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바체테는 전등을 끄자마자 다시 스위치를 켰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원성 때문이다.

287일 만에 공항 노숙을 끝내고 형광등 불빛 없이 잠자리에 누웠지만, 네 자녀는 어둠이 무서워 엄마를 자주 찾았다. 레마(9), 로데(8), 실로(8), 그라샤(6) 네 아이 모두 어두워지면 불을 다시 켜라고 칭얼댄다. 앙골라에서는 없던 버릇이다.

인천공항에서 지내는 동안 어둠보다 흔한 건 빛이었다. 밤낮 없이, 루렌도 가족이 머물던 소파 위로 푸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이 내려앉았다. 공항은 24시간 잠들지 않는다.

지난 5월, 최윤도 두리미디어 편집장이 ‘잠이라도 제대로 잤으면’ 하는 바람에 가림막을 가져다 놓았으나 반나절도 안 돼 철거됐다. 인천공항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9개월의 공항 생활은 아이들의 비정상과 정상을 바꿔놓았다. 백색소음과 빛 공해 속에서 잠드는 일은 이제 아이들에게 정상의 영역이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도배된 영상 콘텐츠를 자주 찾는 것도 공항 노숙 생활 이후부터다. 뛰어놀 수 없고, 왁자지껄 떠들 수도 없는 환경에서 아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유튜브로 쏠렸다.

지난 11일 그토록 원하던 공항 탈출에 성공했음에도 엄마 아빠가 크게 웃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바뀐 아이들 때문이다. 9개월 동안 네 아이 마음에는 그늘이 천천히 드리워지고 있다는 걸 부모는 알았다. 아이들 키와 몸무게가 늘어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 내면이었다. 아이들의 내면은 공항에 고립되기 전보다 위축됐다.

지난 16일 루렌도 가족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경기도 안산의 숙소 모습. 루렌도 가족 아이들이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명선

지난 16일 루렌도 가족이 임시로 머무는 안산의 한 주택을 찾았다. 아이들의 변화를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 루렌도 부부와 달리 아이들은 휴대전화와 컴퓨터 앞에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인 크레프트와 같은 게임 영상을 휴대전화로 자주 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와이파이가 끊겨 인터넷이 연결이 안 되자 크게 당황했다. 노트북에서 와이파이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취재진에 고쳐 달라 도움을 요청했다.

노트북은 첫째 레마가 주로 사용했다. 내성적인 레마는 다른 형제들과 어울리기보다 노트북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다. 엄마 아빠의 휴대전화는 아이들 손에 쥐어진 경우가 많았다.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에는 우리말로 더빙된 만화 영화가 나왔다. 알아듣지 못해도 루렌도 가족은 한국어로 더빙된 애니메이션을 크게 틀어 놓았다. 루렌도 부부가 텔레비전 소리를 줄이라고 아이들을 다그쳤지만, 효과는 그때뿐이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라’고 말해도, 쉽게 아이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루렌도 부부는 후원자들에게 받은 수많은 여행용 가방을 임시 거처로 옮겼다. 버리지 않고 대부분 가져왔다. 언제 다시 이사를 갈 지 몰라 가지고 온 상태 그대로 짐을 풀지 않고 뒀다. 여행용 가방에 담긴 옷과 책, 생활용품 등은 루렌도 가족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루렌도 가족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후원 물품으로 287일을 버텼다.

“공항에 있는 동안 저희가 한국인에게 받았던 사랑을 잊지 못해요. 전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공항에 있던 시기가 힘들었지만, 그 사이에 많은 친구를 얻었어요.” – 바테체

지난 16일 루렌도 가족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경기도 안산의 숙소 모습.  숙소에는 공항에서 가져온 여행용 가방과 짐이 그대로 쌓여있다. ⓒ이명선

도움의 손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권단체 ‘난민과 함께 공동행동’은 루렌도 가족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해 한 명씩 돌아가면서 루렌도 가족 임시 거처를 방문한다.

