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이하 인권위)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대우를 하지 않도록 관행이나 제도를 개선하라는 의견을 서울고등법원장과 서울고등검찰청장에 9일 밝혔다.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 보호를 위해 법조 출입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은 언론사들의 취재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권위의 이번 의견 표명은 김보경 <셜록> 기자가 낸 진정에 따른 결과다. 김 기자는 2020년 12월 18일 “서울고법과 서울고검이 법조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 외에는 기자실 출입을 막고, 정보제공에 차이를 두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김 기자는 두 기관의 차별 근거로 ▲공식브리핑 자료와 보도자료 비공개 ▲노트북 사용 제한 ▲판결문 제공 서비스 제한 ▲출입증 발급 거부 ▲메일, 문자 서비스 제한 ▲기자실 사용 불허 등을 들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김보경 기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법조 기자단 개방 및 확대’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모습. ⓒ주용성

이에 대해 서울고법은 “법조기자단은 기자들의 자율적 조직으로서, 그 가입 여부 및 구성에 관해서는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취지에서 법조기자단 자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검은 “기자실은 출입기자들에게 제공하는 장소적 편의에 불과하고, 법조기자단 소속 여부와 무관하게 공보자료 등을 배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진정 이후 약 1년 검토한 끝에, 피진정인들의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신청 관련하여 “제도·정책·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청사와 기자실은 국유재산에 해당하므로, 국유재산을 관리하는 관리주체인 피진정인들은 국유재산의 사용 목적을 고려해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 차별을 하지 않고 제공해야 한다“면서 “언론사 간 차별적 대우로 인한 평등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반영해 다양한 언론사가 사건을 취재하고 있고, 특히 사건이 일단락되는 법원이나 사건의 진행 현황 및 수사결과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검찰청은 매우 중요한 취재 대상임에도, 언론사의 취재 접근권을 주류 언론사의 집단인 ‘법조기자단‘에 위임했다“면서 “사실상 특정 언론사의 취재에만 편의를 제공하고 중소 및 신생 언론사의 취재는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주용성

인권위는 기본권으로서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 차원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사는 공공영역에서의 중요한 결정이나 사건 등을 취재하여 이를 보도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사가 자유롭게 취재원에 접근하여 취재하고 이를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중략)

언론 자유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언론사가 다양한 관점을 국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다원성의 기초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때문에 국가기관 등은 가능한 언론사의 취재에 제한이 없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셜록>과 <뉴스타파><미디어오늘>은 2020년 12월, 기자실 설치 및 출입증 발급 등을 관할하는 서울고법과 서울고검에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했다. 이후 <셜록>과 <뉴스타파>는 서울고검을, <미디어오늘>은 서울고법을 상대로 출입증 신청 거부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작년 3월 각각 제기했다.

<미디어오늘>은 작년 11월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이후 법조 출입기자단에 가입 못한 26개 언론사는 단체로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신청서‘를 서울고법에 제출했다. 서울고법은 “제출한 신청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논의 후 연락하겠다“고 <미디어오늘>에 밝혔다.

최용문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는 “법조기자단의 문제는 정보를 가진 검찰과 법원이 정보를 원하는 언론사를 쥐고 길들여 이 과정에서 유착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라면서 “법원과 검찰은 인권위의 의견표명대로 앞으로는 법조기자단 카르텔을 타파하고, 모든 언론이 법원과 검찰발 정보에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출입기자에 관한 규정을 새롭게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셜록>, <미디어오늘>, <뉴스타파>를 대리하고 있다.

박상규 <셜록> 대표는 이번 인권위 판단에 대해 “시대 변화에 맞게 정부 부처 공보활동도 달라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셜록><뉴스타파>가 서울고검을 상대로 제기한 ‘출입증 발급 등 거부처분 취소’ 소송 선고기일은 3월 31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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