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탐사그룹 셜록은 10세 전후의 아이를 약 5년간 학대한 가해자의 이름, 얼굴을 최근 가렸습니다. 프로젝트 ‘칼날 위의 아이들’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스포츠계 아동학대 사건 가해자는 그렇게 셜록의 지면에서 사라졌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의 결정에 따른 조치입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셜록의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지난해 8월 제기했습니다. 재판부는 셜록의 기사는 사실과 공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해자의 이름과 얼굴은 가리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셜록은 재판부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모든 걸 수긍하는 건 아닙니다. 셜록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고 재발방지라는 공익적 목표를 위해 가해자 정보를 공개했습니다.

셜록이 재판부에 낸 의견서를 독자 여러분에게 공개합니다.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보도에서 멈추지 않고 문제해결까지 지향한다.’

셜록의 존재 이유이면서 타 매체와의 차별성입니다. 콘텐츠(보도물)를 선정하고, 문제해결을 도모할 때까지 셜록은 여러 검증을 거칩니다.

셜록은 매주 1회 이상 박상규 대표 포함 전 직원이 참여하는 전체회의를 진행합니다. 셜록의 자문 변호사도 매주 회의에 참석합니다. 셜록의 모든 구성원은 이 자리에서 토론을 통해 콘텐츠 아이템을 선정합니다. 공익성, 대중성, 법률 위반과 인권 침해 여부 등은 선정의 핵심 기준입니다.

기사는 초고 단계에서부터 자문 변호사는 물론 모든 구성원에게 공개됩니다. 토론과 검증은 보도 직전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프로젝트 ‘칼날 위의 아이들’ 역시 같은 공익적 기준으로 선정과 검증을 거쳤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문제는 셜록 내부에서도 쟁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 ‘공익적 가치와 사회적 이익이 더 크다’는 결정을 내린 배경과 이유는 이렇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빙상장에서 훈련 받고 있는 피해자 고연서(가명)와 동료 선수들 ⓒ셜록

셜록은 학대 피해를 겪은 두 사람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피해자 고연서(가명), 이효민(가명)이 그들입니다. 두 피해자가 겪은 구체적인 학대 피해는 재판부도 ‘사실로 보인다’고 판단한 만큼 이 지면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관련기사 : <‘김연아의 꿈’은 사라지고… 학대의 악몽만 남았다>)

셜록은 학대 피해를 겪을 당시 피해자의 ‘나이’에 주목했습니다. 가해자에게 피겨스케이팅을 배운 고연서, 이효민은 10세 전후의 어린 나이에 학대를 겪었습니다. 아동기에 겪은 학대 피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깊은 내상을 남긴다는 건 여러 사례와 학술연구로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피해자 고연서, 이효민은 부모 등 보호자가 없는 전지훈련장 등에서 심각한 학대를 당했습니다. 학대 가해는 한 차례, 혹은 짧은 기간 안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연서의 경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인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약 5년간 학대를 당했습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입에 가위를 넣는가 하면 스케이트 날집으로 허벅지 등을 구타했다고,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말하면 혀를 잘라버린다”는 경고를 들었다는 기억도 선명히 증언했습니다. 

친밀하고도 위계가 확실한 코치의 한마디에 두 어린아이는 입을 닫았습니다. 어떻게,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 등 피해 사실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이이기도 했습니다. 대개의 아동학대 피해가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는 이유입니다.

두 사람은 20대 중반이 돼서야 자신들이 겪은 학대 사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두 피해자는 큰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피해자 고연서는 2014년부터 우울증, 자살충동 등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진료 기간만 무려 10년이 넘습니다.

대개의 아동학대 범죄는 위계가 확실한 어른이 은밀한 공간에서 저지릅니다. 피해 아동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합니다. 구체적인 설명 자체가 또 하나의 공포입니다.

그 탓에 아동학대는 공론화가 어렵고, 공론화가 어려우면 재발방지도 힘듭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이런 은밀한 환경에 자신을 숨기곤 합니다. 셜록은 그 은밀한 폭력을 모호하게 다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셜록은 추가 피해자 이효민(가명) 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셜록

책임 있는 스포츠계의 어른들이 나섰다면, 최소한 대구빙상경기연맹 등이 나섰다면, 셜록은 해당 문제를 보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빙상경기연맹이 폭력의 심각성과 아동 인권을 무게 있게 받아들여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재판부의 고뇌와 셜록의 이런 답변서 또한 불필요했을 겁니다.

