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자찬 말잔치는 사실 ‘거짓말’ 잔치였다. 2023년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5월 4일. 용산 미군기지가 떠난 땅에 용산어린이정원을 만들어 개방하는 행사에서 윤석열은 말했다.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공간이 되도록 용산어린이정원을 계속 가꾸겠습니다.”

대통령실은 “‘국민’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졌다”고 추켜세웠다. 국토교통부 역시 “(미군부대 반환부지를) ‘국민’ 품으로 돌려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여기 언급된 ‘국민’은 오직 ‘윤석열 말에 토 달지 않는 국민’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윤석열이 2023년 5월 4일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정원 개방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전신청제로 입장이 가능했던 용산어린이정원. 대통령경호처는 입장을 신청한 시민들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특정한’ 시민들의 출입을 막았다. 심지어 아무 권한도 없는 대통령경호처가 별도의 아이디를 가지고 관리 시스템을 마음대로 들여다보며 출입거부 결정을 내려온 정황도 보인다.

대통령경호처에 의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이 거부된 사람들, 누구일까. 먼저 ‘대통령 부부 우상화’ 논란을 낳았던 어린이 대상 윤석열-김건희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 대표다.

그리고 20여 명의 용산 주민들과 환경 동아리 대학생들. 이들에게는 용산어린이정원 ‘졸속’ 개방에 반대하는 기자회견 등 활동에 참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용산어린이정원은 개방 전부터 미군부대 토양 오염 문제 등으로 시민들의 우려 목소리가 높았다.

대통령경호처는 어떻게 이들만 골라서 ‘출입거부’ 조치를 할 수 있었을까.

특정 행위 혹은 특정 물품 반입을 금지한 게 아니라, 특정 ‘인물’을 콕 집어 출입을 막은 초법적 발상.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고, 윤석열 부부 색칠놀이 우상화 사건은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번졌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2년 12월 경기도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서 리트리버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낸 사진을 용산어린이정원 특별전시에서 전시한 모습(위). 위 사진을 도안으로 한 색칠놀이 사진(아래) ⓒ셜록

블랙리스트 피해 시민들은 지난 3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난해에는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며, 출입거부 조치가 위법함을 확인했다.(관련기사 : <“윤석열 정원 블랙리스트”… 또 한 번 ‘위법’ 판결>)

이번 국가배상소송에 참여한 시민은 김은희 용산시민회의 대표 등 22명. 이들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총 2억 2000만 원이다.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941민사단독(법관 곽경평)은 국가배상소송 두 번째 재판을 열었다. 판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에 물었다. LH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어린이정원을 위탁받아 관리해왔다.

  • 판사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관리) 시스템 자체 운영을 대통령경호처에 맡겼습니까?”
  • LH 측 : “맡겼다기보다는 대통령경호처 직원들이 아이디를 갖고 접속을 할 수 있었던 걸로 압니다.
  • 판사 : “경호처에서 (출입) 승인을 해줘야 (용산어린이정원에) 입장을 시킬 수 있었나 보죠?”
  • LH 측 : “네 그렇습니다.”

새로운 증언이다. 대통령경호처가 별도의 아이디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관리 사이트에 접속했고, 출입신청 내역을 일일이 확인해 특정 시민들에 대한 출입거부를 직접 결정해왔다는 것. 대통령경호처가 LH 측에 출입거부 조치를 ‘요청’해왔다는 기존의 증언보다 훨씬 심각한 내용이다.

김은희 대표는 ‘출입금지 무효확인’ 소송에서 승소하기 전까지,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할 수 없었다 ⓒ셜록

대통령경호처가 시민들의 방문 신청을 승인할 권한이 있는 걸까? 이번 국가배상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서창효 변호사(법무법인 원곡)은 이렇게 지적했다.

“LH의 답변을 보면, 실질적인 출입관리 주체가 LH가 아니라는 취지로 읽힙니다. LH가 위탁받은 출입관리 권한을 사실상 대통령경호처가 행사하도록 한 것인데, 이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위법행위라고 할 것입니다.

대통령경호처는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 이 시민들의 출입을 거부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들만 특정해서 거부할 수 있었는지. 그동안 대통령경호처는 용산어린이정원이 대통령실 가까이 있어 경호구역이란 이유로 일부 시민의 출입금지를 요청했다고 설명해왔다.

판사는 피고 대한민국(LH, 국토교통부, 대통령경호처) 측에, 원고가 요청한 사항에 대한 진술을 준비하라는 석명준비명령을 내렸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가능하면 밝힐 건 다 밝히고 마무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판부도 궁금합니다. 어떤 경위로 (특정 시민들의) 출입을 막게 됐냐는 건데, 명확하게 밝히고,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되는 대로 판단을 받으면 될 텐데요.

이로써 사건의 이름을 다시 고쳐 불러야 할 듯하다.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윤석열 경호처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당시 대통령경호처장이 바로 김용현이다. 12·3 내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은 불법계엄을 모의·지휘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대통령경호처에 의해 ‘입틀막’을 당하며 사지가 들려 끌려나가는 모습 ⓒ연합뉴스

돌이켜보면, 윤석열 정권의 독재적 ‘폭압정치’의 상징적 장면에는 늘 대통령경호처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입틀막’ 사건들이다.

강성희 당시 국회의원(진보당, 전주을)은 2024년 1월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경호처 소속 경호원들에 의해 사지가 들리고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갔다.

같은 해 2월, 임현택 당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 현장에서 경호처 직원들에게 양팔이 잡히고 입이 틀어막힌 상태로 끌려나갔다. 그로부터 약 2주 후,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 씨도 학위수여식에서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막히고 사지가 들린 채 퇴장당했다.

대통령경호처의 폭주는 12·3 불법계엄 이후 ‘초법적’ 행위로까지 이어졌다. 내란수괴(우두머리) 혐의의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저지에 나선 것.

버스와 승용차로 차벽을 만들고, 경호처 직원과 군인 200명을 동원해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영장 집행을 막아섰다. ‘내전’을 연상케 하는 충격적인 그 장면을 많은 국민들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경호처 지휘부는 올해 7월,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박종준 전 경호처장과 김성훈 전 차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과거의 권력은 때로는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모든 국민들이 목격했듯이. ⓒ연합뉴스

윤석열 한 사람이 감옥에 갇혔다고 윤석열 정권이 남긴 ‘그림자’까지 일거에 사라지진 않는다. 과거의 권력은 새로운 권력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모든 국민들이 목격했듯이.

그래서 권력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무슨 짓을 했는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악용해 국가기관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끝까지 기록하고 책임을 묻는 일이 중요하다. 그 누가 대통령이 되든, 법으로 허락된 ‘선’을 넘는 일만큼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분명히 남기는 것. 셜록이 이 문제를 3년 넘게 물고 늘어지는 이유다.

다음 재판은 10월 7일 열린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우상의 정원 시리즈 소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