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베이어 벨트 위에 설치된 화면에 숫자 ‘3000’ 뜨면, 일을 하기도 전에 숨이 막혔다. 작업 시작 사이렌이 울리면 컨베이어 벨트는 ‘PC 모니터 3000 생산’ 맞게 돌아갔고, 몸도 속도에 맞춰 움직였다.

목표 생산량을 완수해 작업 종료 사이렌이 울리면, 온몸에서 피가 빠져 나간 녹초가 됐다. 삼킬 수도, 뱉어낼 수도 없던 노동의 쓴맛은, 18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시절 ‘컨베이어 벨트 노동’보다 무섭고 ‘모니터 하루 3000 생산’ 만큼 당혹스러운 따로 있었으니, 바로 동료 노동자인 19 아이들의 무시와 경멸이었다.

내가 비정규직으로 일한 삼성전자 수원공장 PC 모니터 생산라인 노동자의 70% 전국에서 모인 직업계 고교 3학년 학생들. 그들은 학생이면서 노동자였고, 나처럼 비정규직이었다.

영남공고 기능실에서 기능 연습을 하는 한 학생. ©셜록

십대 후반이 절대 다수인 공장에서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만이 입을 있는 노란색 작업복은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고, 나처럼 가진 없이 나이만 처먹은 것도 모자라 검은색(비정규직)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는 실패한 인생의 본보기였다.

옆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질문인지, 경멸인지, 무시인지 헷갈리는 물음을 종종 내게 던졌다.

“형, 그 나이 먹고 우리랑 일하면서 월급도 똑같이 받고… 안 쪽팔려요? 지금까지 뭐 하다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대학을 다녔다는 경력은 공장에서 쓸모 없는 이력이어서, 3 실습생 노동자에게 나는 가방끈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살다보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다고 답하면, 어린 노동자는 들뜬 표정으로 자기의 꿈을 길게 이야기했다.

“형, 저는 말입니다. 저 노란색 작업복 한 번 입어보고 싶습니다. 삼성전자 정규직… 멋지지 않습니까? 저는 형처럼 살지 않을 겁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식고 찬바람이 즈음, 나는 어린 동료 노동자들에게 기별도 하지 않고 도둑처럼 공장을 떠났다. 얼마 , 기자가 됐다.

서울 사대문 안의 기자 노동이 아무리 힘들어도 ‘컨베이어 벨트 타는 일’ 비할 바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은 탓일까.

공장다닐 오후 6시에 일을 마쳐도 온몸이 천근만근이어서 독한 술을 마실 없었는데, 기자가 후에는 10시에 퇴근해도 몸은 폭탄주를 받아들였다. 그러다 취하면 정말 걱정이라도 되는 , 어린 노동자들을 추억하곤 했다.

“포항에서 올라온 공고 3학년 OOO, 걔는 노란색 작업복을 입었을까?”

어느 보험회사 광고처럼, 인생의 많은 시간은 정말 이유를 없는 일들로 채워지는 것인가. 진심이든 위선이든, 위악이든 거짓이든, 나를 놀리던 19 노동자들이 자주 떠올랐고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신분을 속인 한마디 말도 없이 나는 떠났고 그들은 남았다는 단순한 사실이, 어린 노동자들에겐 백마디 경멸의 말보다 무섭고도 무거운 상처로 남은 아닌지, 종종 복잡한 생각에 빠졌다.

영남공고 문제를 처음 제보받은 2019 4, 그때도 그랬다. 허선윤 이사장의 비리와 전횡, 갑질을 고발하는 교사의 메일은 길고도 상세했다.

수백 성적조작, 여성 교사 술접대 강요, 남성 교사 노래방 동원, 교사 10 왕따, 교사 연애 금지, 임신출산 포기 각서, 신혼여행 금지, 금품 대가 교사 채용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읽고 들은 뒤에도 나는 취재보도 여부를 결정 못했다. 평소 정의로운 , 인권과 평등을 고뇌하는 하면서도, 제보 교사를 앞에 두고 나는 속으로 이런 말을 했다.

‘문제는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외고, 과학고는커녕 일반 인문계 고교도 아닌 공고에서 벌어진 일에 누가 관심이나 갖겠습니까?’