스포츠계의 폭력은 모두가 인지하는 오랜 악습입니다. 피해자 고연서는 이런 문화 속에서 홀로 나섰습니다. 최초의 학대가 발생한 지 13년 만인 2024년 12월 가해자를 경찰에 고소하고 대구빙상경기연맹에 징계요구서를 제출했습니다.

셜록이 보도한 대로, 대구빙상경기연맹은 가해자에 대한 조치보다 피해자를 회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특별한 모습이 아닙니다. 스포츠계에서 폭력을 겪은 여러 피해자가 사실을 알려도, 연맹 등 책임 있는 사람들은 적절한 문제 해결을 하지 않아 왔습니다. 한국의 스포츠계에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관련기사 : <‘피겨 학대’ 국감에서 질타… “이게 화해될 일인가!”>)

피해자와 셜록은 이 문제를 바로잡는 데 작은 밑돌을 놓고 싶었습니다. 익명 뒤에 숨은 가해자의 구체적인 정보와 폭력을 알려야만, 더디게라도 문제가 해결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재판부가 결정문에 적시한 대로 가해자는 “일개 코치”일 수 있지만, 동시에 국가대표 코치를 지낸 공적 인물입니다. 가해자가 가르친 제자는 2024년 3월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셜록은 아동학대 사건을 2025년 8월에 보도했습니다. 이미 ‘국가대표 코치’로 소개된 가해자를 공적인 인물로 보기에 충분했습니다.

가해자(맨 오른쪽)는 국가대표 코치가 되어,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제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공개했다 ⓒ팀A+인스타그램

가해자가 공적 지위를 얻은 만큼,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필요도 있었습니다. 단순한 과거 사실 폭로가 아닙니다. 다른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코치를 선정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정보로 판단했습니다. 아동학대 등 추가 피해자를 막는 공익적 절차입니다.

공적 인물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땐 인지도와 대중성만을 고려해선 안 됩니다. 그가 어떤 장소에서 무슨 역할을 수행하는지 여부도 중요한 판단 요소입니다.

학생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 등 스포츠 지도자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학생 선수들의 훈련 현장은 동시에 교육 현장이기도 합니다. 가해자는 교육 현장이라는 공적 현장에서, 교육이란 이름의 공적인 일을 수행하면서 아동학대를 저질렀습니다. 그의 이름이 얼마나 알려졌는지만을 따져선 안 됩니다.

교육자가 교육 현장에서 저지르는 학대 등 범죄 행위는 더욱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체벌을 금지하는 등 학교에서의 아동학대를 엄하게 다뤄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운동부 학생’의 인권침해와 아동학대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제대로 발견되지도 않고, 처벌 등 조치나 대책도 미흡한 편입니다.

가해자가 저지른 아동학대의 양태, 피해자가 받은 충격, 학대 피해 아동의 수, 학대 기간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미성년 아동을 가르치는 코치라는 교육자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성폭력 범죄자의 교육현장 활동을 금지하는 조치에 맞먹는 결정이 내려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대구빙상경기연맹 등 책임기관은 사건을 인지한 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는 2025년 4월 코치직에서 은퇴했다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이는 셜록이 파악한 사실과 다릅니다.

같은 해 5월 대구시체육회는 가해자가 “출산과 육아로 인하여 현재 근무를 하고 있지 않으며, 사건이 최종 종결되기 전까지 업무에서 배제하도록 조치하였다”고 밝혔습니다. 7월에도 빙상장 대관표에는 가해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실상 은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사실에 기초한 공익적인 보도가 필요했습니다.

가해자는 셜록의 보도 이전에 이미 ‘국가대표 코치’로 이름과 얼굴이 언론에 알려졌습니다. 2023년 대구MBC 방송 출연 화면 캡쳐 ⓒ대구MBC Program
2024년 신아일보 보도 캡처. 가해자는 여기서도 이미 ‘국가대표 코치’로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아일보

재판부가 결정문에 적시한 대로, 셜록보다 먼저 해당 사건을 보도한 KBS 등은 가해자 실명 등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동학대 사실은 세상에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빙상경기연맹은 가해자 징계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는 익명 보도 뒤에 숨은 채 적절한 조치를 받지 않았습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가해자를 두고 ‘정의실현’을 말하긴 어렵습니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 또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피해자가 검찰에 낸 탄원서에 적시한 대로, 익명 보도는 피해자의 증언을 의심받게 하고,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색출을 부추기는 기대하지 않은 현상까지 낳았습니다.(관련기사 : <피겨 아동학대 피해자가 기자를 위해 쓴 탄원서>)

셜록의 실명 보도 이후에야 대구빙상경기연맹은 가해자 징계 절차를 개시했습니다. 실질적인 공익적 절차가 진행된 겁니다.

