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메일에 두 눈이 커졌다.
“저희 단체와 셜록이 연대하여 보도된 의원들을 공동 고발할 의향이 있는지.”
보낸 사람은 엄청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장이었다. 메일은 이렇게 이어졌다.
“셜록이 확보한 탄탄한 ‘취재 데이터’와 저희 농민단체의 ‘현장 명분’이 결합한다면, 수사기관에 강력한 압박이 될 뿐만 아니라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자에게 공직자 농지 투기 근절을 강제하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그는 이름처럼 ‘엄청난’ 제안을 해왔다. 전농은 12·3 내란 국면에서 농민과 시민의 감동적인 연대를 보여준 ‘남태령대첩’의 주역 아닌가. 이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셜록은 전농과 손을 잡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4월부터, 불법과 편법 사이를 줄타기하며 농지를 소유한 서울시의원들의 사례를 보도했다. 프로젝트 ‘의원님의 농지사랑’. 돌이켜보면 이번 기획도 그렇게 시작됐다. 선배의 제안 한마디로.
“6·3 지방선거 앞두고 서울시의원들 농지 한번 살펴볼까요?”
선배는 미끼를 던졌고, 막내 기자인 나는 그걸 물었다. 앞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칠지 예상하지 못한 채.
서울시의원 106명 중 본인 혹은 가족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는 총 24명(상속 9명 제외). 그들의 불법 농지 취득 여부와 부재지주(不在地主) 여부, 개발이익 취득 등을 살펴봐야 했다.
올해 1월부터 취재 준비로 분주했다. 전국 42개 지자체에 의원들의 농지취득자격증명 자료를 정보공개청구 했다. 3개월이 넘는 시간을 투자한 끝에 40곳의 지자체에서 의원들의 농지취득자격증명서와 농업경영계획서를 받아낼 수 있었다.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선배의 조언이 왜 나온 말인지,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300건의 등기부등본, 40건의 농지취득자격증명 서류, 4년치의 공직자 재산공개용 관보, 10년치 지적도, 토지대장 등…. 책상에 쌓여가는 서류와 함께, 내 근심 걱정도 커져만 갔다.
약 2주 동안 엑셀 파일에 빠짐없이 기록했다. 어떤 의원이 언제, 어디에 있는 농지를 얼마를 주고 사들였는지. 그리고 어떤 작물을 심어 누가 어떻게 기르겠다고 지자체에 신고했는지.
의원들의 농지 소유 내역을 정리해갈수록 의아한 대목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서울’시의원들은 전국 각지에 농지를 갖고 있었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강원 화천군, 충남 태안군, 전남 신안군, 경남 창녕군 등 최대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농지도 있었다.
농업경영계획서상 재배하겠다고 신고한 농작물도 다양했다. 알로에, 더덕, 콩, 참깨, 사과, 오가피 등을 “자기노동력”으로 심고 기르겠다고 했다. 의원 한 명이 경기 남양주시, 여주시, 용인시, 양평군 등 수도권 이곳저곳에 농지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농지는 농사짓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 공직자, 아니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헌법상 대원칙이다. 그런데 의정활동으로 바쁜 ‘의원님’들이 과연 직접 농사를 짓고 있을까? 그들의 논밭에선 신고한 작물들이 실제로 자라나고 있을까?
‘농업경영’을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들, 농지법 위반 혐의가 짙은 세 사람의 ‘대표 사례’를 꼽아 집중 취재했다. 바로 박성연 의원(국민의힘, 광진2), 박상혁 의원(당시 국민의힘, 현 개혁신당, 서초1), 남창진 의원(국민의힘, 송파2)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취재는 박성연 의원 사례다.
출발은 ‘로드뷰’였다. 포털사이트 지도앱에서, 약 8년간 박 의원 농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봤다. 허허벌판 농지에 해가 바뀔 때마다 단독주택들이 들어섰다. ‘설마 현직 의원이 농지를 사들여 택지개발을 했을까?’ 믿기 어려운 마음으로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했다.
우선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단순히 장수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등기부등본에 담긴 박 의원 농지의 역사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하나의 큰 덩어리였던 농지는 자꾸만 쪼개지고 갈라졌다. 그때마다 봐야 하는 등기부등본이 늘어났다. 등기부등본을 발급 받는 데에만 수십만 원이 들었다.
농지의 주인을 파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박 의원이 대표로 있던 법인이 농지를 소유한 경우도 있었다. 박 의원은 팔고, 교환하고, 협의(공유물 분할)해서 농지를 해당 법인에 넘겼다.
박 의원이 ‘부동산개발업’을 시의회에 겸직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밝혀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들은 박 의원이 현직 지방의원 신분으로 해낸 일들이었다.
무엇보다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 가장 까다로웠다. 몇 제곱미터의 땅을 누구에게 얼마에 넘겼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하루 종일 계산기를 붙잡고 머리를 쥐어뜯은 날도 있었다. 며칠의 계산 끝에 나온 추정 판매금은 약 82억 원.
수법을 추적하고, 경기 이천시에 있는 농지 현장을 다녀오는 데만 약 3주의 시간이 걸렸다.


궁금했다. 박성연 의원은 왜 농지를 샀을까? 그는 시의원일까, 부동산개발업자일까?
지난 4월 중순 반론 취재를 시작했다. 하루 세 번 이상 전화를 걸었다. 이메일, 문자메시지, 카카오톡으로도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SNS상 활동도 멈췄다.
