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이 삼성반도체 출신 여성노동자들이 제기한 ‘태아산재’ 신청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한다. 정부 기관의 태아산재 인정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최초의 움직임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7월부터 <반도체 아이들의 가려진 아픔> 기획을 통해 ‘태아를 수급 주체로 인정하는 산재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집중 보도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반도체 출신 여성노동자 3명이 제기한 ‘태아산재’ 신청에서 태아의 선천성 질병이 엄마의 업무에서 기인한 게 맞는지 심의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지난 8월 의뢰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산업재해예방에 관한 조사 및 연구를 시행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향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판정 의뢰를 맡길 예정이다.

삼성반노체 노동자 출신 여성 3명은 지난 5월 20일 “엄마의 직업병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이들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면서 임신 중 유해화학 물질을 취급했고, 이후 무신장증, 선천성 거대결장증 등 선천적 장애나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이들이 취급한 유해화학 물질 중 상당 수는 생식독성을 띤 물질이다.

강순희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2020년 10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은 엄마의 업무상 요인으로 인해 선천적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산재법상 보험급여는 근로자만 받을 수 있는데, 노동능력이 없는 태아는 아예 청구권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부재한 법 대신, 태아 산재에 대한 업무상 재해 처리 및 수급권, 보험급여 지급 기준을 마련해 지난 6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번 태아산재 역학조사 결정도 해당 업무처리 기준에 따른 조치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상보험급여 중 요양급여의 경우 태아 상태에서 진단된 선천성 질환의 치료비용 및 출산 자녀의 출산과정, 해당 질환 치료비용 등을 엄마에게 수급권이 있는 걸로 인정한다.

휴업급여 및 상병보상연금은 엄마의 건강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으로 미취업한 기간에 한정해서만 수급권을 인정한다. 장해급여도 엄마에게 장해등급 인정기준에 해당하는 장해가 남는 경우에 한해서 급여를 지급한다.

즉, 현행 산재법에 따라 부모의 업무상 유해 환경에 의해 질병을 갖고 태어난 태아는 아직 수급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당 업무처리 기준은 21대 국회에 발의된 태아산재 관련 법안 개정 전까지만 적용될 예정이다.

한편, 대한직업환경의학회가 지난 13일 개최한 ‘태아산재-예방과 보상을 위한 과제’ 심포지엄에 출석한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태아산재 제도개선 관련해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정부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태도를 보여줬는지 스스로 반성한다”면서 “태아산재 문제 해결과 법 개정에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회 환노위 소속 장철민 의원은 ‘엄마와 한 몸인 태아‘가 엄마의 직업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선천적으로 건강 손상을 입었다면 산재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산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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