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500명의 성적을 일방적으로 삭제한 조작 사건. 명백한 범죄인 그 사건은 학교 차원에서 은밀하게,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교장, 교감, 부장교사 등이 깊이 관여한 전대미문의 대규모 성적 조작 사건에 대구시교육청은 면죄부에 가까운 처분을 내렸다.

성적조작은 성범죄, 금품수수, 체벌과 함께 ‘교원 4대 비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대구시교육청은 제대로 된 진상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 모든 은폐와 조작은 딱 한 남자, 허선윤 영남공업고등학교 이사장 아들을 위한 일이었다. 학생과 학부모까지 모두 속인 대규모 성적 조작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허선윤 영남공고 이사장의 아들 허OO 교사. ©셜록

허선윤 이사장의 아들 허OO은 2011년부터 영남공고에서 교사로 근무 중이다. 그는 2015년 10월 14일 치러진 2학기 기말고사 <현장실습> 과목 시험문제를 출제했다.

<현장실습>은 산업안전, 임금 등 고3 학생들이 취업을 대비해 배우는 과목이다. 2015학년도 당시 영남공고에서는 그린에너지 전기과를 포함해 6개 학과가 <현장실습> 과목을 배웠다.

허OO 교사는 기말고사 출제 과정에서 큰 실수를 했다. 시험은 객관식 25개, 서술형 5개로 출제됐는데, 모든 객관식 문항에서 정답이 희미하게 표시된 상태로 시험지가 인쇄됐다. 시험지의 오류는 시험 당일에야 학생, 교사들에게 발견됐다.

“객관식 시험에서 만약 정답이 4번이면, 4번만 완전히 흐렸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도 정답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2015년 당시 그린에너지 전기과 3학년이던 유동해(가명) 씨의 말이다. 시험 공동출제자 안희민(가명) 교사도 “시험 감독 교사의 제보를 받고 시험 당일에 출제 오류를 인식했다”고 밝혔다.

안 교사는 당시 성적 업무 책임자인 김OO 교육연구부장(현 학생부장) 교사에게 시험 출제 오류를 보고했다. 같은 시각, 오류 책임자인 허OO 교사는 1박2일 외부 출장 중이었다. 그는 안 교사의 연락을 받고나서, 시험 출제 오류를 인지했다.

교사, 학생 모두 시험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상황. 이런 경우 대개 책임자를 문책하고, 재시험을 실시한다. 영남공고 역시 2012년 체육교과에서 비슷한 문제가 생겨 재시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영남공고는 2015년에는 이런 ‘정상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시험 출제자의 실수로 끝낼 수 있는 일을 영남공고 고위층은 ‘조직적 범죄’로 일을 키웠다. 이상석 교장, 권OO 교감, 김OO 교육연구부장이 일을 주도했다.

정답이 뻔히 보이는 시험지로 치러진 기말고사. 이를 수습하기 위해 이상석 교장 등은 바로 다음날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었다. 이들은 문제를 바로 잡지 않고 ‘사건 은폐’를 위한 꼼수를 썼다.

학업성적관리위원회는 <현장실습> 과목 성적 평가 방법을 ‘성취도평가’에서 ‘이수/미이수’ 방식으로 갑자기 변경했다.

성취도평가는 일종의 상대평가로, 다른 학생들과 점수를 비교해 성적을 A~E 등급으로 나눈다. 반면 ‘이수/미이수’는 일정 점수만 넘기면, 해당 과목을 공부한 걸로 판단한다. 전자는 학생들 석차에 영향을 주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 참여했던 소유주(가명) 교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회의 중에 <현장실습> 과목 평가방법을 변경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말고사까지 치른 2015학년도 2학기에 바로 적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중간, 기말고사 점수가 다 나왔는데, 어떻게 평가방법을 변경합니까?”

소 교사 말대로 이미 중간, 기말고사가 치러졌고 점수까지 나온 상황. 재시험 결정이 나오지 않았으니, 교과담당 교사들은 절차대로 <현장실습> 기말고사 성적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나이스에 10월 30일까지 입력했다.

학교에서 있을 수 없는 중대 범죄는 12월 31일 벌어졌다.

김OO 영남공고 교육연구부장은 나이스에 입력된 2015학년도 2학기 <현장실습> 과목 중간-기말고사, 수행평가 성적을 일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김 부장은 우선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접근 권한이 있는 안승용(가명) 교사에게 3개 반 학생들의 성적을 삭제하도록 했다. 나머지 수백 명의 성적은 어떻게 인위적으로 조작됐을까?

나이스에 한 번 입력돼 확정된 성적을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성적 마감은 교과담당 교사 – 연구부장 – 교감 – 교장의 결재를 받으면 봉인이 된다. 봉인된 성적은 그 누구도 인위적으로 손을 댈 수 없다.

더불어, 나이스에 입력된 성적에는 해당 교과담당 교사만 접근할 수 있다. 권한 없는 사람의 접속은 물론이고, 권한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유출하는 것도 불법이다.

대구광역시에 있는 영남공고. ©셜록

그렇다면 영남공고는 이미 나이스에 입력된 수백 명의 <현장실습> 중간-기말 성적, 봉인된 기록을 어떻게 삭제하고 조작했을까.

