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말] 지난해 8월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과거 피겨스케이팅 코치로부터 아동학대 피해를 입은 고연서(가명) 씨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보도 이후, 가해 코치는 셜록 조아영 기자를 고소했습니다. 사건은 현재 검찰에 넘겨진 상태입니다.
아동학대 가해자가 기자를 고소한 사건. 피해자에겐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을 위해 나서준 기자가 법정에 서야 할지도 모르는 모순적인 상황은, 피해자에겐 또 다른 고통이 됐습니다. 가해자는 기자를 고소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또 한 번의 ‘가해’ 행위를 한 셈입니다.
결국 피해자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습니다. 검찰에 기자의 불기소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피해자는 말합니다. 셜록의 보도가 “숨 쉬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계기”라고. 피해자 연서 씨가 쓴 A4용지 7장 분량의 탄원서를 일부 편집해 독자에게 전합니다.
존경하는 검사님께.
저는 2011년부터 2016년 사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상습적인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자 고연서(가명)입니다.
2016년 저는 ‘보호’가 아니라 ‘보복’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2016년 2월 피해 사실을 외부에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보호나 공감이 아니라 보복성 팀 퇴출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피해 사실을 말한 사람이 아니라 ‘망상에 빠진 거짓말쟁이’로 취급되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제가 겪은 사실 자체를 의심받는 상태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학대의 상처도 힘들었지만, ‘거짓말쟁이’로 살아가는 시간은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극심한 트라우마 속에서 삶을 지속해야 했고, 주변의 시선과 낙인을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에 놓였습니다.
2024년 12월 (가해자를) 고소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와 유사한 의심과 왜곡된 시선이 다시 형성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어린 시절부터 틱장애를 겪어왔는데, 이마저도 사건의 신빙성을 훼손하기 위한 공격 도구로 왜곡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가해 행위자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의 화살이 엉뚱하게 피해자인 저에게 향하며 발생한 사실상 2차가해로 체감되는 공격이었습니다.
신체적 증상을 빌미로 제 진술의 신빙성을 깎아내리려는 무분별한 공격이 이어졌고, 나아가 제 고소 의도까지 의심하는 방식의 공격은 2016년과 같은 ‘낙인’ 구조의 반복이었습니다. 공론화 이후에도 저는 여전히 ‘보호받는 피해자’가 아닌 ‘의심받는 폭로자’의 굴레에 갇혀 있었습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보도 이후, 저는 처음으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5년 8월 셜록의 (가해자) 실명 보도 이후,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관련기사 : <‘김연아의 꿈’은 사라지고… 학대의 악몽만 남았다>)
그전까지 이 사건은 ‘피해자의 주장’ 정도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명 보도를 통해 가해행위의 주체와 사건의 구조, 시간적 맥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사건은 보다 명확한 사실관계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제 피해가 사회적으로 ‘실제로 있었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저의 틱장애도 더 이상 왜곡의 근거로 사용되기 어려워졌고, 제 피해 역시 ‘망상’이나 ‘거짓말’로 단정되는 분위기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가해 행위자의 실명이 공개된 이후, 그 주변 인물로부터 제가 공개적으로 공격받는 일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최소한 공개적인 공간에서의 노골적인 왜곡이나 비난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실명 보도를 통해 가해행위의 주체가 명확해지자, 비로소 사건을 바라보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사회의 시선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행위와 그에 대한 책임 문제로 옮겨갔습니다.
그 결과 (당시) 8개월 이상 멈춰 있던 (대구빙상경기연맹의) 징계 절차가 그제야 시작되었고, 국정감사에서도 사건의 본질이 다뤄질 수 있었습니다.(관련기사 : <‘피겨 학대’ 국감에서 질타… “이게 화해될 일인가!”>)
저에게 실명 보도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사건을 흐리지 않고 가해행위와 그에 대한 책임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정보였습니다.
