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죠.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후회돼서 화가 나지. 이 사건이 그렇게(유죄로) 결론 나면, 앞으로 누가 제보하겠냐고. 그럼 국민들이 촛불은 왜 들었어? 웃기잖아요.” (김용환)
차분한 목소리와 다르게 눈빛에는 뜨거운 것이 일렁거렸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점잖은’ 말을 고르던 그의 표정. 김현석(59)의 대학 후배, 김용환 씨의 말이다.
김현석은 27년 경력의 군 지휘·통제 시스템 전문가다. 2026년 7월 3일 아침. 김현석은 그 전날도 밤샘 근무를 하고 사무실 한쪽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회사 부하직원의 전화가 그를 깨웠다.
“어떤 분들이 이사님(김현석)을 찾아왔는데, 방문해도 될까요?”
아무 의심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깜짝 놀란 김현석에게 그들은 종이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압수수색’ 영장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단. 김현석에 씌워진 혐의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었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처음엔 영문도 모르겠고 상황을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죄 지은 게 없어요. 너무 불쾌했고 어처구니가 없어가지고….” (김현석)
김현석의 사무실과 집, 자동차까지 수십 명의 수사관이 동시에 압수수색에 나섰다. 집에 혼자 있던 그의 아내도 ‘당연지사’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김현석은 건물 1층 정원으로 내려가 앉았다. 네다섯 명의 수사관이 주변을 둘러싸고 섰다.
“수사관한테 얘기했죠. ‘당신들, 이게 뭔진 알고 온 거야?’ 압수수색 영장에 있는 소위 ‘범죄목록’을 보면서 하나하나 설명했어요. 12.3 내란의 불법 증거라고 설명했는데, 이해하려고 하질 않아. 자기 손에 들고 있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수사를 합니까?” (김현석)
‘범죄목록’은 사실 ‘제보목록’이었다. 김현석은 2024년 12월 3일 계엄 당시 계엄군의 불법적 이동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폭탄조끼’ 등을 제보한 공익제보자다. 그는 계엄군 내부의 ‘군복 입은 시민들’이 남긴 증언과 증거를 토대로 국회의원실과 특검에 제보했다.
그때가 2025년 6~7월. ‘위성PRE(위치보고장치)를 쓰지 말라’는 명령으로 합참의 합법적 지휘·통제 시스템을 먹통으로 만든 자(관련기사 : <합참 스크린에서 사라진 유령부대… ‘그 남자’는 알았다>), 계엄군 헬기가 규정을 어기고 아파트단지 위를 날도록 명령한 자(관련기사 : <잠든 국민의 머리 위로 날아간 ‘헬기’… 누구의 명령인가>)를 수사하라는 제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그러다 느닷없이, ‘명령자’를 찾아야 할 수사관들이 거꾸로 제보자를 덮쳤다. 공익제보가 압수수색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거였다.
김현석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휴대폰도 빼앗겼다. 수사관의 휴대폰을 빌려서 겨우 대학 동문들에게 연락을 했다. 시사평론가 최요한 씨도 그 연락을 받았다.
“아침방송 마치고 있는데, 연락이 왔어요. 압수수색? 놀래가지고 그냥 쫓아갔어요. 사무실로 올라가봤어요. 까만 양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수사관 수십 명이 있는 거예요.” (최요한)
최요한 씨는 다음 방송 일정 때문에 자리를 떠야 했다. 김현석을 진정시키고, 민주당에 가서 도움을 청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때 김현석의 주머니엔 신용카드 한 장밖에 없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여의도로 갔다. 민주당 당사에 도착해 입구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당사에서 누군가 내려왔다. 바깥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김현석은 국회로 갔다. 겨우 연락이 닿은 국회의원 보좌관 한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대답.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해서 잘 대응하라는 뻔한 조언을 들었을 뿐이다.
“(김현석 씨가) 여의도 휴대폰 대리점에서 전화를 개통하고 저한테 연락을 줬어요. 그래서 제가 동문들한테, 지금 누구든 빨리 가라, 가서 현석이 형 옆에 있어라 (얘기했죠.)” (최요한)
그때 바로 달려간 사람이 김용환 씨다. 압수수색 영장의 내용을 보니 기가 막혔다.
“이건 공익제보자가 아니라 거의 간첩 수준이잖아요. 수십 장의 영장 속 그 많은 글자를 읽으면서, 본인은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양심으로 행동했는데 형벌로 다가오는 느낌…. 심정이 어땠을까요? ‘이거 정말 세상이 바뀐 거 맞아?’ 이런 생각 안 했겠어요?” (김용환)

군대의 불법적 행위를 고발하는 데, 군대 내부의 증거 없이 어떻게 가능할까. 영장에는 김현석이 “우리 군 작전 활동을 그대로 노출해 위험성을 배가시켰다”고 쓰여 있었다. 그 ‘작전’이라는 게 바로 내란이고 불법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제보자의 이름은 ‘김현석’ 한 사람뿐이었지만, 사실 그 혼자 한 일이 아니다. 계엄 당시 위치보고장치를 쓰지 않았다고 증언해준 군인들, 그 증거를 담아 ‘12.3’ 폴더를 남겨둔 군인. 군 내부의 ‘이름 없는 제보자’들의 용기가 김현석의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진 거였다.
“불법을 저지른 군 내부 사정을 세상에 알리는 건 기밀을 깨는 게 아니잖아요.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려는 양심적 고백이잖아.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걸 단죄해버린다면…. 이건 내란을 인정한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걸 용납할 수 있어요? 어떻게 올가미를 거꾸로 씌워?” (김용환)
압수수색 이후 김현석은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단에서 소환조사도 받았다. 지난 시절 ‘홍제동 대공분실’이라 불리던 곳. 수많은 ‘간첩’들을 잡기도 하고 ‘만들기도’ 했던 곳이다.

