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오물’은 사회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2023년, 특정 시민들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한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 이들 시민 중 한 명은 윤석열, 김건희 부부의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최초로 올린 사람. 그리고 출입이 거부된 다른 시민들도 윤석열 정권이나 용산어린이정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 등에 참여한 적 있는 이들이었다.

대통령경호처는 사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용산어린이정원 운영 기관에 특정 시민들의 출입 거부를 요청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들의 신원을 따로 파악해서 용산어린이정원에 출입할 수 없도록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시민들은 지난해 행정소송을 통해 출입거부 조치가 위법하다는 걸 확인했다. 이제는 국가배상소송이다. 블랙리스트 피해 시민들은 올해 3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윤석열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오물’은 여전히 남아 있다. 2023년 용산어린이정원에 전시된 윤석열 정권 홍보 사진. ⓒ셜록

10일 오전 10시 2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941민사단독(법관 곽경평).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시민들의 국가배상소송 첫 재판이 열렸다.

열 석 남짓한 법원 방청석은 소송 관계자들로 이미 북적였다. 일부 시민들의 정원 출입을 막는 데 관여한 국가기관인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통령경호처 직원들이었다.

이번 국가배상소송에 참여한 시민은 총 22명.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 대표 등 용산 주민들과 대학생들이다. 이날 재판에는 원고 중 김은희 대표만 참석했다.

이들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총 2억 2000만 원.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대리했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 공동변호인단이 이번 국가배상소송도 대리했다.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2022년 12월 경기도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서 리트리버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낸 사진을 용산어린이정원 특별전시에서 전시한 모습(위). 위 사진을 도안으로 한 색칠놀이 사진(아래) ⓒ셜록

김 대표는 2023년 7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에 최초로 알린 인물이다. 그는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윤 대통령 부부 모습이 담긴 색칠놀이 도안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하는 걸 발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대통령 부부를 우상화한다는 여론의 비판이 일었다.

그로부터 약 10일 뒤, 다시 용산어린이정원에 들어가려던 김 대표는 자신이 출입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대통령 부부 ‘우상화’ 비판은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번졌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 대표와, 그와 동행한 용산 주민 5명 외에도 최소 23명의 시민이 출입거부된 사실을 밝혀냈다.(관련기사 : <최소 23명 더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출입이 가로막힌 시민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비판해온 사람들.

10일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국가배상 소송 첫 재판에서 판사는 피고 대한민국 측에 요청했다. 일부 시민들에 대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경위를 밝히라고.

“피고 대한민국은 (정원 출입금지) 과정을 (원고가) 추측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내용들은 어떻게 원고 당사자들이 알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경위로 그와 같은 일(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이 벌어졌는지 재판부도 알아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진행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처분 무효확인’ 행정소송에서도, 대통령경호처는 출입제한을 요청한 사유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관련기사 : <“윤석열 정원 블랙리스트”… 또 한 번 ‘위법’ 판결>)

김은희 대표는 ‘출입금지 무효확인’ 소송에서 승소하기 전까지,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할 수 없었다 ⓒ셜록

판사는 대통령경호처를 향해 대통령실 주변 경호 관련한 질의를 이어서 했다.

“대통령실 주변에 있는 시설들은 통상 이용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아서 뭔가를 판단하고 요청하나요?”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도 하는데, (용산어린이)정원 안에는 누가 들어가면 안 되는 건가요?”

하지만 대통령경호처 담당 직원은 같은 말만 반복했다.

“정확한 상황은 저도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뭘 더 확인해봐야 하는 걸까?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조치로부터 약 3년, “위법하다”는 법원의 확정판결로부터 약 1년이 흘렀는데도, 대통령경호처는 아직도 “확인해보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출입금지 조치가 위법하다”는 사실은 이미 법원의 판결을 통해 확인됐다. 대통령경호처가 출입금지 조치의 위법성을 확인할 자격도 없고, “정확한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는 핑계를 이유 삼아 답하지 않을 명분도 없다.

기자야말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도대체 왜 대통령경호처는 일반 시민들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막아달라 요청한 걸까? 재판이 끝나고, 기자는 대통령경호처 직원을 쫓아가 물었다. 왜 특정 시민들의 출입을 막아달라 요청한 건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시민들의 국가배상소송 첫 재판이 열렸다. 김은희 대표(좌)와 민변 변호인단.ⓒ셜록

하지만 경호처 직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걸어갔다. 기자가 쫓아가 명함을 건네도 받지 않았다. “명함만 받아달라”고 부탁해도, 응하지 않았다. 앞만 보고 빠르게 걷던 직원은 법원 앞에 기자만 홀로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또 다른 경호처 직원은 “다음 재판 기일 때 말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12월 용산어린이정원을 전면 개방했다. 현재는 사전예약 등 별도의 출입절차 없이 누구나 정원을 드나들 수 있게 됐다.

김은희 대표가 이번 국가배상소송을 통해 바라는 건 단 한 가지다.

“이번 소송의 목적은 손해배상금을 받는 것보다도 진실을 밝히는 겁니다. 왜 출입금지 조치를 해서 국민들의 인권,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말입니다. 대통령경호처는 반성하는 차원에서 성실하게 답만 해주면 좋겠습니다.

다음 재판은 7월 22일 오후 2시 45분 열릴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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