(가해자) 실명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소문과 의심 속에서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러한 구조가 결국 피해자를 다시 침묵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셜록의 보도는 저에게 단순한 언론 보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보도는 오랫동안 ‘망상’과 ‘거짓’이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야 했던 제가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과거를 되짚는 기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앞으로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든 최소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저는 셜록의 (가해자) 실명 보도로 인해 피해자인 제가 특정되어 보호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편집자 주 : 가해 코치는 ‘아동보호 사건에 관련된 아동학대 행위자를 포함해 피해 아동과 주변인의 인적사항 등을 보도하면 안 된다’는 아동학대처벌법 제35조2항을 이용해 기자를 고소했다.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 취지를 거꾸로 악용한 것.)
오히려 그 보도를 통해 저는 오랜 시간 이어진 의심의 틀에서 벗어나, 사회 안에서 피해자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 회복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편집자 주 : 피해자는 학대 트라우마로 인해 13년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저는 처음부터 제 삶을 공론의 장에 내놓고 싶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아동학대 피해자가 자신의 과거를 사회에 드러내는 일은 또 다른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며, 저는 가능한 한 오래 침묵했고, 개인적으로 견디며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론화에 이르게 된 이유는, 침묵 속에서는 구조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 돌아온 것은 보호가 아니라 보복과 낙인이었고, 고립이었습니다.
십여 년을 고통 속에 지내던 저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고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가해자) 고소를 결심했습니다.
2016년 “고소하면 (팀 소속 선수로) 받아줄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들으며, 그저 피겨가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에 고소를 포기해야 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십여 년이 지난 뒤 다시 고소를 결심하는 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고소를 선택했습니다. 제 삶을 걸고 선택한 결정이었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며 비로소 법의 판단을 기대했지만, 그 판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여러 형태의 접촉과 설득, 합의 권유 등이 이어졌습니다.
그 접촉들은 단순한 안부나 우연한 만남의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고소의 취지와 문제제기를 철회하거나 완화하도록 압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저는 그 과정에서 심리적 부담과 위축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상황들이 사실상 ‘회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회유와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셜록의 실명 보도는 가해 행위자 측의 부당한 접근을 차단하고 사건을 공적 영역으로 완전히 끌어올리는 등 실질적 보호로 작동했습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는 가해행위 그 자체만큼이나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구조와 낙인이 피해를 장기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가해 행위자가 특정되지 않은 채 보도가 이루어질 경우, 사건의 초점은 가해 행위와 그에 대한 책임문제가 아니라 “피해자가 누구인가”로 이동하게 됩니다.
실제로 저는 (가해자) 실명이 공개되기 전, 주변에서 피해자를 추측하고 찾아내려는 움직임과 시선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가해 행위자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피해자만이 의심과 추측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보호를 이유로 가해 행위자를 특정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역설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피해자만 더 많은 공격과 노출에 놓일 위험이 있습니다. 피해자 보호의 명분이 오히려 가해 행위자를 가리고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저는 해당 보도가 가해 행위자를 개인적으로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건의 실체를 투명하게 밝혀 피해자의 고립을 해소하고, 견고한 학대 구조를 공론화하여 추가 피해를 방지하고자 했던 공익적 행위였다고 확신합니다.
결과적으로 그 보도는 저를 위험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를 옭아매던 ‘거짓말쟁이’라는 낙인에서 조금씩 벗어나 다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숨 쉬며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계기였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실명 공개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학대 사건에서 ‘피해자 보호’가 실제로 누구를 보호하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검사님께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부디 ‘진정한 피해자 보호’란 가해 행위자의 이름을 가려주는 소극적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억울한 누명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진실과 책임의 위치를 바로 세우는 적극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함께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셜록 조아영 기자 불기소 탄원 구글폼 : https://forms.gle/hGSZrEwy2tjHT5M67
※ ‘칼날 위의 아이들’ 프로젝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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