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남자에게 5년 만에 문자메시지가 왔을 때 나는 전철에서 졸고 있었다.
“지난번 보도하신 내용, ‘동일한 아버지, 다른 판결’ 드디어 대법원 승소 판결이 났습니다.”
첨부된 기사 링크를 열자 ‘또곤이’ 얼굴이 떴다. 이 사건, 대법원에서 끝난 지가 언젠데 ‘승소’라니. 졸린 눈으로 기사를 읽어 내려갈수록 전철에 머리를 기댄 내 자세가 바로 세워졌다.
‘세상에나….’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리고 법원 정문에서 ‘짝다리 자세’를 잡던, 그 문제의 남자 변영철 변호사의 삐딱한 태도와 목소리가 떠올랐다.
“재판을 개판으로 만든 판사를 그냥 두면 되겠습니까? 뭐라도 해야지…”
전철에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뭐 그렇게 놀라고 그래요. 내가 분명히 끝까지 간다고 했잖아.”
낮고 허스키한 부산 남자의 말투에는 ‘봤지?’ 하는 자부심 같은 게 섞여 있었다. 한시가 급한 건 나였다.
“당장 내일이라도 제가 부산으로 갈게요. 시간 좀 내주세요!”
“보자…. 화요일 오후 4시. 괜찮아요?”
곧바로 부산행 KTX 표를 끊었다. 10월 27일 낮 12시 30분께 도착한 부산엔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변 변호사와 처음 접촉했던 2018년 6월, 그때도 지금처럼 맑았을까? 기억나지 않는다.(관련기사 : <김용덕 전 대법관님, 우린 끝까지 쫓아갑니다>)

확실한 건 딱 한 가지. 그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창간 1년여 만에 쫄딱 망한 상태였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셜록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올린 건 변영철 변호사의 전화 한 통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한 ‘또곤이 사건’이라고 있는데, 기가 막힙니다. 이거 취재 한번 해보실래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1~2017),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사법부 숙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과거사 사건 등 주요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개입한 ‘재판거래’ 사건이 있었다.
당시 변영철 변호사의 도움으로 셜록이 보도한 기사는 <양승태가 거래한 엄마의 60년 비밀>.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피해자 이야기로, 많은 독자가 비극적인 사연에 함께 아파하고 공감했다. 셜록의 정기유료독자 ‘왓슨’도 크게 늘어 셜록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보도 이후 약 8년이 지난 지금, 변영철 변호사는 비극적인 이야기의 끝을 새롭게 다시 쓰고 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사건을 안 맡았지! 내가 지금 25년 차 변호산데, 그 중 15년간 이 사건을 맡았다니까요!”
변 변호사가 15년간 매달린 일명 ‘또곤이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여자 이외식은 1928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일제강점기의 ‘처녀 공출’을 피하려 15세 나이에 동네 총각 정재식(1923년생)과 결혼했다. 둘은 1944년 아들 정병곤을 낳았다. 줄여서 ‘곤이’라 불렀다.
남편 정재식은 곤이가 태어난 해 강제징용으로 일본 오키나와로 끌려갔다. 해방 후 정재식은 살아서 귀국했다. 이외식과 정재식은 1948년 둘째 아들 정도곤을 낳았다. 딸을 기대했으나 또 ‘곤’이 태어났나며 둘째를 ‘또곤이’라 불렀다. 본명은 정도곤이다.

좌우 대립이 심했던 1949년 해방정국, 남편 정재식은 좌익으로 몰려 재판도 없이 산골에서 총살을 당했다. 그 역시 ‘10월항쟁’의 희생자다. ‘또곤이’ 정도곤의 첫돌이 겨우 지난 직후였다.
첫째 아들 정병곤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불발탄을 갖고 놀다가 포탄이 터져서 사망했다. 엄마 이외식은 얼마 후 재혼해 집을 떠났다. 어린 정도곤만 고향 친척집에 남겨졌다.
“부모 얼굴도 모르는데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까지 받았으니, 내 인생이 오죽했겠습니꺼? ‘노가다’도 맘대로 못 하는 기 ‘빨갱이’ 자식 팔자 아입니꺼. 중동 붐 일었을 때 사우디 갈라 캤는데, 나라에서 허가도 안 내줬어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정도곤의 아버지 정재식이 국가폭력의 희생자임을 인정했다. 정도곤은 2011년 4월 7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변영철 변호사가 그를 도와 부산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 엄마 이외식은 1년 늦은 2012년 5월 24일 역시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아버지이자 남편인 정재식의 희생을 두고 벌어진 국가배상소송. 같은 사건이니 이외식-정도곤 모자의 재판은 같은 재판부가 맡아서 진행했다. 1심-2심 모두 승소.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이외식-정도곤에게 배상하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상한 일은 2015년 대법원에서 터졌다. 대법원은 엄마 이외식에게는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는데, 아들 정도곤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도과해 국가의 배상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민사상 소멸시효 3년이 지나, 정도곤이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사라졌다는 뜻.
“어린 내를 두고 떠났지만, 우리 어무이 인생인들 편했겠습니꺼? 어무이를 어렵게 찾아가가 ‘아부지 그래 돌아가시고 어무이도 고생했을 낀데, 소송 한번 해보이소’ 한 사람이 접니더. 근데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왔으니, 그걸 우째 받아들이겠습니꺼?”

