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떨어지는 겨울 해는 낙동강을 핏빛으로 적셨다저녁 바람이 강을 흔들었다저문 강에 소리없는  물결이 일었다몸을 흔드는 강가의 마른 풀에선 물기 없는 소리가 났다

여가  맞나?”

맞다여다.”

강가의  남자는 핏빛 강물을 보면서 부산사투리를 주고 받았다짧은 이야기로 장소를 확인한 둘은 눈으로 강을 훑었다둘만 놓고 본다면먼저 입을  남자는 키가 작고 마른 편이다. 말을 받은 남자는  사람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

26  남자는 바로 이곳에   있다.

1990년 1월 4일 새벽, 부산 엄궁동 낙동강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다. ⓒ셜록

부산 낙동강 작은 귀퉁이가  여성의 피로 젖은 그날도 겨울이었다

달도 뜨지 않은 1990 1 4 새벽 어둠은 피보다 진했다누군가 여성 시신을 강변 갈대 숲에 버리고 떠났다동쪽에서 떠오른 붉은 해가 조금씩 갈대 숲을 밝혔다버려진 시신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다여성의 오른쪽 두개골은 함몰돼 있었다

여자 이름은 박수경(가명당시 30). 강변 곳곳에 남은 그녀의 핏자국은 아침 노을보다 진했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 새벽박수경은 혼자 낙동강변에 있지 않았다직장 동료 정현덕(가명당시 35) 승용차 안에 있었다

얼마 정현덕은 홀로 낙동강변에서 빠져 나와 가까운 공장에 몸을 숨겼다공장 직원이 발견했을  정현덕은 덜덜 몸을 떨었다그의 몸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정현덕은 공장직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에 있었는데남자  명이 습격을 했습니다 명은  크고 덩치가 좋고다른  명은 작고 말랐습니다.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사건의 실체는 달도 없는 새벽처럼 어둠에 잠겼다박수경이 살해된 날로부터 3개월 후인 4 어느  작고 마른 남자 장동익(당시 31) 딸이 태어났다파국의 물길이 조금씩 다가오는  장동익과  가족들은 몰랐다

장동익은 부산 감전동에서 아내딸과 함께 살았다. 1991 11 6그는 감전동에서 낙동강 서쪽 부산 명지동으로 이사했다이틀 뒤인 11 8김공장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장동익을 위해 아내가 저녁밥을 준비할 때였다.   

장동익씨계십니까?”

어떤 남자가 밖에서 불렀다

잠깐 이야기  합시다.”

경찰이었다장동익은 아내에게잠깐 나갔다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동익은 경찰차 조수석에 태워졌다 크고 덩치 좋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친구 최인철이다 옆의 경찰이 장동익의 귀를 잡아 당기고 뒤통수를 때리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랐으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부산 사하경찰서에 도착하고 며칠 본격적인작업 시작됐다경찰은 장동익의 손목에 신문지를 감고 수갑을 채웠다 상태로 쪼그려 앉힌  수갑 채워진  팔로 무릎을 감싸게 했다경찰은 장동익의  무릎과  사이에 쇠파이프를 끼웠다양쪽에서 쇠파이프를 들자 통닭구이의 통닭처럼 장동익의 머리는 아래로발은 위로 향하게 됐다

장동익, 최인철이 부산 사하경찰서를 바라보고 있다. ⓒ셜록

경찰은 책상과 책상 사이에 쇠파이프 양쪽을 걸었다그런 다음 장동익의 얼굴을 수건으로 덮었다겨울 낙동강처럼 차가운 물이 장동익의 얼굴에 쏟아졌다 쉬기 어려웠다

장동익네가 했지?”

뭘요?”

 새끼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하네.”

다시 얼굴에 물이 쏟아졌다

여자 네가 죽였지?”

 소립니까?”

최인철이랑 둘이 죽였잖아.”

“……”

기절 직전에 이르면 경찰은 장동익을 풀어줬다이게 끝이 아니다경찰은 다시 물었고원하는 답을 못하면 손찌검과 발길질을 했다.