제보 교사는 속이 탔지만, 나는 결정을 미루고  , 달이 흘려 보냈다. 그러다 내가 몰래 공장을 떠난 일과, 그곳에 남은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쯤 노란색 작업복을 입고 있을까.’

그때처럼, 지금도 가능성은 적다. 회의적인 생각이 나를 영남공고로 이끌었다. 이런다고 그때의 미안함이반까이되진 않겠지만, 마음의 빚은 줄이고 싶었다.

사실 내가 ‘공고여서’ 취재를 망설인 것처럼, 영남공고 문제는 ‘공고니까’ 벌어진 일이다. 위에 열거한 하나라도 외고, 과학고에서 벌어졌다면 한국은 뒤집어졌을 것이며, 여러 지식인은 튀기며 교육의 백년대계를 걱정했을 거다.

영남공고에서 저런 일들이 10년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동안, 우리 사회가 침묵한 이유는 하나다

‘공고니까.’

오늘날 직업계 고교에는 중학생 시절 성적이 대체로 낮은 아이들이 간다. 부모 경제력과 자녀 성적이 비례하는 요즘 상황을 감안하면, 공고는 대체로 가난한 아이들이 간다. 영남공고 학생의 70%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다.

성적이 낮고, 가난하고.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차별하기 좋은 혐오의 대상이 있을까. 언론교육청교육부가 이보다 외면하기 좋은 상대가 있을까. 수년간 이어진 영남공고 교사들의 제보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배경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이런 차별, 배제, 혐오, 무관심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운 사람이 바로 허선윤 이사장, 이상석 교장, 대구교육청 관료들이다. 이들이 가난한 아이들을 이용해 호의호식 하는 동안 영남공고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땅의 직업계 학교 아이들은 어떤 열패감을 맛보았을까.

이제창 영남공고 교사는 학생들과 시를 쓰고 책을 내기도 하는데, 책에는 이런 시가 있다.

<재시작>

중학교 공부를 적당히 했다면

부모님이 슬퍼할 일이 없었을 텐데

우리 엄마는 그렇게나 울었다.

친구들에게 공고 간다고 얘기했을

그러게 공부 하지라고 오지랖을 떨었을

적당히 , 공고가 어때서

설날에 친척들 모두 모였을

공고 간다고 저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

2019년 여름, 영남공고를 취재하다가 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셜록

사회가 입시 한복판에 있는 고교생 걱정은 해도, 공고생들은 내놓은 자식 취급한 지도 됐다. 공고생들은 취업 현장에서 죽거나 손가락이 잘릴 약간의 관심을 받는다. 그걸 아는지, 어떤 영남공고 학생인 이런 시를 썼다.

<선반>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머리에 칩이 튀고

바지엔 구멍이 수도 있는

어마무시한 선반

그치만 다음 주에 한다.

어떤 학생은 미래의 꿈을 위해 주말에 학원에 가지만, 어떤 공고생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갈빗집으로 향한다.

<알바 천국>

서른 개가 넘게 원서를 내고

유일하게 합격한 갈빗집은

알바 천국에서 신청한

알바 지옥

 

불이 치솟고 기름이 흐르고

나도 같이 타버릴 같은 이곳에서

나는 오늘도 불을 만들고 불을 나른다

 

내가 받은 돈은

최저임금이라고 하는 최고임금

한푼 두푼 꿈을 위해 모인다

 

가기 싫어도

수밖에 없다

나의 주말은 없다

이제창 영남공고 국어교사는 학생들과 시를 쓰고, 작품을 모아 책으로 만든다.

말도 되는 영남공고 문제를 취재하던 초기, 나는 뭘 모르고  교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학부모들에게 학교 이야기 했습니까? 가만히 있을 텐데요.”

교사는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한부모 가정도 많고, 휴가를 학교에 있는 분들도 많지 않습니다. 일당이 걸린 일이니까…”

우리는 짧은 탄식으로 생략된 뒷말을 대신했다. 영남공고 문제를 취재하고 싶은 마음을 묵직하게 만든 얼굴 없는 어떤 학생의 꿈이다.

