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셜록-프레시안> 공동보도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첫 재판이 오늘(24일) 오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다. 양 회장은 폭행, 강요, 마약, 동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성범죄 동영상 등 음란물 유통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양 회장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폭행과 강요를 당한 피해자들은 물론 성폭행을 당한 전직 여직원도 있었다. 불법 도감청으로 사생활을 침해당한 사람, 심지어 수사기관에 양 회장의 범죄를 알렸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한 사람까지 나왔다.
<뉴스타파-설록-프레시안> 공동취재팀은 ‘양 회장의 피해자들’을 다시 만났다. 양진호 사건이 보도된 이후 지난 4개월간 이들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추가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피해자들이 더 확인됐다. ‘직장내 성희롱’ 정도의 용어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엽기적인 행각이 담긴 사진 수백장이었다. <공동취재팀>은 피해자 중 한 사람의 동의를 얻어 사진의 일부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장 내 갑질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리고, 어떤 직장에서도 위력에 의한 갑질이 더 이상 자행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양진호 회장에게 다양한 형태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양 회장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양 회장이 찍은 ‘직원 희롱, 위협’ 사진 수백 장
양 씨는 직원들을 폭행하거나 대마초를 강요하는 것 외에 여직원들을 상대로 강압적인 사진 촬영을 하는 식의 갑질을 일삼았다. <공동취재팀>은 최근 양 씨 소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입수했는데, 이 안에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갑질 사진 수백 장이 발견됐다. 대부분 10년 전인 2008년경 양 회장이 자기 회사 여직원들을 상대로 찍은 것들이었다.
양 회장은 사진 촬영이 취미라는 이유로 몇몇 여직원을 카메라 앞에 세운 후 각종 사진을 찍게 했다. 취재팀이 확보한 사진 중에는 양 회장이 흉기를 이용해 여직원을 협박하는 듯의 모습이 담긴 사진만 수십 장에 달했다. 양 회장이 한 여직원의 신체에 화장품으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있었다. 양 씨가 스튜디오나 회사 근처 커피숍을 빌려 이 같은 사진을 찍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동취재팀>과 인터뷰를 갖고 사진 공개에 동의한 한 피해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양 회장은 사진을 찍을 때 허락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본인 마음대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찍으러 나오라고 하면 나가서 찍혀야 했습니다. 주말에도 불려 나갔습니다. 이런 식의 사진 촬영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한 동료 여직원은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다 결국은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 양진호 소유 회사 전직 여직원
이 피해자는 양 회장의 사진찍기 강요를 거부하는 것은 바로 퇴사나 마찬가지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는 건, 곧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양진호 회장은 한마디로 폭군 같은 존재였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양 회장이 죄값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양진호 소유 회사 전직 여직원

폭행 이후 외딴섬에 은둔… “아직 폭행 영상을 볼 용기가 없다”
양 회장의 폭행 동영상 공개에 동의했던 첫 피해자 A 씨. 폭행영상 보도 4개월만인 1월 초, <공동취재팀>은 서울 인근의 모처에서 A 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양 회장 회사를 그만둔 뒤 위디스크 고객 게시판에 장난 섞인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양 회장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 폭행 사건 이후 A 씨는 외딴 섬으로 거처를 옮겼다.
A 씨는 여전히 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맞는 영상을 아직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A 씨는 “양 회장이 자기가 지은 죄에 걸맞는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여러번 밝혔다.
인터뷰 이후 피해를 당했던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셔서 조금은 후련합니다. 하지만 양 회장에 대한 처벌이 끝난 게 아니라서 아직 해결된 건 아직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판사님들이 이 인터뷰를 본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양 회장이 돈이나 빽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요. 저같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양진호 회장 폭행 피해자 A 씨
“아직도 망망대해 속…사회 바뀌는 계기 됐으면”
지난 2013년 위디스크 회장실 안에서 아내와의 불륜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양 회장에게 집단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던 대학교수 B 씨. 그는 “마음 한 곳에 대못 같은 게 박힌 기분이었는데, 이제 조금은 억울함이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B 씨는 여전히 지난 시간을 떠올리기를 주저했다. 인터뷰 도중 “아직까지 망망대해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듯 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양 회장이 구속되고 본인의 피해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삶이 제자리로 돌아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폭행을 당한 지 5년이나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제 인생에서 지난 5년은 사실상 지워진 시간입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공황장애가 심해 길을 걸을 수도,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해야 하는 연구자로서도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양진호 회장 폭행 피해자 B 씨
B 교수는 앞으로 진행될 양 회장 재판에 대해서는 이런 바람을 남겼다.
사법부에서는 일단 기소된 사안에 대해서는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엄벌에 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양 회장과 같은 행동을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메시지를 사법부가 분명히 전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양진호 회장 폭행 피해자 B 씨

양 회장에게 도청 당한 전직 직원들, 집단소송 준비 중
양 회장은 평소 직원이 상추를 잘 씻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고하거나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등 상식 밖의 갑질을 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1월에는 <공동취재팀>의 보도로 양 회장이 직원들을 상대로 불법 도감청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보도 직후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위디스크의 전직 직원들은 불법 도감청 사실을 보도를 본 뒤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도가 나간 뒤, 도감청 피해를 입은 전직 직원들은 양 회장에 대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공동취재팀>은 피해자 대표를 맡고 있는 위디스크 전 직원 C 씨를 만났다. 그는 “보도 이후 퇴사자들 중심으로 정보공유 메신저 대화방이 생겼다. 사생활이 ‘탈탈 털린 사건’이어서 전현직 직원들이 상당히 분노했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이 양 회장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 보면 양진호 사건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서야 범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고, 이제 남은 숙제는 싸워야 이기는 겁니다.
-양진호 불법도감청 피해자 C 씨

수많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위디스크·파일노리 임원들 ‘사과’
양진호 회장이 소유, 운영했던 웹하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주 수입원은 음란물 및 디지털성범죄 영상 불법유통이었다. <공동취재팀>은 최근 양 회장이 2010년경 위장회사 ‘누리진’을 세워 성범죄 영상물을 위디스크에 올리는 방식으로 월 1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양 회장은 웹하드 카르텔 및 음란물 유통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2월, <공동취재팀>과 집단 인터뷰를 가졌던 양 회장 회사의 핵심임원들. 양 회장으로부터 받은 협박과 허위진술·증거인멸 요구 등을 털어놓았던 그들이 최근 다시 뉴스타파 사무실을 찾았다. 그들은 대부분 <공동취재팀>과의 인터뷰가 공개된 직후 양진호 회사에서 해고됐다. “경찰 수사에서 양 회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게 해고 이유였다. 이들의 해고는 구속 수감된 양 회장이 여전히 ‘옥중경영’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도 해석된다.
위디스크의 핵심 임원에서 졸지에 해고자로 전락한 D 씨는 양 회장 소유 회사에서 벌어진 ‘디지털 성범죄 영상 유통’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 스스로 ‘내가 정말 몰랐던 일인가’ 하고 수차례 자문했습니다. 나는 몰랐지만 피해자가 분명히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문을 하면서 상당히 괴로웠습니다. 내가 모른다고 피해자들이 없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방관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피해자 분들께 정말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양진호 소유 회사 전직 핵심임원 D 씨
파일노리의 전직 임원이었던 E 씨 역시 “회사에 다니면서 비겁하게 살았다. 그 당시에는 우물 안에 있었는데, (회사를) 나와서 보니 대부분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지은 죄는 달게 받을 것이고 수사 기관에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