대학 동문들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구했다. 류재율 변호사(법무법인 중심)가 그를 도왔다.
“그곳은 대공분실이었잖아요. 동선 자체가 다릅니다. 입구를 통과하면 긴 복도가 나옵니다. 양옆에는 어떠한 통로나 문도 없고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정면에 엘리베이터 하나만 딱 있습니다. 올라가면, 다 격실처럼 돼 있고 동선이 완전히 차단된 곳이죠. (수사관) 복장도 까만 정장만 입습니다. (…)
거의 간첩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경험했을 만한 절차들을 겪고 있거든요. 김현석 씨 입장에서도 굉장히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류재율)
김현석만이 아니었다. 회사 동료들까지 조사를 받았다. 또 경찰은 사건을 보도한 기자, 대학 동문들, 가족들, 거래처 관련자까지 주변 사람들의 통신기록을 모두 털었다. 소환조사 때는 누가 ‘군사기밀 유출’에 협조했는지, 누가 방조했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수사기관 시각에서 김현석 씨는 고도의 전문적인 스파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접촉한 사람이 누군지, 행적이 어떤지 다 보고 있는 거죠. 모든 걸 다 의심하는 상황입니다.” (류재율)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계엄군 ‘명령자’들의 불법행위 증거가 ‘군사기밀 유출’ 범죄 증거로 둔갑한 상황. 심지어 김현석이 고발한 ‘명령자’들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도 않았다.

최요한 씨는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 앞에서 계엄군에 맞선 사람들을 떠올렸다. 장갑차 앞을 막고 선 사람들. 군인들이 탄 버스 바퀴 아래에 누워버린 사람들.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달려나와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새벽까지 국회 앞을 지키던 사람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그런 간절함이 모여 만든 ‘국민주권정부’ 아니었나.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을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감옥으로 보낸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입을 틀어막던 행위와 똑같은 일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억울한 일이 벌어지면 국가는 마땅히 나서서 먼저 들여다봐야 돼요. 그러라고 뽑은 거야, 대통령을, 국회의원을. 안 그러면 사람들은 헛투표만 한 거지. (…)
지금 김현석을 수사하고 범죄자로 몰아가는 건, 내란을 덮고 넘어가겠다는 걸로밖에 해석이 안 돼요. 심각한 문제예요.” (최요한)
김현석이 군 지휘·통제 전문가로 일해온 지난 27년간, 우리 군의 C4I체계(전술지휘자동화체계) 구축이 그의 손에서 이뤄졌다. 호국훈련 기술지원과 G20 정상회의 경호작전 지원 공로 등을 인정받아 표창장과 감사장을 받기도 여러 번. 그가 ‘훈장’처럼 간직하는 기억들이다.

그가 만든 위성PRE를 전력화했을 때, 방위사업청은 직접 보도자료를 배포해 “우리 특수부대 작전반경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라 자랑했다. 유례없는 장비를 만들어 나라를 지킨다는 김현석의 자부심은 ‘군사기밀 유출’ 수사 앞에 치 떨리는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압수수색 영장엔 김현석이 “중대하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였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그렇게 위험한(?) 사람에게 군은 지금도 기술지원 업무를 해달라는 연락을 하고 있다. 황당할 따름이다.
김현석은 사표를 썼다. ‘피의자’가 된 자신 때문에 회사가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한강 둔치에 세워둔 그의 승합차가 집이자 사무실이 됐다. 제보는 그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았다. 명예도, 일상도, 모두 잃은 것뿐이다.
“김현석 씨는 전 재산을 걸고 제보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런 사람을) 사회가 보호하지 않는다면, 이건 단지 이 사안에 그치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누가 제보를 하겠어요?” (이상희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실행위원)
범죄자로 몰린 공익제보자. 앞으로 내란과 같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그저 외면하라는 ‘시그널’을 줄 수밖에 없다. 최요한 씨도 “이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는지가 우리 사회의 방향타가 될 것”이라 말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공익신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9월 21일 국가수사본부에 공문을 보내, 김현석은 법의 보호를 받는 공익제보자임을 안내했다.
시민들도 김현석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촉구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참여연대는 ‘김현석 무혐의 탄원운동’을 진행하고, 8702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10월 15일 제출했다.
하지만 10월 23일과 26일에도 김현석은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단에서 소환조사를 받았다. 정말 그가 구속되거나 법정에 서는 모습까지 봐야 하는 걸까. ‘내란’을 제보했다는 죄로.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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