루렌도 가족에게 한국 생활은 도전 그 자체다. 장을 보러 가거나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일조차 버거워 당분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지난 20일 루렌도 가족은 오랜만에 미용실을 방문했다. 안산에서 흑인 머리를 자를 수 있는 미용실을 찾는 건 어려웠다. 끝내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해 동남아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미용실에 갔지만, 원하는 머리를 할 수 없었다. 루렌도와 첫째 아들 레마, 둘째 아들 실로는 머리를 ‘빡빡’ 미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루렌도 가족은 주로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 후원자들이 집에 방문할 때 식자재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바체테는 임시 거처에 마련된 조미료로 식사를 직접 준비했다.

ⓒ이명선

그는 혼자 장을 보는 일을 여전히 어려워했다. 정육점에 가서 무심코 한우를 집어 들고 계산하려 했다가 가격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주머니 사정에 맞춰 장을 보기 위해 한국 식자재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다.

바체테가 취재진에게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밀가루에 뜨거운 물을 넣어 반죽을 했다. 루렌도 가족이 머무는 곳에는 조리기구가 있지만, 바체테는 공항에서부터 쓰던 기구로 반죽을 익혔다.

“앙골라에 있을 때 해 먹었던 거예요.”

가스레인지에서는 앙골라식 닭볶음탕이 조리됐다. 바체테는 가장 큰 그릇에 닭볶음탕을 담아 기자에게 건넸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를 도와준 친구들에게 고마워요.”

지난 16일 루렌도 가족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경기도 안산의 숙소 모습. 루렌도 가족은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해 먹는다. ⓒ이명선

고혈압, 위염, 녹내장.. 루렌도 부부 건강, 위험 수준

루렌도 가족 건강은 여전히 적신호 상태다. 공항에 있는 동안 루렌도 가족 중 절반이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아팠다. 병원에 가도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할 수 없었다.

언제 다시 병원을 방문할지 모르기 때문에, 약으로 증상을 완화 시키는 것 말고는 크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루렌도 부부는 여전히 한 움큼의 약을 매일 먹는다.

공항을 빠져나온 루렌도 가족이 첫 외부일정으로 병원을 방문한 것은 그런 배경 때문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의 도움을 받아 루렌도 가족은 지난 15일 서울 녹색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의 도움을 받아 루렌도 가족은 지난 15일 서울 녹색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최윤도

공항에서 루렌도 가족의 아침 메뉴는 항상 탈지분유와 시리얼이었다. 루렌도 부부는 그마저도 아이들에게 양보해서 부부의 영양 상태가 특히 안 좋았다.

아빠 루렌도는 극심한 위염으로 소화를 잘 못 시킨다. 지난 13일 후원자 최윤도 씨가 루렌도 가족에게 축하의 의미로 피자를 대접했지만, 루렌도는 먹지 못했다. 루렌도가 위장 장애로 몸살을 앓고 있는 탓에 식사 후 자주 토한다고 최윤도 씨는 말했다. 오랜 기간 운동을 못 하고, 비슷한 음식만 계속 먹었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루렌도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것은 고혈압이다.

지난 4월 인의협 소속 의사들이 루렌도 가족 건강을 살피기 위해 공항으로 왕진갔을 때, 의사들은 혈압계가 고장 난 줄 알았다. 두통의 원인도 알고 보니 고혈압 때문이었다. 의료진은 루렌도를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경고를 루렌도 가족 대리인단에 전했다. 루렌도는 지금도 고혈압 약을 먹고 있다.

지난 7월 루렌도 가족이 인천공항에 머물던 당시 모습. 루렌도 부부의 약 봉지가 여행용 가방 에 걸려있다. ⓒ주용성

바체테의 몸은 종합병원이나 다름없다. 그의 몸무게는 지난 해 12월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현저히 줄었다. 바체테는 가족 중에 가장 자주 병원을 찾는 사람이다.

