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집중기획 ‘영남공고, 조폭인가 학교인가’ 보도를 시작한 이후, 여러 교사와 학생 등 학교 관계자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한 교사는 ‘우리는 모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다’는 성찰의 편지를 동료 교사들에게 보냈습니다. 교사의 동의를 구해 해당 글을 <셜록>에 올립니다.

영남공고를 사랑하시는 선생님께.

선생님, 파일을 열고 깜짝 놀라셨죠? 묻힘 방지용으로 제 소중한 사진을 몇 장 보여드리고 글을 시작합니다.

2018년이었습니다. 인부들이 학교 외벽을 포함해 복도까지, 페인트칠을 한창 했습니다. 어떤 분은 크레인 위에서, 또 어떤 분은 줄 하나에 연결된 방석만 한 작은 판자에 앉아서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작은 줄과 나무판자는 그리 안전해 보이지 않았고, 저렇게 높은 곳에서 도색을 하는 것이 가는 줄처럼 위태롭게 보였습니다.

2018년, 영남공고 외벽 페인트 칠을 하는 노동자 모습.

푸른 하늘과 우리 학교 외벽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나요?^^ 제 감성이 좀 지나쳤나요? ‘그렇게 아름다운 외벽은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 듯합니다. 하지만 저 외벽은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외벽이랍니다.

어느 날 아침, 전화벨이 울렸어요. 오랜만에 전화하신 아버지의 목소리는 꽤 진중하고 담담했습니다.

오늘부터 너희 학교에 일하러 간다. 우리가 진짜 하청에 하청, 또 하청에 하청을 받아 하는 일이라서 좋은 재료를 쓸 수 없으니, 페인트칠이 끝나도 형편없을 거다. 내가 그래도 명색이 네 아빠인데 너를 욕먹게 할 수는 없고… 아빠가 학교에 가도 모른 척 했으면 좋겠다. 우리 대신 아들이 욕 먹으면 안 되지.”

옛날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아버지가 페인트 묻은 얼굴로 저를 반갑게 불렀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워 대답도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해버렸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께 죄송해 계속 눈치만 봤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더군요. 지나가다 자식을 봤는데, 너무 멀리 있어서 자기 소리가 안 들렸을 거라고요. 속으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모르셨구나…’ 어린 나이에 착각하면서 말이죠. 30여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또 아들을 배려하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버지께서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일을 하신다니… 30년 전의 실수를 만회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페인트칠 하러 오신 첫날에 저희 반 학생들에게 제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를 부끄러워한 못난 담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을 키워냈다고 자부하는 아버지의 배려… 이런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반장이 그러더라고요.

“샘~ 저희 인사하러 가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이들이 먼저 정답을 알더라고요. 인사하는 이들이 아들의 제자인 걸 알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가장 낮은 계급으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당신에게 교사 아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뭐 그런 것들을요.

반장 말대로, 반 아이들 모두를 아버지에게 소개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다른 반 수업에 들어가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얘들아, 창밖에 매달려 계시는 분 보이지?”

2학년 어느 반 학생이 그러더군요.

“저 아저씨들 엄청 위험하게 보여요.”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 저분이 내 아버지라고요. 그 뒤, ‘노가다’로 한 평생 살아오신 아버지 이야기로 1시간 수업을 대신했습니다. 여름에는 비가 와서 일이 없고, 겨울에는 추위에 페인트가 얼어 일이 없고, 봄에는 비수기라서 일이 없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제 가족사를 들려주었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한 달 동안 제 아버지에게 엄청 인사를 잘했다고 하더군요. (역시 착한 우리 아이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또 하늘에 매달려 계신 아버지를 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버지는 “왜 이런 사진을 찍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찍어서 제 아들 OO이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공중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한 달 동안 같은 장소로 출근하면서 불편한 진실을 몇 가지 알았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자동차 트렁크 앞이 탈의실이고, 점심은 사장이 주문하는 배달 음식을 길거리 모퉁이에서 드시는 게 일상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렇게 한 평생을 사신 아버지에게 저는 자랑스러운 아들이랍니다. 본인이 많이 못 배운 한을 푸셨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페인트칠을 하는 마지막 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학교 애들이 착하고 순수해서 참 좋더라. 네가 잘 가르쳐서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해줘라.”

조금은 어색하고 낯선 경험이었지만, 작년 그 한 달로 인해서 저는 학교를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선생님들이 함께 일하는 지금의 영남공고는 바로 저희 아버지께서 열심히 페인트칠을 한 소중한 공간이랍니다.

외줄에 매달려 페인트 칠을 하면서 아들을 향해 ‘V’를 해보인 아버지.

학교를 사랑한다는 말 몇마디 하려고 했는데, 말이 좀 길어졌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난 주말에 많은 일이 있었죠? 저는 집에 와서야 팟캐스트 ‘이이제이’를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혹시 팟캐스트 ‘이이제이’ 들어보셨나요? 제가 앞서 올린 녹음파일은 ‘이이제이’에 나오는 이야기 중 일부입니다.

사회자 이동형 작가가 <셜록> 기자들에게 묻습니다.