일주일 가까이 연락을 시도한 끝에 그를 직접 만나러 나섰다. 오전 7시 지하철역부터 찾았다. 출근길 주민들께 열심히 인사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의 지역구에 있는 지하철역 네 곳(광나루역, 군자역, 아차산역, 어린이대공원역)을 모두 돌았다. 출구만 23개. 출구 안팎을 샅샅이 뒤졌지만 박 의원은 만날 수 없었다. 휴대전화 건강 앱에는 5180걸음이 찍혔다.
이번엔 박 의원의 개인 사무실을 찾아갔다. 건물 입구에서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은 없었다.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건물 안으로 출입 자체가 어려웠다. 서면질의서를 우편함에 꽂아 넣는 일조차 경비원에게 맡기고 돌아와야 했다.
며칠 후 서울시의회 본관으로 직접 찾아갔다. 시의회 회기가 열린 날이니까 최소한 ‘출근’은 했을 거라 믿었다. 오전 9시부터 의회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두 시간이 흘러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 의원은 당일 아침 병가를 신청했다. 9일간의 회기 동안 상임위 회의 및 본회의는 모두 5번 열렸다. 그는 단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았다.
약 2주간 이어진 ‘의원님’과의 숨바꼭질. 그는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세 달 동안 경기 김포시, 남양주시, 여주시, 용인시, 이천시 등 총 8곳의 농지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취재는 순탄치 않았다. 5cm 통굽 구두를 신은 날 하필 산을 타고, 해가 뜨기 전부터 길에서 ‘뻗치기’를 한 날도 있었다. 농지에 대해 물었다가 ‘의원님’의 대노를 목격하기도, 질문만 하면 “짜증나”를 내뱉는 의원과 힘겹게 통화를 나눈 일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4편의 기사와 8편의 영상을 보도했다. 노고를 알아주신 농민단체 덕분에 공동고발의 기회를 얻었다.
셜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지난달 28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성연, 박상혁, 남창진 서울시의원을 농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서다.
혐의는 농지법 제6조 위반. 농지법 제6조에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박성연 의원은 구·시의원 임기 중에 자기 이름으로 수차례 농지를 취득하고, 그 땅을 자기가 대표로 있는 법인에 넘겨 택지로 개발한 혐의를 받는다. 판매 금액만 약 82억 원 추정.
현재도 소유 중인 경기 이천시 농지에도 분양사무실용 컨테이너 박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농업경영계획서상 약속한 “더덕과 콩”은커녕 어떠한 작물도 자라고 있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도, 박 의원을 같은 선거구 시의원 후보자로 공천했다.(관련기사 : <농지 사들여 수십억 개발사업한 의원, 국힘은 ‘단수 추천’>)
박상혁 의원은 소유한 농지를 약 10년 동안 농사짓는 땅으로 활용하지 않은 혐의다. 최근 10년간의 로드뷰 사진을 살펴본 결과, 박 의원이 소유한 경기 구리시 농지는 경작 없이 줄곧 컨테이너 박스 적치장과 공터로만 쓰였다. 올해 1월부터는 아예 주차장으로 지목변경까지 해버렸다. 해당 농지의 가치는 공시지가 기준으로도, 약 15억 원 상승했다(2025년 1월 기준).
박상혁 의원은 반론을 요청한 셜록에게 “개인 명의 재산을 왜 취재하느냐”며, 서면 질의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요청대로 서면질의서를 작성해 이메일과 카카오톡 및 문자메시지로 보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박 의원은 6·3 지방선거 국민의힘 공천에서 배제되자, 탈당 후 개혁신당에 입당해 다시 한번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관련기사 : <농지 얻어 주차장 만든 서울시의원… 공시지가만 15억↑>)
남창진 의원은 경기 남양주시, 여주시, 용인시 농지를 ‘다른 목적’으로 사들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현장 취재 결과, 세 곳의 농지 모두 그가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고 있었다.
남 의원은 농지를 사들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농지법을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는 ‘자백’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딴 땅 샀으면 부자됐는데”… ‘재산 1위’ 서울시의원의 짜증>)
“여주(농지)는 도예단지 (개발)한다고 (정보를 듣고) 샀어요.”
“용인은 IMF 때 토지를 사갖고 ○○빌라 분양했어요.”
“남양주(농지)는 개발을 못하고 그린벨트 (묶인 땅을) 잘못 사갖고 묶여 있는데 뭐가 문제예요? 용인 쪽 샀으면 부자 됐어요.” (2026. 5. 7. 셜록-남창진 의원 통화 내용 중)

기자회견 날, 엄 위원장은 농지법 위반 혐의 시의원들을 공천한 정당을 향해 목소리 높였다.
“농지를 투기판으로 만든 자들을 솎아내기는커녕 공천장을 쥐여주는 만행으로 인해 불법 의혹이 있는 후보들이 뻔뻔스럽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농지가 투기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비판했다.
“농민들은 기후위기, 생산비 폭등,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데 반해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농지를 투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실에 깊은 박탈감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고발장을 제출하고 경찰청을 나오면서, 셜록의 기사에 달린 페이스북 댓글을 읽었다.
“저거(의원) 고발해서 제대로 처벌받게 해야지!”
약 5개월이 걸린 서울시의원 농지 취재도, 현직 시의원들을 상대로 한 형사고발도 모두 셜록의 친구(정기유료독자) ‘왓슨’과 독자의 응원과 지지 덕분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끝까지 감시하겠다”는 약속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듯해 다행스러웠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