< 꿈은 달에 150만원을 버는 >

꿈은 작다

꿈은 달에 150만원을 버는 것이다

이틀에 번씩만 노가다를 해도

꿈은 이루어진다

1000 버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이 아닌, 유학 가서 금융-IT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도 없다는 듯이, “이틀에 번씩만 노가다하겠다는 아이.

영남공고 교사는 취업나간 3학년 학생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점검 나갔다가 충격 받은 일을 들려줬다.

작은 공장이었는데, 제가 간 날 가스 누출 사고가 벌어진 거예요. 다들 난리가 났는데,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달려가서 데리고 나왔어요. 사고 수습되고, 아이 격려하고 오는데… ‘우리 학교로 돌아가자’고 했어야 했나, 아이의 노동을 존중하는 게 맞나… 여러 생각으로 복잡했어요.”

150 원이 꿈인 학생, 갈빗집에서 숯불을 만들며 주말을 태우는 아이, 당장의 일당 걱정으로 학교에는 신경을 쓰는 부모의 자녀에게도, 사람 차별하지 않는 좋은 학교와 모두의 존엄을 논하는 양질의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가.

영남공고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셜록

영남공고 여러 교사와 <셜록> 마음을 모은 그런 공감 때문이지 싶다. 우린 6개월을 함께 달렸고, 학교는 많이 달라졌다.

허선윤 이사장은 구속됐고, 이상석은 퇴임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구체제 사립학교 이사진들은 스스로 물러났거나, 교육청에 의해 승인이 취소됐다. 이들에게 부역(?)했던 이들은 파면, 해임 등의 중징계를 받았거나 앞두고 있다.

지난 6 오후 7시 영남공고에서 임시 이사회가 열렸다. 학교 정상화를 위해 싸워온 교사들은 학교 현관 앞에서 이사들에게 장미꽃 송이씩 나눠줬다. 학생을 위해 좋은 학교를 만들겠다는 뜻도 전했다.

영남공고 이사회가 열린 지난 6일 오후 7시, 영남공고 교사들이 이사진을 기다리고 있다. ©셜록
김효신 영남공고 관선 이사장(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교사들의 꽃을 받고 학교로 들어서고 있다. ©셜록

김효신 관선 이사장(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사회를 마친 , 여러 교사들과 현안에 관한 의견을 오랫동안 나눴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많은 달라진 분명했다.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모두 공석인 영남공고. 직무 대행 체제가 가동됐고, 역시 학교 정상화에 애를 이들이 임시로 교장교감행정실장을 맡았다.

왼쪽부터 김광섭 교감 대행, 김수학 행정실장 대행, 이병희 교장 대행, 신윤호 교감 대행. 벽에 걸린 사진 맨 오른쪽은 이상석 전 교장, 그 옆은 구속된 허선윤 전 이사장이다. ©셜록

입춘이던 지난 4, 꽃다발 개를 준비해 영남공고에 갔다. 책임이 무거운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학교 급식실에서 점심도 먹었다. 허선윤 이사장의 지시로 10년간 왕따를 당해 혼자 밥을 먹은 강철수 교사와 함께 말이다.

학교를 떠날 , 이병희 교장 대행신윤호 교감 대행김광섭 교감 대행김수학 행정실장 대행 등이 교문까지 배웅을 해줬다. 우린 교문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병희 교장이 주변의 학생을 불렀다.

“OO, 사진 하나 찍어줘라. 말고, 여러 !”

학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 영남공고 교사들이 교문까지 <셜록>을 배웅했다. 학교와 학생을 위해 고생한 여성 교사들도 많으나 이 순간엔 수업 등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셜록
교사들의 배웅을 사진으로 찍을 때, 이병희 교장 대행이 한 학생을 불러 촬영을 부탁했다. ©셜록
영남공고 학생이 교사들과 <셜록> 박상규 기자를 사진으로 담았다. ©셜록

학생의 신호에 우리는 입춘의 볕을 받으며 자세를 잡았다. 그림자는 길었고, 셔터 소리는 짧게 여러 퍼졌다. 나는 교문 밖으로 나왔고, 학생들과 말하고 싸우고 뒹굴고 화해하며 살아야 하는 교사들은 교문 안쪽에 남았다.

그날 나는 영남공고에서 동대구역까지 2시간을 걸었다. 볕이 좋아서 그랬고, 그냥 오래 걷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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