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에게 겪은 일은 늘 한숨과 눈물을 부른다. 그는 충성을 원했고, 지시를 잘 따르길 바랐다.

“강 교사, 올해도 내가 기간제 (교사)로 뽑아줬으니 잘 하라고!”

영남공업고등학교에서 2009년부터 기간제 교사로 근무해온 강은주(가명)는 허선윤 이사장에게 당한 괴롭힘이 한으로 남았다.

허 이사장은 신분이 불안정한 기간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강은주 교사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용했다. 사립학교 교사 임용권은 학교법인 이사회에 있으니, 강 교사에게 끼치는 이사장의 영향은 크다.

2016년 1월 12일, 강 교사는 허선윤 이사장에게 질책당한 설움을 동료 직원에게 풀었다. 강 교사와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눈 상대는 임OO 영남공고 행정실장.

그는 2005년부터 영남공고 행정실에서 근무 중이다. 학교 행정 총괄 책임자로서 허선윤 이사장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학교 내 역할은 달라도 강 교사는 종종 임 실장과 대화를 나눴다. 강 교사는 7년째 기간제로 일하는 자신의 처지와 고민을 임 실장이 많이 공감해 준다고 생각했다

영남공고 장상교 교장과 교사, 행정실 직원들. 이 안에는 성추행 가해자, 프라이팬 강매 책임자, 성적조작 책임자, 술접대 받은 김규욱 전 대구교육청 장학관의 아들이 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마치고 2층 카페에서 나와, 1층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임 실장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주변을 살폈다.

임 실장은 주차장에서 갑자기 강 교사를 안고 볼에 입맞춤을 했다. 순식간이었다. 동의는 물론, 교감도 없는 강제 추행이었다. 임OO 실장은 자녀를 둔 40대 기혼 남성이다.

예상 못한 추행을 당한 강 교사는 “먼저 집으로 가겠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피했다.

돌아보니, 이전에도 임 실장은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 몇 달 전, 그는 무턱대고 초저녁에 강 교사 집 앞으로 찾아왔다.

“강 교사 동네 쪽에 볼일이 있어서 지나가다가 들렀습니다. 강 교사 집 근처인데, 잠깐 볼 수 있을까요.”

강 교사는 ”만나자”는 임 실장의 요구가 꺼림칙했다. 집 주소를 공유할 정도로 친밀한 직장 동료는 아니기 때문이다. 강 교사는 주소를 알려준 적 없지만, 임 실장은 어떻게 알고 그의 동네로 찾아왔다.

기간제인 강 교사로서는 “집 근처까지 왔다”는 학교 고위직의 말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같은 교사 직군이 아니어도 허 이사장과 가까운 그의 영향력은 학교에서 컸다. 강 교사는 유동 인구가 많은 커피숍에서 짧은 대화를 나눈 후, 임 실장을 돌려보냈다.

“종종 제게 ‘강 교사 동네를 지나가는 길이다’라면서 만나자는 식으로 연락을 했었습니다. 매번 제가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임 실장이 아예 ‘집 근처까지 왔다’고 하니,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둘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기 싫어서, 제가 일부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오가는 커피숍으로 데려갔습니다.”

2019년 8월 19일, 취재진과 영남공고 행정실장 임OO 씨.

강제로 볼에 입을 맞춘 추행을 겪은 후, 강 교사는 임 실장과 거리를 뒀다. 학교에서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임 실장을 피해 다닌 적도 있다. 행정실과 멀리 떨어진 계단을 이용하거나, 다른 동료 교사들과 함께 다녔다.

그럼에도 임 실장은 강 교사에게 계속 연락했다. 2010년경부터 2019년 현재까지 매년 두 달에 최소 한 번 이상 카카오톡, 문자, 전화 연락을 해왔다. 

임 실장은 주로 평일 퇴근 시간대에 강 교사에게 “학교 끝나고 뭐하느냐” “같이 식사할 수 있느냐”는 식의 연락을 했다. 문자에는 종종 하트 이모티콘도 포함됐다. 강 교사 생일 때는 케이크 기프티콘(온라인으로 주고받는 선물)도 보냈다.

“임 실장에게 연락이 올까 두려워 집에 오면 무조건 핸드폰은 소리에서 진동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임 실장의 연락이 와도 못 본 척하거나, 몇 시간 후에 답장하곤 했습니다. 제게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임 실장은 이사장과 밀접한 관계를 이용해 강 교사에게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간제 교사인 강은주가 매년 불확실한 임용으로 불안해하는 걸 잘 알았다.

