원이 접수된 지역도 서초구, 동작구, 관악구 등으로 정상경로에서 벗어난 곳들이었다.
“여기 우면동인데 (헬기가) 아파트 위로 떠서….”
“(헬기가) 계속 동작구 쪽으로 지나갔는데요….”

당시 계엄군 헬기의 서울 진입을 세 차례나 보류시키며 약 40분간 지연시킨 김문상 대령(당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지연된 시간을 만회하려 했던 걸까. 합법적 비행경로를 무시한 계엄군 헬기의 도심 직선비행 사실은 ‘12.3’ 폴더 속 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계엄 당시 위치보고 장비를 쓰지 않았다고 증언해준 군인들. ‘12.3’ 폴더를 남겨둔 군인. ‘군복 입은 시민들’의 용기가 김현석을 고민에 빠뜨렸다. 두어 달의 시간이 또 흘렀다.
결국 2025년 여름, 김현석은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국회의원실과 1차 내란 특검에 제보했다. 위성PRE를 쓰지 말라는 명령, 합법적 지휘·통제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명령을 내린 ‘명령자’를 찾아 수사하라는 제보였다. 계엄군 헬기가 비행 규정을 어기도록 명령한 자도 함께.
제보자의 이름은 ‘김현석’ 한 사람뿐이었지만, 사실 그 혼자 한 일이 아니다. 계엄군 내부의 ‘이름 없는 제보자’들의 용기가 김현석의 이름으로 함께 세상에 전해진 거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수사를 시작하려면 제보자를 불러서 제보 내용을 확인하는 것부터 해야 할 텐데,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한 달, 두 달, 기다림의 시간은 1년 넘게 흘렀다.
2026년 7월 3일 아침. 김현석은 그날도 밤샘 근무를 하고 사무실 한쪽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회사 부하직원의 전화가 그를 깨웠다.
“어떤 분들이 이사님(김현석)을 찾아왔는데, 방문해도 될까요?”
아무 의심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깜짝 놀란 김현석에게 그들은 종이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압수수색’ 영장이었다.
아니, ‘내란범’에게 가야 할 수사관들이 왜 제보자를 덮쳤을까.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시각, 그의 집 역시 압수수색을 당했다. 집에 혼자 있던 아내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영장을 읽어봤다. 혐의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군대 내부 정보를 빼내서 세상에 알린 죄를 묻겠다는 거였다. 군대 내부의 불법을 고발하는 데, 내부 증거 없이 어떻게 가능한가. 도둑을 보고 “도둑이야!”라고 소리친 사람에게 고성방가 죄를 묻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영장은 김현석이 “우리 군 작전 활동을 그대로 노출해 위험성을 배가시켰다”고 했다. 그 ‘작전’이라는 게 바로 ‘내란’이고 ‘불법’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그는 거의 ‘간첩’에 다름없었다. 군 지휘통제 장비 전문가로 살아온 27년 세월. ‘내가 만든 장비로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이후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단에서 소환조사도 받았다. 과거 ‘홍제동 대공분실’이라 불리던 곳. 지난 시절 이곳에서 수많은 ‘간첩’들을 잡기도 하고 ‘만들기도’ 했다. 경찰은 그의 주변까지 탈탈 ‘털었다’. 회사 동료들, 심지어 거래처 직원들까지 조사를 받았다.
김현석은 사표를 썼다. 자신 때문에 회사가 더 이상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한강 둔치에 세워둔 그의 승합차가 집이자 사무실이 됐다.
압수수색 이후 20일이 지난 7월 23일, 김현석은 참여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섰다. 김현석은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자리였다.
‘노상원 폭탄조끼’를 제보할 때도, ‘12.3 폴더’를 제보할 때도 그의 이름과 얼굴을 대중들에게 공개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직접 이름을 밝히고 카메라 앞에 섰다. 지은 죄가 없으니 더 당당하게 나서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한순간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었다. 참여연대의 활동가와 변호사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오랜 친구들이 함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쳐줬다. 뿐만 아니다. 8702명의 시민들도 있다. 지난달부터 진행된 김현석 ‘무혐의’ 탄원운동에 동참해준 사람들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참여연대는 8702명의 탄원서를 지난 15일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단에 제출했다.

‘12.3’ 폴더를 제보한 뒤로 1년 하고도 4개월이 흘렀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김현석이 고발한 ‘명령자’를 찾아 처벌했는가. 아니다. 김현석에게 덧씌워진 ‘기밀 누설’ 혐의 수사가 무혐의로 종결됐는가. 그것도, 아니다. 김현석의 명예와 일상은 회복됐는가. 그 역시, 아니다.
김현석에게 물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12.3’ 폴더를 발견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느냐고. 그는 잠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떼면서 말했다.
“불의를 발견하고 주저할 틈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긴 싸움이 시작됐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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