지난 2월 산부인과를 다녀왔고, 우울증세와 불면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녹내장에 대한 관리는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국소 마취제 약물을 잇몸에 발라 ‘치통’ 참기도

바체테가 스스로 음식을 씹어 넘길 수 있게 된 것은 한 달이 채 안 됐다. 이제는 입을 크게 벌려 이가 빠진 자리를 보여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지만, 공항에 있을 때는 심한 충치 때문에 입을 제대로 벌리지 못했다.

바체테는 인천공항에서 머물며 총 6개 충치를 뽑았다. 지난 6월 컨티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충치 2개를 뽑았을 때는 저혈압 쇼크가 왔다.

나머지 4개는 2심 승소 직후 뽑았다. 지난 2일 루렌도는 바체테의 치통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며, 우석균 인의협 공동대표에게 SOS를 요청했다. 의사 우석균 씨는 바로 루렌도 가족을 대리하는 이상현 변호사에게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변호사는 루렌도 가족이 이용한 에티오피아 항공에 즉시 긴급상륙허가 신청을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기다려라”였다.

파견시킬 직원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10월 4일 오후에야 항공사 직원이 대동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루렌도가 우석균 인의협 공동대표에게 SOS 요청했을 당시 보낸 사진. 바체테가 치통으로 소파에 누워있다. ⓒ루렌도

공항 노숙 중 진료가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처야 한다. 출입국관리법 제15조에 따라 인천공항 출입국 외국인청은 병원 방문을 위해 긴급상륙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허가할 수 있다.

다만, 긴급상륙 신청은 환자가 아닌 항공사에서 해야 한다. 따라서 항공사 사정에 따라 긴급상륙 일정이 결정된다. 아파도 당장 의사를 만날 수 없는 이유다.

베체테는 이틀을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우석균 씨는 고통을 줄여주고자 고심 끝에 국소 마취제(리도카인)를 손가락을 이용해 잇몸에 바르는 걸 안내했다. 왕진도, 긴급상륙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원래 리도카인은 주사기로 투약하는 약물이다.

“재난지역이나 전쟁통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데요. 실제로 인천공항에서 벌어졌습니다. 저도 처음 해본 거였어요.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그런 거예요.” – 우석균 인의협 공동대표

“한국어 공부가 재밌어요”

루렌도 가족은 안산에서 당분간 계속 머물기로 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산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는 동네로 이사 가서 일단 아이들 학교를 알아볼 예정이다.

루렌도 가족을 돕고 있는 홍주민 한국디아코니아 목사에 따르면, 외국인학교보다 일반 학교로 입학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학교에 가고 싶다” 말하는 아이들의 바람은 조만간 이뤄질 예정이다.

루렌도 가족을 돕는 후원자들이 루렌도 가족의 정착을 돕기위해 안산을 직접 찾아 장보기 등을 돕고 있다. ⓒ최윤도

루렌도 가족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비자 특성상 등록된 임시주소지를 3일 이상 떠나려면 출입국 당국으로부터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서울, 인천, 경기도를 이탈할 수 없다. 2개월마다 인천 출입국 외국인청에 방문해야 하는 의무도 생겼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긴 여정이 남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9월 27일 원심을 깨고 루렌도 가족이 난민 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인천공항 출입국 외국인청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상고심 재판부가 루렌도 가족의 손을 들어줘도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정식 난민 심사 과정에서 난민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정착할 수 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난민 인정률은 올해 7월 기준 0.3%이다. 2009년에는 21.6%였지만, 난민인정률은 해마다 급격히 내려가고 있다.

지난 16일 루렌도 부부가 한국어 공부를 연습하고 있는 모습. ⓒ이명선

루렌도 부부는 취재진에게 한글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불어로 진행하는 한국어 수업을 유튜브로 본 적이 있다”면서 “한국어가 쉽고 재밌다”고 말했다. 부부는 “우리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취재진이 집을 떠날 때, 루렌도 부부는 외쳤다.

“한글 공부 연습 열심히 해서, 우리 가족 기사를 직접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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