영남공고는 그 어려운 일을 순식간에 해냈다.

학교 측은 담당 교사 외에 나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단 한 명, 전산담당자를 이용했다. 영남공고 전산을 담당하는 교사 조경숙(가명)은 이렇게 고백했다.

“김OO 교육연구부장의 지시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현장실습> 과목을 수강한 고3 학생 500여명의 성적을 삭제했습니다.”

이 자체로 중대 범죄 행위지만, 영남공고 측은 한 걸음 더 나갔다. 학교는 성적 삭제 피해자인 학생, 학부모에게 어떤 고지도 하지 않았다. 학생들 처지에서 보면, 본인들이 알던 성적이 졸업 후에는 완전히 뒤바뀌게 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영남공고는 해당 교과담당 교사, 3학년 담임에게도 관련 내용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에 끝나지 않는다.

허선윤 영남공고 이사장. ©셜록

영남공고는 성적 삭제가 이뤄지지 않은 2015년 10월 15일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허위 생활기록부를 발급하기도 했다. 허위 생활기록부에는 2015학년도 2학기 <현장실습> 과목 점수가 성취도평가로 기재됐다.

이 때문에 해당 기간 동안 고3 학생들은 허위 생활기록부를 입사 원서로 제출했다. 특성화고에서 10월~12월은 생활기록부가 많이 발급된다. 학생들이 취업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작년 대구시교육청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에 피해를 본 학생은 최소 44명이다.

그렇다면 영남공고는 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학생 500여명의 성적을 일괄 삭제했을까?

시험 출제 오류를 낸 허OO 교사가 허선윤 이사장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시험 출제 오류를 냈다면, 바로 중징계가 떨어졌겠죠. 윗선에서 이사장 아들 잘못을 덮으려고 그렇게 엄청난 무리수를 둔 겁니다.”

영남공고 이정수(가명) 교사의 말이다. 이 교사 외에도 많은 영남공고 교직원은 ‘이사장 아들 살리기’ 외에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대구시교육청은 대규모 성적 조작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영남공고 담당 장학사인 대구교육청 중등교육과 A씨는 2018년 5월부터 7월까지 진행한 교육청 감사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학기 초에 평가방법이 결정되고 학생-학부모에게 안내되어 시행한 성적 처리 방식을 사후에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통해 변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이수 여부만을 기록하여 불이익을 받은 학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구시교육청은 감사 결과 “관련 교사들이 허OO 교사의 오류를 덮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빙자료가 없어 명확한 확인이 어렵다”며 ‘이사장 아들 구하기’에는 면죄부를 줬다.

감사 당시 이상석 교장은 문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남공고 학생들을 무시하는 답변도 했다.

“고의는 아니지만, 학교에서 허위 서류를 학생들에게 발급하게 되어 학생들이 허위 서류를 지원 회사에 제출하게 된 건 학교의 잘못입니다. 교과담당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안내하지 않았으면 학생들은 현재(2018년 7월경)도 현장실습 과목의 성적이 삭제된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대구시교육청이 학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진 성적조작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허OO 교사는 <셜록>의 취재를 거부했다. ©셜록

대구시교육청은 ‘학생 500여명 성적 삭제 및 조작’이라는 전대미문 사건을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대구교육청이 지목한 실무자는 김OO 교육연구부장, 권OO 교감, 이상석 교장이다. 세 명 모두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 의무를 위반한 혐의가 적용됐다. 권 교감은 경징계(감봉), 김 교사와 이상석 교장은 중징계(정직) 처분이 내려졌다.

영남공고 이사회는 대구시교육청의 이런 조치도 무시하고 세 명에게 모두 경징계 처분을 내렸다. 대구시교육청은 재심의 요구를 했지만, 이사회는 징계 처벌 수위를 높이지 않았다.

모든 문제의 출발이 된 시험 출제 오류 책임자 허OO에겐 어떤 처분이 내려졌을까.

500여 학생의 성적을 일괄 삭제한 학교는 역시 과감했다. 허 교사는 객관식 25개 문항 모두에서 잘못을 했지만, 학교 측은 ‘2개 문항 실수’로 과감히 줄였다. 그 덕에 허 교사는 ‘주의’ 처분만 받았다.

영남공고 고위층은 교육 원칙, 법, 상식을 버리고 딱 하나, ‘이사장 아들 살리기’만을 택했다. 그 아들은 여전히 영남공고 교사다. 아버지 허선윤 이사장처럼 그 아들도 노래방으로 교사들을 불러내 돈을 갈취하곤 했다.

지난 7월 18일, 영남공고 교직원 워크숍에서 허OO 교사는 만났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절한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모든 전화와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다.

교사의 난임 치료를 방해한 이상석 영남공고 교장.

이상석 교장은 8월 19일 조퇴를 신청하고 영남공고를 찾은 취재진을 피해 급하게 퇴근했다. 이 교장은 8월 31일 정년퇴직했다.

이사장 아들 살리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는 ‘여교사 술접대 강요 사건’의 주요 책임자였다. 그의 딸 역시 영남공고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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