영남공고는 매년 1월께 기간제교사 임용 시험을 실시해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강 교사가 담당한 과목은 보편적인 교과는 아니다. 대구 지역 절대 다수 공립·사립 고등학교는, 약 10년간 해당 과목 정교사 채용 공고를 내지 않았다. 기간제 채용 공고도 마찬가지다.

임 실장은 싱글맘인 강 교사에게 저녁 시간대나 주말에도 연락을 했다. 그는 “내가 도와줄 테니, 무슨 일 생기면 내게 말해 달라”는 식의 발언을 하곤 했다.

“저 혼자서 자식을 먹여 살려야하는데, 임 실장이 혹시라도 기간제 교사인 제게 불이익을 줄까 봐 매몰차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기간제 교사로서 학교 고위직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도 작용했다. 강 교사는 1년에 2~3번 정도 임 실장을 만났다. 이 횟수도 강 교사가 여러 차례 약속을 깨고, 일정을 미뤄 줄인 결과다.

임 실장이 값비싼 음식을 사면, 강 교사도 예의상 “다음에는 제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원하지 않는 자리가 이어졌고, 때로는 솔직하게 말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성격을 강 교사는 자책하기도 했다.

임 실장은 만남 요구는 반복됐다. 그가 정한 약속 장소는 대구 달서구, 남구 앞산 등 대개 영남공고에서 먼 곳이었다. 임 실장이 주로 식당을 예약했는데, 연인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룸’으로 잡힌 적도 있다. 그에게 편한 장소는 강 교사에겐 불편했다. 

2019년 5월 13일, 임OO 행정실장이 식당 주소를 자필로 적어 강 교사에게 카카오톡을 보내왔다.

임 실장은 일방적인 스킨십도 수차례 했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강 교사의 손을 덥석 잡거나 포옹을 했다. 강 교사에게는 상사가 위력을 이용한, 불쾌한 신체 접촉이었다.

“임 실장이 제게 일방적으로 신체 접촉을 할 때면 정말 괴로웠습니다. 제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수차례 손을 잡고 포옹을 해왔습니다. 볼에 뽀뽀도 한 적 있고요. 누구든, 특히 가정이 있고 아이도 키우는 분이 그러면 더욱 안 되는 거잖아요. 당시만 떠올리면 성적 수치심에 잠을 못 이룰 정도입니다.”

임 실장은 강 교사에게 “다른 사람(이성 의미) 만나지 말라”, “다른 학교 교사로 가더라도, 나와는 연락하고 지내자”, “한 차로 이동하자”는 등의 말도 했다.

이 때문에 강 교사는 일부러 동료 교사를 불러내 최대한 단둘이 만나는 자리를 피하려 했다. 또 카페는 식당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먼저 정하기도 했다. 임 실장과 차를 같이 타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2018년 2월께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 강 교사는 이유도 모른 채 허선윤 이사장에게 “똑바로 해라”, “어디서 눈을 부라리냐”는 등의 괜한 질책을 들었다. 이사장 최측근 교사가 강 교사에 대한 거짓 보고를 올렸기 때문이다. 강 교사는 억울함에 밤잠을 설쳤다.

강 교사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걸 눈치 챈 임 실장은 바로 다음 날, 먼저 연락을 했다. 임 실장은 강 교사에게 힘내라는 응원의 인사를 건넸다. 여기까지는 동료로서 전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잠시 뒤, 임 실장은 강 교사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윙크 이모티콘)”

강 교사는 문자를 받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임OO 행정실장한테 그 문자메시지를 받고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어떤 대답을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답장도 못 했습니다.”

2018년 2월 15일, 임OO 행정실장이 강 교사에게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

임 실장의 추행과 지속적인 연락에 불면증을 앓고 수면제를 복용한 지 4년~5년째, 강 교사는 결단을 내렸다. 기간제 교사로서 임 실장의 부적절한 행위를 계속 참아온 것도 억울했다.

강 교사는 더는 참지 않기로 했다. 폐쇄적인 영남공고 분위기에서도, 학교 정상화를 위해 싸우는 동료 교사들에게 힘을 얻었다.

2019년 7월 초, 임 실장은 “식사하자”고 강 교사에게 또 연락을 했다. 당시는 일부 언론이 사학비리 의혹과 갑질 문제로  허선윤 이사장을 집중 취재할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또 연락을 하다니.

강 교사는 결심을 마쳤다. 그를 만나 일방적인 스킨십과 지속적인 만남 요구 등이 불쾌했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전할 참이었다.

하지만 약속을 잡는 이날까지도, 임 실장은 강 교사에게 부적절한 말을 했다. 아래는 임 실장과 강 교사가 나눈 2019년 7월 5일 자 카카오톡 대화다.

