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대구경북은 ‘보수의 성지’로 통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애국, 반공, 한국전쟁, 보훈 등을 강조한다.

이런 지역에서도 국가보훈처가 발행-관리하는 보훈번호를 조작하고, 그 결과로 이익을 얻으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 그 대담한 사람들을 만나러 지난 4일 대구행 KTX를 탔다.

보훈번호 조작 수혜자 가족을 만나기 위해 대구광역시 달서구 A병원으로 향했다. A병원은 장례식장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셜록> 기자는 지난 11월 4일 고OO 관리이사가 일하는 A병원을 직접 찾아가 반론을 들었다. ⓒ셜록

“들어오소. 따뜻한 차 잔 하입시더.”

병원 관리이사 고OO은 기자의 방문이 익숙한지 자기 사무실 문을 활짝 열었다. 소파에 앉자 따뜻한 녹차가 나왔다. 기자가 방문 목적을 밝혔다.

“대구은행에 따님 고OO 씨의 부정 채용을 청탁하셨죠?”

고 이사는 당당하고 태연했다.

“무슨 청탁인교?”

고 이사는 국가유공자가 아니다. 그는 국가를 위해 자기 몸과 마음이 다칠 정도로 희생한 적 없다. 당연히 그의 딸도 국가유공자 자녀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딸은 ‘국가유공자 집안 사람’으로 둔갑해 대구은행에 취업했다.

고 이사는 기자의 얼굴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대구은행 채용비리 때문에 재작년에 검찰에서 내 전화기, 사무실 다 압수수색하고 온 곳을 디볐지만, 지는 하나도 걸린 게 없십니더. 지는 오히려 피해잡니더. 억시로 억울합니다.

그런데 왜 그와 그의 딸 이름이 채용비리 유죄 판결문에 등장하는 걸까.

대구은행이 파견, 계약 (직원을) 수시로 뽑는다 캐가 그런 일 있으면 (내게) 연락해달라고 칸 겁니더. 내가 ‘우리 딸 뽑아주이소’ 이런 게 아닙니더. 자식 키우는 부모가 이 정도 부탁도 못하능교?“

청탁이 아닌 부탁이었다는 주장. 기자가 “그 정도 말을 하면 대구은행이 알아서 딸을 채용할 거라 예상한 거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상체를 기자 앞으로 당겼다.

“아입니더. 지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합니더. 진짜 몰랐습니더. 지는 박인규 당시 대구은행장하고 친하지도 않습니더!

대구은행 ⓒ셜록

박 은행장은 2014년 3월부터 채용비리로 구속기소된 2018년 4월까지 대구은행장과 DGB금융지주 회장직을 겸임한 인물이다. 친밀한 사이도 아닌 대구은행장과 그는 어떻게 딸 채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을까.

고 이사는 ‘지역 논리’를 꺼냈다.

지방에 있으면 서로 마이 압니더. 박 행장이 예전에 대구은행 지점장도 하고, 대구는 거의 대구은행밖에 없으이, 서로 오가며 쪼매씩 봅니더. 저도 박 행장 옛날에 보고 못 봤십니더. 지는 대구에 연고도 없는 사람입니더!”

이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고 이사와 대구은행장은 “서로 오가며 쪼매씩 보는” 사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대구은행은 보훈번호를 조작해 그의 딸을 불법 채용했다.

국어사전은 ‘보훈’을 이렇게 정의한다.

‘국가 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리어 나라에서 유공자나 그 유족에게 훈공에 대한 보답을 하는 일.’

보훈특채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나 그 유족을 특별 채용하는 걸 뜻한다. 보훈번호는 국가보훈처에서 유공자 혜택을 위해 부여하는 것이니, 이걸 조작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건 가볍지 않은 범죄다. 

보수의 성지, 신뢰가 생명인 은행이 보훈번호를 조작한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대구은행은 2016년 3월 11일 신입행원(7급 정규직) 채용 공고를 게시했다. 서류전형-간이면접 및 필기전형(인적성검사)-실무자면접-최종면접 순으로 채용한다고 밝혔다.

당시 대구은행 입사 경쟁률은 40대1. 대구은행은 이 공채에서 총 30명을 최종 선발했다. 해당 공채에 응시한 고 이사의 딸 고OO은 탈락했다.

그러자 박인규 대구은행장이 나섰다. 그는 임OO 대구은행 인사부장에게 지시했다.

“7급 공채에서 떨어진 고OO, 보훈대상자들 채용할 때 뽑으이소.”

대구은행은 신입행원 공채가 끝난 2016년 5월경 영업지원직 보훈특채를 진행했는데, 지원자 고OO 씨는 보훈대상자가 아니었다. 보훈특채 응시자는 ‘국가유공자 확인증’ 등을 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대구은행 인사팀은 ‘가짜 보훈번호’를 만들어 고OO 씨를 국가유공자로 조작했다. 고OO 씨는 2016년 6월 말 대구은행에 최종 합격했다.

자, 이제 남은 의문은 하나다.

“도대체 왜, 대구은행은 보훈번호 조작이라는 무리수를 써서 고OO을 채용했을까?”

의문을 풀어주는 단서는 고OO의 아버지가 관리이사로 일하는 A병원 1층에서 찾을수 있다. 그곳에 대구은행이 있다. 실제 A병원은 대구은행의 우수거래처다.

고 이사와 대구은행장은 “오가며 쪼매 보는” 사이가 아니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관계다.

“우리가 남이가?”

경북 안동대 총장이 연루된 신한은행 채용비리 역시 ‘대학 입점 은행’과 관계가 있었듯이 말이다.

병원에 입점한 은행은 쉽게 이익을 볼 수 있다. 우선, 병원비 등 대규모 운영자금을 관리하는 등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 또 병원을 이용하는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대구은행 ⓒ셜록

대구지방법원(재판장 손현찬)은 업무방해, 증거인멸교사,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인규 전 행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2018년 9월에 선고했다.

대법원은 박 전 행장의 채용비리 등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1심과 같은 형량의 실형을 작년 10월 확정했다. 1심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금융권 채용비리는 채용의 공정성과 평등의 가치 및 사회적 신뢰를 크게 짓밟는 중대한 범죄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사회를 가로막는 반칙과 불공정 그 자체다. 피고인의 행위는 채용 과정에서의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했던 일반 지원자들의 신뢰를 정면으로 저버리는 행위로서, 이들이 받은 허탈감과 배신감은 보상받을 길이 없고, 취업을 준비하는 잠재적인 지원자에게도 크나큰 상실감을 줬다.“

법원이 확정한 대구은행 채용비리 사건. 그렇다면, 가짜 국가유공자로 부정하게 합격한 고OO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그는 여전히 대구은행에 다닌다. 별일 없이, 아무 탈 없이.

기자는 채용청탁 사실 관계, 인사부 출신 피고인 재직 상황 등을 대구은행에 질의 했지만, 은행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법원에서 인정한 대구은행 부정입사자는 총 20명. 이중 17명은 2020년 11월 현재, 여전히 근무 중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지적을 받은 대구은행은 최근에야 부정입사자 채용 취소에 대한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보훈번호까지 조작한 은행과 부정입사자들. 그들은 부정으로 서로 엮이고 엮인, 정말이지 딱 이런 관계다.

“우리가 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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