같은 사건을 두고 대법원이 다른 판결을 내린 셈이다. 무엇보다 정도곤이 엄마 이외식보다 먼저 소송을 제기한 걸 감안하면 대법원의 “소멸시효 도과”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변영철 변호사의 설명은 이렇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문건’에 정도곤 씨 사건이 거론돼 있어요. 양 대법원장이 과거사 사건 국가배상금 줄여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다가 사건 말아먹은 겁니다. 재판거래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이에요.”
대법원에서 내려진 결론이니 어떻게 되돌릴 길도 없었다. 대개의 사람은 이쯤에서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변영철 변호사와 ‘또곤이’ 정도곤은 다른 길을 택했다.
“말도 안 되는 판결을 그냥 받아들이라꼬예? 그거는 너무 억울하잖아예! 용납이 안 되는 일 아입니꺼. 그걸 우째 체념하고 받아들이겠습니꺼?”
우선, 정도곤은 당시 사건을 심리했던 김용덕 대법관을 상대로 “형평에 어긋나고 신뢰를 저버리는 판결을 했다”며 약 2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관련기사 : <김용덕 대법관님, 이게 재판입니까?>)
김 대법관은 엄마 이외식 사건 심리에도 참여했는데, 이때에는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김 대법관은 정도곤 소송에서는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관이 서로 모순된 판결을 한 셈이다. 하지만 정도곤은 김 대법관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에서 3심까지 내리 패소했다.
변영철 변호사는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문건에 정도곤 씨 사건이 거론된 걸 토대로 재심을 청구했다. “정도곤 국가배상 소송 재판을 다시 열어달라”는 재심 청구는 3심까지 줄줄이 기각됐다.
여기까지만 따져도 정도곤을 대리해 변영철 변호사가 맡은 소송은 총 10차례에 이른다. 국가배상소송 파기환송까지 4회, 김용덕 대법관 상대 손해배상 3회, 민사 재심 청구 3회.
올해 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정도곤 사건 해결에 새로운 환경이 마련됐다. 개정법은 ‘국가폭력 희생자로 인정한 사람은 배상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개정법을 근거로 정도곤과 변영철 변호사는 처음부터 다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1심-2심 또 패소. 재판부는 개정된 법률보다는 “기존에 국가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확정판결이 있다”는 취지의 근거, 일명 ‘기판력’을 우선했다.

정도곤과 변영철 변호사는 15년을 이어온 싸움에 많이 지치기도 했다. 반전은 지난 10월 8일 대법원에서 벌어졌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영재)가 “개정 과거사정리법에 의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정도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소식은 변 변호사가 일하는 법무법인 민심의 박아무개 사무장이 처음 접했다.
박 사무장은 다른 재판으로 법원에 가 있는 변영철 변호사에게 전화로 “정도곤 씨 사건, 파기환송됐다”고 전했다.
변영철 – “우리가 또 졌다는 거죠?”
사무장 – “아뇨. 변호사님, 파기환송이라구요.”
변영철 – “파기환송이라….”
사무장 – “변호사님, 우리가 이겼다구요. 15년 만에 이겼다구요!”
변 변호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믿어지지 않았던 거지. 무엇보다 15년간 숱하게 패소만 했더니, 파기환송이라는 말을 순간 이해를 못하겠더라구요. 파기환송이라는데 내가 이겼다는 건지, 또 졌다는 건지…(웃음)”
변영철 변호사는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대리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정도곤 씨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고 공을 의뢰인에게 돌렸다.
반대로 정도곤 씨는 모든 공을 변영철 변호사와 법무법인 민심 직원들에게 돌렸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귀찮게 했겠습니꺼? 한 번만 더 하자, 또 해보자, 더 해보자…. 이래 부탁하면 변 변호사가 크게 싫은 내색도 없이 사건을 맡아줬지예. 인간 변영철 아니었으모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지예.”

애초 정도곤 사건은 엄마 이외식 사건처럼 2015년에 마무리돼야 마땅했다. 대법관들이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런 내력을 모를 리 없음에도 이번 대법원 판결문 어디에도 “유감이다”, “미안하다” 등의 표현은 없다.
국가폭력으로 1949년에 아버지를 잃었을 때 정도곤은 고작 첫돌이 지난 젖먹이였다. ‘또곤이’라 불리던 아이가 팔순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되는 동안 국가는 여전히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정도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만간 국가배상소송 파기환송심이 열린다. “15년 동지” 변영철 변호사가 역시 정도곤을 대리한다.
“또곤이라 불리던 그 꼬맹이가 아버지 없이 살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요. 말도 안 되는 재판을 했으면 최소한 사법부가 ‘미안하다’ 정도는 해야죠.”
변 변호사의 말이다. 파기환송심이 진행되면 같은 사건을 둘러싼 재판만 14번째 열리는 셈이다. 마침표는 아직이지만, 애초 기사의 비극적 결말이 달라진 건 확실하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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