2019년 7월 5일, 임OO 행정실장이 강 교사에게 “저녁에 바다를 보러 가자”는 부적절한 언사를 했다.
  • 임OO 행정실장 – “날이 많이 덥죠. 더운데 공부하느라 힘들죠. ~^^ 방학하면 식사 한번 해요”
  • 강은주 교사  “네 다다음주 방학 전에 괜찮으신지요?”  (중략)
  • 임OO 행정실장  “시간 괜찮으면 바다 보러 갈래요? 분위기 좋은 바닷가에서 저녁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 강은주 교사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 임OO 행정실장  “아 네 그럼 가창 쪽 알아볼게요.~^^”

강 교사는 “저녁에 바다를 보러 가자”는 임 실장의 메시지에 불편함을 느꼈다. 강 교사는 그에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불쾌한 심정을 밝히겠다는 그의 다짐은 더욱 강해졌다.

2019년 7월 16일 오후 5시께, 둘은 대구 달서구 앞산 근처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이후 식당 바로 옆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강 교사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상사인 임 실장이 기간제 교사인 자신의 신분을 위협할까 봐 겁이 났다. 강 교사는 마음을 접고, 업무 이야기만 꺼냈다.

임 실장은 대뜸 강 교사에게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캐물었다. 당황한 강 교사가 “실장님에게 말하고 싶지도 않고, 말할 이유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그는 끈질기게 세 차례나 더 물었다.

강 교사는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는 걸 왜 실장님에게 말해야 하냐”고 묻자, 임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선생님 좋아하는 거 알잖아. 몰라요? 알잖아. 알면 그 정도는 얘기해줄 수 있지. 그래야 나도 그렇게 행동을 함부로 못 하는 거잖아요.”

강 교사는 임 실장에게 “가정이 있는 분이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하며,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실장님이 먼저 말한 김에 저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기간제 교사로서 그동안 상사인 실장님에게 상당한 부담을 느껴왔습니다. 실장님이 밥 먹자고 할 때면, 상하 관계에서 ‘내가 저분의 말을 안 들으면 어떡하지?’ 그런 부담감으로 밥 먹으러 나온 적도 많습니다. 만나면 제 손을 잡거나, 포옹하지 않으셨습니까. 밤에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할 때도 저는 정말 살 떨릴 정도로 너무 놀랐습니다.”

임 실장은 “(강 교사를) 좋아하는 감정은 있는데, 그 이상으로 가면 물론 안 되니까 내가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임 실장은 또 강 교사에게 “현재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이야기 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제가 기간제 교사로서 상사에게 느꼈던 압박을 이야기했지만, 임 실장은 또다시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묻더군요. 제가 대답하기 싫다고 해도요. 만약 제가 만나는 사람이 없다면, 기혼인 본인이 추근대겠다는 거잖아요. 제가 기간제 여교사이자 싱글맘이니까, 저를 얕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시 강 교사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럼에도 임 실장은 두 차례 더 연락을 해왔다. 용건은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임 실장은 강 교사에게 “통화할 수 있느냐”고 한 차례 문자를 보내왔다.

강 교사가 “더는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후에도, 임OO 행정실장은 두 차례 연락을 해왔다.

기간제 여성 교사에게 수년간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종종 추행을 한 임OO 행정실장.

그는 10일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해당 여성 선생님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동료이고, 이성적 감정 혹은 나쁜 의도를 갖고 만난 건 아니다”며 “고민을 나누는 과정에서 손을 만지거나 위로 차원에서 어깨를 보듬어 준 적은 있지만 볼에 입맞춤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내 행위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진심으로 사과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측근인 행정실장이 기간제 여성 교사를 추행하고 불쾌감을 주는 동안, 영남공고의 총 책임자인 허선윤 이사장은 과연 이 사실을 몰랐을까.

영남공고 교사 이재영(가명) 씨는 “임OO 행정실장이 기간제 여교사에게 지속해서 성추행을 한 건 허선윤 이사장의 오른팔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이를 묵인하고 간과한 영남공고 고위층들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인 강 교사는 1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또한 현재 학교장인 장상교 교장에게 임 실장의 성추행 사건을 알리며, 사건 조사를 지체없이 해달라고 요구했다.

장상교 교장은 강 교사에게 “성고충위원회 등 매뉴얼을 확인해 절차대로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임OO 행정실장에게도 해당 사안에 대해 확인을 하겠다”고 말했다.

강 교사는 “학교장과 학교 법인 이사회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가해자에게 적절한 징계를 내리고, 피해자 보호에 힘쓰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직장 내 성폭력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고용형태, 직급 등 위계가 낮은 여성노동자들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곤 합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학교 행정실장이 기간제 여교사에게 수년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한 것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셜록>은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인식 개선 등을 위해 공익적 차원에서 해당 사건을 보도한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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