2018년 1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성폭행과 학대 피해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 사건의 가해자도 코치였습니다. 조재범 코치는 고등학생이던 심 선수를 성폭행했고, 이후에도 가혹행위를 지속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조재범의 얼굴과 이름을 보도했습니다.

언론이 조재범의 신상을 공개한 이후, 공익적 변화가 뒤따랐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영구제명 조치 대상이 되는 성폭력의 범위를 넓히는 등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꾸려졌고, 대한체육회에도 인권센터가 생겼습니다.

피해자 이효민 씨가 캐나다 전지훈련에 참여한 사진 ⓒ셜록

셜록은 2018년 10월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폭력과 직장 내 갑질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당시 셜록은 양진호 회장이 직원의 뺨을 때리는 영상을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물론, 실명, 회사 이름까지 모두 공개했습니다. 사적 응징이 아닌 공익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내용을 비교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양진호 회장이 저지른 폭력과 피겨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은 학대 내용을 비교해봅니다.

양 회장은 공개된 장소에서 직원의 뺨을 때렸습니다. 그는 워크숍에 참여한 직원들 앞에서 살아 있는 닭을 죽였습니다. 이런 내용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국회는 일명 ‘직장갑질 방지법’을 만들었습니다. 셜록의 사실 공개는 공익에 기여했습니다.

피겨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은 학대 내용은 어떨까요? 가해자는 10세 전후의 아이를 화장실에서 때리고, 스케이트 날집으로 수백 대를 구타했습니다. 천식 환자에게 치료기 사용을 막았다거나, 입 안에 가위를 넣었다거나 하는 피해자의 증언은 놀랍도록 잔혹한 수준입니다. 언어적, 정서적 학대 역시 지속적으로 반복됐습니다.

가해자를 익명으로 보도하면, 결국 가해자를 돕고 재발방지라는 공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셜록의 보도 이후 ‘아동학대방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상습 조세 포탈자, 양육비 미지급자 등은 국가가 나서서 실명, 주소 등을 공개합니다. 개인정보 공개로 얻을 수 있는 공익이 크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그렇다면 아동학대 범죄와 가해자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다루고, 언론은 어떤 방식으로 보도해야 할까요?

셜록은 이 문제를 깊이, 오래 숙고했습니다. 이제는 아동학대 가해자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것이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직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운 아동에겐 구체적이고 보다 효과적인 보호막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아동학대처벌법 독소조항 개정 토론회’가 열렸다 ⓒ양문석 의원실

다시 한 번 ‘미투’ 운동을 떠올립니다. 미투 폭로자들은 개인적 피해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수사기관이 나서기 전에,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피해자들이 먼저 나섰습니다. 피해자들의 ‘개인적 사건’ 전달과 가해자를 구체적으로 알리는 운동은 젠더 폭력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스포츠계에서는 심석희 선수의 미투 덕분에 학생 선수의 인권실태 전수조사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2019년 11월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초중고 학생선수 63,211명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신체폭력을 경험한 학생선수는 8,440명. 주요 가해자는 지도자였습니다. 초등학생 선수를 폭행한 가해자 중 지도자는 75.5%나 차지했습니다.

여기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누가 피해자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겁니다. 새로운 가해자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도하는 일이 셜록의 최선이었습니다.

셜록이 보도한 사건 피해자들 역시 심석희 선수 등 미투 사건 피해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피해자 고연서의 용기 있는 제보 덕분에 학대 사건을 은폐하려는 대구빙상경기연맹과 가해자의 만행이 드러났습니다. 고연서는 피해자면서 동시에 공익제보자로 나섰습니다.

셜록의 보도 이후 가해자는 보도 기자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습니다. 이에 피해자 고연서는 검찰에 탄원서를 냈습니다. 마지막으로 탄원서의 한 대목을 여기에 옮깁니다.

“본 사건의 실명 보도는 피해자에게 향하던 의심과 공격을 ‘가해 행위와 그에 대한 책임 문제’로 전환시키는 등 피해자의 실질적 보호와 공익적 문제 제기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였음을 탄원합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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