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가 산만해 은행 업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순식간에 “큰 키의 호감형” 인물로 바꾼 기적같은 일을 사이비 교주가 아닌 신한은행이 해냈다.

기적을 행하는 데는 긴 주술 따위는 필요 없었다. 자고로 설명이 길면 권위가 떨어지는 법. 아버지는 아들 이름 석자를 말했고,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아랫사람에게 짧게 전달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탈락자였던 아들은 다시 살아나 오늘도 뚜벅뚜벅 은행으로 출근한다.

은행장, 부행장, 인사부장이 개입한 은밀하고, 조직적인 채용비리는 금융감독원 임원 아들을 위한 일이었다. 신한은행은 원칙, 법, 상식보다 금감원 임원 아들을 택했다.

금융권에 입사하려 오늘도 책을 펼치는 취준생의 노력을 비웃는 듯한, 면접에서 탈락한 응시자가 은행장 한마디에 정규직으로 채용된 ‘신한은행 금수저 생환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신한은행은 2015년 상반기 신규행원 채용 공고를 2015년 4월 15일에 게시했다. 특별 전형 등을 제외한 일반직 행원 120명 채용을 예고했다. 응시 자격에 연령, 학력, 전공 제한은 없었다.

채용 과정은 서류전형-실무자 면접-임원 면접 순으로 총 3단계를 예고했다. 이 공채에 약 1만1200명이 지원했다.

이 공채에 금융감독원 임원(은행, 비은행 검사 담당 부원장보) 이상구의 아들 이금수(가명. 당시 만25세) 씨도 지원했다.

이상구는 그 즈음 조용병 신한은행 행장을 만났다. 조 행장은 2015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신한은행 행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금융감독원 임원 이상구는 짧게 말했다.

“제 아들이 2015년도 상반기 신한은행 채용에 지원했습니다.”

조 행장의 답변은 더 짧았다.

“아들이 누굽니까?”

이상구는 아들 이름을 알려줬다. 이걸로 끝이었다.

신한은행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 관여하고 점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020년 1월 22일 서울 송파구 동부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조용병 행장은 신한은행 인사부장 김인기에게 지원자 이금수의 전형별 합격, 불합격 여부에 대한 피드백을 지시했다. 이때부터 신한은행은 지원자 이금수를 ‘특이자’ 명단에 등재하고 별도 관리에 들어갔다.

신한은행은 그동안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명단 리스트를 엑셀 파일로 만들어 관리했다. 지원자 중 국회의원, 유력 재력가, 금융감독원 직원 등 신한은행 영업 및 감독에 영향에 미칠 수 있는 외부 사람은 ‘특이자‘로, 신한금융지주 부서장 이상의 자녀는 ‘임직원 자녀‘로 분리했다.

‘명단 리스트‘는 인물 별로 경로, 비고, 의견 칸 등을 나눠 작성했다. ‘경로’ 란에는 특이자에 관한 전형 결과 등을 알려줘야 하는 사람을, ‘비고’ 란에는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에 대해 취합한 정보를, ‘의견’ 란에는 자기소개사항에 나와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정보를 적었다.

특이자 이금수의 ‘경로’ 칸에는 CEO(조용병 행장 지칭)가 적시됐다. ‘비고’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조 행장이 이금수의 정보를 인사팀에 알려주지 않아서다.

신한은행 인사팀은 이금수가 누구 자녀인지도 모른 채 리스트에 넣고 관리했다.

정당하게 서류전형을 통과한 특이자 이금수는 2015년 5월 29일께 실무자 면접을 봤다. 면접위원들은 그에게 ‘DD등급’ 점수를 매겼다. 면접에서 D와 C는 사실상 불합격을 뜻한다. 면접위원들은 이금수에 대해 이런 평가의견도 남겼다.

면접 내내 산만하게 손을 모으고 움직이는 등 전반적으로 집중하지 못함, 말투, 자세 등이 은행원과 다소 거리감이 있어 10순위를 부여함, 매사 소극적인 자세,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대고객 업무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재로 판단됨.”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공소장에 담긴 범죄일람표. 범죄일람표에는 부정채용 혐의 지원자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 이상구 금감원 전 부원장보 아들 이금수(가명) 씨는 1차면접점수가 조작돼 부정합격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공소장

금감원 임원 아들이 실무자 면접에서 떨어지게 된 상황. 신한은행 이때부터 조직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조용병 행장, 윤승욱 부행장, 김인기 인사부장이 일을 주도했다.

김 인사부장은 이금수의 탈락 사실을 윤 부행장과 조 행장에게 보고했다. 조 행장은 짧게 지시했다.

“다음 전형에서 잘 한 번 살펴봐.”

이미 떨어졌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김 인사부장은 조 행장의 ‘암묵적인 사인‘을 이해했다. 그는 인사팀에 면접점수 조작을 지시했다. 목표는 하나였다.

‘금감원 임원 아들 이금수를 합격시켜라.’

전산 입력을 완료한 성적을 수정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면접이 종료되면, 면접위원들은 인사전산시스템에 접속해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지원자들에 대한 면접 평가 등급과 의견을 직접 입력한다.

이렇게 전산에 확정된 성적은 누구도 임의대로 손댈 수 없고, 실제로 수정된 경우도 없다.

하지만 신한은행 인사팀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들은 전산 시스템에 손을 대 이금수의 실무자 면접 점수를 DD에서 BB 등급으로 상향 조작했다. 이들은 면접위원이 남긴 의견도 조작했다.