“허선윤 (영남공고) 이사장이 왕따 지시를 선생님들께 내렸다… (그런데 교사라는 사람들이 이사장이 시킨다고) 교사들은 왜 여기에 응했습니까?“

너무나 상식적이고 직설적인 질문입니다. 늘 우리가 피해자이고, 허선윤 이사장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비판적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피해자라고 느끼는 가해자였습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프레시안>에서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강철수 선생님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에는 수많은 ‘왕따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가해자였고, 또 피해자였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리 선생님들이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단지 이사장이 시켜서 그랬을까요?

모두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지만, 또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장의 왕따 지시를 거부할 수도 있지만, 또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웠으니까요. 나도 왕따 피해자와 함께 수렁에 빠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정말 부끄럽습니다. 지금이라도 시간을 되돌린다면, 설령 정식 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왜 사람들이 저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소신 있게 행동하고 싶습니다.

영남공고에서 10년간 왕따를 당해온 학교 설립자의 손자 강철수 교사.

혹시나 저로 인해 상처받은 선생님이 계신다면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습니다. 용서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친하게 지낸 선생님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웃었다는 이유로 허선윤 이사장에게 불려가 혼이 난 적 있습니다. 그 선생님은 제 옆자리에서 이야기 하다가 허OO(이사장 아들)이 지나가니까 얼른 대화를 끝내고 어색하게 일어섰습니다.

처음에는 괜찮다, 이해한다, 스스로에게도 말했습니다. 그 선생님께도 쿨하게 “괜찮아요, 중요한 내용은 카톡으로 말해요”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나는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니 점점 사람들을 기피하게 되고, 친했던 부장님과 선생님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제 자신이 움츠러 들더군요. 먼저 왕따를 겪은 아무개 선생님께 물어보니, 그게 왕따의 초기 단계 감정이라고 하더군요.

그 뒤에는 분노, 실망, 자위, 포기 등 복잡한 감정이 생겨나고, 결국 마음의 문을 닫는 현상이 벌어지더군요.

지금은 다시 자존감을 다소 회복했고, 학교 정상화의 움직임으로 많은 분들이 함께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당시에는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제 상황이 이런데, 아주 오래 전부터 수업을 감시당하고 외부활동까지 사찰당한 채 모든 내용이 이사장에게 보고된, 그 피해 선생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새삼스럽지만, 지금에야 우리 모두가 가해자였고, 피해자였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는 용기가 없었고, 저의 이익을 위해서 불편한 진실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셜록><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이제이>가 영남공고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한 이후, 많은 선생님은 물론이고 재학생과 졸업생까지 연락을 해오고 있습니다. 많은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를 진솔하게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야만 원죄를 씻고, 미움과 분노가 아닌 화해와 용서를 통해서 학교를 정상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영남공고, 조폭인가 학교인가’ 유튜브 영상은 29일 현재 기준 3만 명 넘는 사람이 봤습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학교 뉴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저 왕따 선생님 불쌍하다, 안 됐다, 불쌍한 선생님이 많은 학교니까, 저 학교에 내 자식을 보내서 학교 망하지 않도록 도와주자…’

이런 생각을 할까요? 안타깝지만 아닌 것 같습니다. 자세한 기사가 나오면 나올수록 우리 학교의 위상은 추락할 겁니다. ‘좋지 않은 학교’로 굳어갈 겁니다. 너무나 슬픈 일이죠. 내가 사랑하고 몸담고 있으며, 앞으로 평생을 바쳐서 행복을 꿈꾸는 공간인데 남들이 끔찍한 시선으로 동정하는 학교라면…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과 헌신, 그리고 저희가 겪은 여러 끔찍한 일에도 불구하고 대구교육청과 검찰은 허선윤 이사장의 여러 혐의에 면죄부를 줬습니다.

우리가 당했고, 서로 괴롭히기도 했고, 여러 질곡을 거쳐 결국 학교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데, 이제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법과 여론의 힘으로 학교 정상화가 어렵다면, 이제 우리 선생님들이 학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또다시 우리 모두가 상처받고, 슬퍼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고,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행복한 학교,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간 우리는 너무 고통 받았고, 많은 상처와 고통 속에 살아왔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늦은 시간에 선생님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부터 선생님들께 힘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훗날 모두가 모여 웃으며 과거를 회상할 그날을 기대하며, 글을 줄이겠습니다. 남은 방학 행복하게 보내십시오.

추신 – 늦었지만, 바이오화공과 OOO 선생님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가 일을 다 마치고 난 뒤에, 바이오화공과에 머리 희끗하고 인상 좋은 분이 누구시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누군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는데, 매일 웃으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 하고, 괜찮다고 하면 직접 찾아와 커피를 타주셨다고 하더군요. 당신들 같은 인부들에게 그런 마음을 베푸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그러셨다고 하더라고요.

페인트칠을 하는 모든 인부들에게 너무 따뜻한 사람이었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찾아뵙고,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말씀을 드립니다. 누가 이 글 보시면 OOO 선생님께 꼭 좀 전해주세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2019년 7월 29일 월요일 새벽 OOO 올림

 *허선윤 영남공고 이사장 승인취소 요구 청와대 국민청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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