손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견디겠더라고요근데거꾸로 매달아  뿌리는  정말 죽겠더라고요숨을  쉬니까완전히 녹초가 되는 겁니다.”

장동익과 최인철은 물고문과 구타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다낙동강에서 박수경을 강간살해한 ‘2인조 살인범으로 말이다.  사람은 1991 11 15일과 16이틀에 걸쳐 낙동강변에서 현장검증을 했다

경찰의 지시대로 최인철은 강간하는 모습을장동익은 돌로 여자 머리 내리치는 모습을 연기했다검찰이 1991 12 30일에 작성한 둘의 공소장에는 이런 죄명이 적혀 있다.

강도살인강도상해강도강간특수강도특수감금.’

수사기관에 따르면 장동익최인철은 최악의 범죄만 골라 저지른 셈이다검찰은 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992 8 11, 1 법원은 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여자를   없고 죽이지도 않았는데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하다니.”

 사람은 좌절했다변호사를 바꿔 2 재판을 준비했다무더위가 아직 끝나지 않은 어느 새로 선임된 변호사가  사람을 만나러 부산구치소를 찾았다장동익최인철이 접견실에들어가자 마흔이  되지 않은 젊은 변호사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문재인 변호사입니다.”

문재인 변호사의 노력에도 2 법원도 1993 1 7 무기징역을 선고했다다음  변호사가 장동익을 접견했다

장동익씨너무 좌절하지 마십시오대법원 상고이유서를  준비하겠습니다생각나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제게 편지 하십시오.”

문재인 변호사는  사람의 무죄를 확신했다하지만 대법원은 1993 4 27둘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장동익최인철은 무기수가 됐다 변호사는 상처를 받았다장동익최인철은 교도소에서 자살을 생각했다. 시간은 강처럼 흘렀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 8 15일에  사람은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1991 11 8 저녁에잠깐 나갔다 올게라며 집을 나선 장동익은 21년여 만인 2013 4 26 새벽에 귀가했다. 기약 없는 외출늦어도 너무 늦은 귀가아내는 집에 없었다

오래 무기수 장동익은 새출발 하라며 아내를 놓아 주었다옥중에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앞이  보이지 않는 장동익 앞에 딸이 섰다 얼굴은 또렷하지 않았지만, 18개월  헤어진  딸이 아닌  확실했다. 딸은 24 성인이  있었다.

최인철은 2013 6 24 귀가했다그의 아내와 처남도 전과자가  있었다. 법정에서 최인철의 알리바이를 증언한 처남은 위증아내는 위증교사 혐의로 구속됐다남편이 없는 동안  아이를 키운 아내는 오래 걸을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졌다장동익최인철에게 감형장을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서거했다.

법정에서  사람의 무죄를 주장한 청년 변호사 문재인은 대통령이 됐다. 낙동강은  자리에 있는데이렇게 많은  달라졌다여러 사람을 파국에 빠트린 운명의 물길을 이제 바로 잡을 차례다

 또한 운명일까? 청년 변호사 문재인에 이어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이  사건을 맡았다 변호사는 지난 5 8 장동익최인철의 재심청구서를 부산지방법원에 접수했다

 변호사는 반드시 재심과 무죄를 이끌어 내겠다 다짐했다 변호사와재심 시리즈 3부작 – 무기수 김신혜 사건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등을 함께 진행한 신윤경양승철박성철허정택 변호사도 다시 힘을 보탠다.

여기에   어린 시절 의료사고로 오른쪽 시력을 잃은 김예원 변호사도 함께 한다장애인권법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변호사는 그동안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해왔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을 체포해 진실규명의 토대를 닦은 황상만  군산경찰서 형사반장도 길을 나섰다.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기획으로 장동익최인철의 사연을 세상에 처음 알리고 지금도 재심을 위해 노력하는 <일요신문문상현 기자도 함께 한다박준영 변호사와  사건을 연결시킨 이가 바로  기자다.  