큰 키의 호감형으로 창구적합도 양호, 입행 준비 또한 양호한 점 고려, 외국어 역량, 금융권 준비사항 등을 고려해 B로 평가하고자 함.”

특이자 이금수 씨는 2015년 신입행원 채용에서 최종 합격했다. 신한은행이 전산 입력된 점수까지 조작해 이금수를 뽑은 이유는?

답은 그의 아버지한테 있는지 모른다. 당시 금감원 임원이었던 이상구는 2015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은행·비은행 검사담당 부원장보였다. 그는 신한은행을 포함해 시중은행에 대한 검사·감독 등을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한마디로, 은행 관리감독자가 피감기관에 본인 자녀 채용을 청탁한 셈이다. 이상구의 채용 청탁은 한 건이 아니다. 그는 우리은행에도 딸과 조카 채용을 청탁했다.

금융감독원 ⓒ남궁현

이 씨는 금감원 내부에서도 ‘사내 변호사 채용비리‘에 연루된 인물이다. 그는 금감원 총무국장 시절, 임영호 전 국회의원의 아들인 임OO 씨를 금감원 변호사 채용에 합격하도록 특혜를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9년 징역 10월을 확정받았다.

금감원 임원과 특수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일까? 신한은행은 2018년 초 금융권을 휩쓴 은행 채용비리 논란에서 거의 유일하게 배제됐다.

2018년 4월, 김기식 당시 금감원 원장은 신한은행 채용비리 관련 재조사를 지시했다. 금감원은 신한은행에서 총 12건의 특혜 채용 정황을 발견했다. 그제서야 금감원은 신한은행 채용비리 검사 결과를 검찰에 이첩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2018년 9월경 은행권 검사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감독원 특수은행검사국 관계자 A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한 참고인 조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 검사
    “이 당시(2017년 12월~2018년 1월) 신한은행에서 채용비리가 포착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 금융감독원 특수은행검사국 관계자 A씨
    “신한은행은 위 기간(2015년~2017년) 동안의 신입사원 채용서류 등을 모두 파기해 혐의점을 포착할 수 없어 수사의뢰에서 제외됐습니다.”

이후 조용병 행장은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 관여해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손주철)는 업무방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용병 전 행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올해 1월 선고했다.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조용병이 지원자 이금수의 1차 면접(실무자 면접 의미) 부정합격에 공모하여 가담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지원자 이금수 등은 1차 면접에서 공정한 절차에 따라 합격하지 않은 지원자들인 바, 피고인 조용병이 지원자 이 씨를 1차 면접에 합격시킨 행위는 위계로 해당 지원자들에 대한 2차 면접위원들의 면접업무를 방해한 행위에 해당한다.”

채용비리 관련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형을 확정받은 이광구 우리은행 행장과 달리, 조 행장은 징역형을 피했다. 이 전 행장은 청탁명부 지원자들의 합격 여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추천인 현황표‘를 보고, 본인이 합격으로 결정한 지원자에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는 방식으로 인사팀의 업무를 방해했다.

법원에서 “공정한 절차에 따라 합격하지 않은 지원자“라고 인정한 이금수 씨는 현재 어떻게 지낼까? 그는 아직 신한은행에 다니고 있다.

신한은행의 무조치는 사단법인 ‘전국은행연합회‘가 자정의 의미로 2018년 6월 제정한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과 배치된다.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 제31조에 따르면, 지원자가 부정한 채용청탁을 통해 합격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 은행은 해당 합격자의 채용을 취소 또는 면직할 수 있다. 신한은행은 전국은행연합회 사원은행으로 모범규준이 적용된다.

정무위원회 소속 배진교 21대 정의당 국회의원 의원실은 “판결상 유죄로 인정된 부정입사자의 채용을 취소할 계획이 있는지” 신한은행에 질의했다. 신한은행은 “해당 재판은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며, 재판 결과는 확정되지 않아 질의하신 계획에 대해 답변이 불가하다“고 답했다.

신한은행 ⓒ남궁현

1심 판결에도 끄떡없는 부정 입사자와 마찬가지로, 조 전 행장도 현재 승승장구 중이다. 조 전 행장은 올해 3월 신한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부정 채용 청탁자 이상구는 2016년께 금감원을 퇴사했다. 그는 현재 은행 전담 고용알선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사내 채용비리와 지위를 이용한 채용 청탁으로 문제가 됐지만, 어쨌든 그는 은행 관련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기자는 반론을 듣기 위해 지난 8월 19일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용병 행장을 만나 아들의 신한은행 지원 사실을 알렸는지“, “판결문에 적시된 사실을 인정하는지” 묻는 기자에게 그는 말을 아꼈다.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인터뷰) 협조하고 싶은데 정말 드릴 말씀이 없어서 이해 부탁합니다. 제가 진짜 힘들어서요.”

기자가 “현재도 아들이 신한은행을 재직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의 아들, 부정 입사자 이금수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는 “2015년 아버지의 청탁 사실을 알고 신한은행에 지원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르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채용비리 문제로 유죄 판결을 받은 조용병은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부정 청탁자는 오늘도 은행 인사 관련 일을 한다. ‘아빠 찬스’를 사용한 이금수는 여전히 신한은행 직원이다.

금수저의 아들은 좀비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세상, 흙수저의 아들 딸들은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한다. 좀비처럼.

(*앞서 기사에 가명으로 인용한 ‘이아무개’라는 이름은 기사 내용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가명일 뿐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 중입니다.

<부정 입사자 은행권의 ‘정유라’를 정리해 주십시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