여기에  변호사와 함께  사건 재심과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북한 이탈주민 홍강철, 2015년부터재심 시리즈 진행했던 진실탐사그룹 <셜록박상규 기자도 함께 한다

우리는 확실히 말할  있다

장동익최인철은 살인범이 아니다경찰은 고문으로 둘에게 누명을 씌웠고검찰은 이를 검증하지 못했으며법원은 오판을 했다.

어떻게 확신 하냐고우선여기에서 하나만 밝히겠다살해된 박수경와 함께 있던 직장 동료 정현덕은 경찰에게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키 작은 범인(장동익)이 저의 머리카락을 잡고 (낙동강변) 갈대밭으로 끌고 내려갔습니다. 물가로 가서 범인이 한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잡고 ‘너는 죽어야 된다’면서 발로 차 저를 물에 처박았습니다.  제가 물 밖으로 나가려 하니 범인이 (물속으로) 따라 들어와 같이 물속에서 약 10분간 서로 주먹으로 치고 박았습니다. (중략) 범인이 다시 제 머리카락을 잡고 차 있는 곳까지 끌고 갔습니다.” – 경찰 작성 1차 진술조서 참고영화, 드라마에서 본 듯한 강변 격투 장면.

말이  된다왜냐고장동익은 시각장애인이다시신경위축 증상으로 앞을    없다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시신경의 기능을 회복할 특별한 치료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장동익은 칠판이 보이지 않아 초등학교를 5학년까지만 다녔다.  

군대도 시신경위축으로 인한 저시력으로 면제됐다기록에 따르면 재판 당시 그의 시력은 오른쪽 0.04, 왼쪽은 0.02였다사물의 윤곽만 겨우 확인할  있는 수준이다이런 장동익이 달도 뜨지 않은 검은 밤에 낙동강 물속에서 건장한 남성과 격투를 벌였다고? 이건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엉터리 조작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기획가짜 살인범 낙동강 2인조의 슬픔  3개월간 진행하면서 진실을 하나둘 밝히겠다오래  사건이지만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여기에 사진 하나를 공개한다

17개월 된 딸을 안고 있는 장동익씨와 아내. 오른쪽은 최인철씨와 아내, 두 아이다. 1개월 뒤, 장동익과 최인철이 살인 누명을 쓰고 무기수가 되면서 이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해체된다. ⓒ최인철

어른 넷과  아이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장동익최인철의 가족이 1991 10부곡하와이로 놀러  찍은 사진이다.  1개월  남자는 경찰에 끌려가 무기수가 됐다

 가족은 완전히 무너졌다어른아이   없이 사진  7명은 한동안 뿔뿔이 흩어졌다저마다 상처를 끌어 안고 21년여를 살았다이들의 아품을 위로하는  진실뿐이다

장동익최인철을 변론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누구보다 이들의 슬픔을  안다대통령으로 당선하기 전인 2016 9 중순문재인은 장동익최인철을 다시 만났다 사람의 손을 잡았을  문재인의 눈은 붉어졌다

변호사로 30년가량 일했습니다저에게 가장 가슴 아픈 기억한으로 남은 사건입니다. 억울한 사건이어서  사람의 무기징역이 확정된 후에도 면회를 갔고편지도 주고받았습니다아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장동익씨의 어머니를 잊을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자신이 변론했던 최인철(왼쪽에서 두 번째), 장동익씨를 다시 만났다. 2016년 9월 모습으로 대통령이 되기 전이다. 맨 오른쪽은 박준영 변호사다. ⓒ박준영

문재인 변호사가 대통령이 됐다고 권력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다우린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에서 그랬던 것처럼 진실의 힘으로 재심과 무죄를 이끌 계획이다우린 진실의 힘을 믿는다

가짜 살인범 장동익최인철이 낙동강을 떠날 무렵 태양은 서쪽으로 완전히 가라 앉았다핏빛 강은 금세  겨울의 새벽처럼 어둠에 잠겼다겨울 바람이 불어와 검은 강에 잔물결이 일었다앞이  보이지 않아 혼자 낙동강에서 벗어나는 일도 버거워하는 장동익의 손을 최인철이 잡아줬다우린  핏빛 강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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