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부등본 수천 장을 뗄 때보다 손가락이 더 떨렸다. 지출품의서에 작성한 비용은 기자가 근무한 지난 4년 동안 한 번도 청구해본 적 없는 금액이었다.

[지출품의서]
– 일시 : 2022년 01월
– 용도 : 농지법 기획 관련 등기부등본 5000통 발급
– 비용 : 총 300만 원

지출품의서를 작성하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당시 ‘데스크’ 박상규 기자의 표정을 살폈다. 이 일을 알 리 없는 박 기자는 노트북 화면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이틈에 그의 책상에 지출품의서를 몰래 올려놓았다.

한숨을 돌리며 정보공개 청구서 작성에 돌입했다. 청구 대상 지자체만 약 150곳, 총 740건이었다.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는 시야는 종종 흐려졌다.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아려왔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오른손 손목은 점점 더 시큰거렸다. 약 5000장의 등기부등본을 발급하는 일만큼 정보공개 청구서를 작성하는 과정도 험난했다.

대략 한 시간쯤 흘렀을까. 박 기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일십백천만…’ 입으로 숫자 세는 소리도 들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박 기자는 이미 기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그늘이 져 있었다. 그러곤 표정과 불일치한 말을 내뱉었다.

“어… 잘 진행되고 있지?”

하지만 눈빛은 다른 말을 했다.

‘김 기자, 잘 진행해야만 한다!’

박상규 당시 ‘데스크’ 기자. 지출품의서의 액수를 보고 생각에 잠긴 걸까. 절대 자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셜록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2021년 12월부터, 불법적으로 농지를 소유한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출발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21년 공개한 관보를 살펴보는 일. 6000장이 넘는 관보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농지를 소유한 고위공직자를 발견했다. 당사자나 그 가족이 농지(전, 답, 과수원)를 소유한 고위공직자는 총 544명이었다. 상속은 농지법상 예외 사유라, 제외한 숫자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 즉 농지는 농사지을 사람만 가질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 않은가.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에 필요한 기반이며, 농업과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한정된 귀중한 자원이다.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 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

농지법 제6조에도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자경)”고 못 박고 있다.

나랏일로 바쁠 고위공직자들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농사를 직접 짓고 있는 건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먼저 관보에서 모은 농지 소유 고위공직자 정보를 엑셀로 정리했다. 이후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약 5000장의 등기부등본을 발급해 농지 소유 사유를 확인했다.

그다음, 정보공개 청구서를 개별로 작성했다. 2021년 12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지자체 150여 곳에 청구한 정보공개 건수는 총 740건이다.

농지 취득 서류를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정보 비공개’를 결정한 지자체를 설득하거나, 싸우기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 확보한 자료는 고위공직자들의 ‘자경 여부’를 확인하는 확실한 근거가 됐다.

의왕, 여주, 당진, 공주, 세종, 부산, 그리고 제주까지. 김보경 기자가 약 7개월 동안 취재를 위해 이동한 거리는 왕복 약 4200km에 이른다. ⓒ셜록

서류 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전국투어’를 시작했다. 의왕, 여주, 당진, 공주, 세종, 부산, 그리고 제주까지. 산 넘고 물 건너 굽이굽이 숨겨진 농지를 찾았다. 기자가 약 7개월 동안 취재를 위해 이동한 거리는 왕복 약 4200km.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고속도로(421.9km)를 열 번 오간 것과 같다. 비행기로는 인천공항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4061km) 날아갈 수 있는 거리다.

수상하게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법원장, 부장판사, 시장, 지방의회 의원, 교육감 후보 등의 사례를 그렇게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부터 21편의 기사로 보도했다.

이중 명백하게 농지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에 대해서는 직접 형사고발도 했다. 고위공직자로서 도의적, 정치적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할 심각한 사례들이었다. 셜록은 지난해 6월 9일 참여연대와 함께 ▲정선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배우자와 딸 ▲김상돈 의왕시장과 배우자, 그리고 아들 ▲채평석 세종시의회 의원 등 총 6명이었다.(관련기사 : <서울고법 부장판사 가족, 농지법 위반 의혹 고발당했다>)

김상돈 민선 7기 의왕시장 ⓒ의왕시청

그리고 최근, 셜록이 직접 형사고발 한 사건 중 최초로 유죄를 인정받은 사례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1단독(법관 김길호)은 지난 15일 농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상돈 전 의왕시장의 장남 김○○ 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시장은 배우자와 함께 충남 당진시 순성면에 총 4725㎡ 규모(약 1431평)의 밭을 2005년 매입했다. 하지만 직접 경작하지 않다가, 2021년 장남 김 씨에게 증여했다.

당시 장남 김 씨는 서울 강남구에 살면서 헬스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김 씨의 등기부등본상 주소지와 해당 농지 간 거리는 약 83㎞. 자동차로 약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다.

다른 직업이 있는 사람이 왕복 3시간 거리를 오가며 1400평 땅에 직접 농사를 짓는다? 그럼에도 김 씨는 2021년 자기노동력으로 채소를 심겠다고 허위 서류를 관할 관청에 제출했다.

김 씨는 셜록의 형사고발 이후 약 1년 만에 1심에서 농지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았다.

형사고발을 대리한 서성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는 해당 판결에 대해 “2021년 LH 농지 투기 사건을 기점으로 법원이 농지 투기의 심각성, 경자유전 원칙의 훼손 등을 명시해 판결하는 추세”라며, “사법부가 아직 진행 중인 여러 농지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도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농지를 매입해 장남 김 씨에게 증여한 김 전 시장 부부는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됐다. 장남 김 씨는 유죄를 선고받은 현재까지도 해당 농지를 소유 중이다.

농지법 위반이 의심되는 김 전 시장의 농지는 또 있다. 김 전 시장과 배우자는 경기 의왕시 왕곡동에 위치한 농지를 취득한 뒤 농사를 짓지 않고 약 10년간 주차장처럼 사용했다. 무단 농지전용이 의심되는 상황. 농지전용은 농업생산 이외의 용도로 농지를 사용하는 걸 말한다.

하지만 경기의왕경찰서는 지난해 12월, 김 전 시장 부부에게 적용된 농지전용 혐의를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검찰에 불송치했다. 이들 부부는 현재도 해당 농지를 소유 중이다.

셜록이 직접 형사고발 한 농지투기 의혹 사건 중 최초로 유죄를 인정받은 사례가 나왔다 ⓒpixabay

셜록의 형사고발로 범죄 혐의는 인정됐으나, 재판으로 넘겨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 바로 정선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가족의 농지다.

정 부장판사의 배우자와 딸은 경기 여주시에 위치한 농지를 타인에게 무상 임대하고, 거짓으로 농지 관련 서류를 발급받은 혐의를 받았다. 검찰도 피의자 조사 결과 해당 농지에 대한 대리경작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정 부장판사 배우자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가 인정되나 검찰이 피의자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 기소까지는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같은 혐의를 적용받은 딸은 실행위자가 아니란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20일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모녀는 여전히 해당 농지를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아직 검찰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이도 있다. 채평석 전 세종시의원이다. 셜록은 지난해 4월 세종시 부강면에 있는 채 전 의원의 농지를 방문해, 대리경작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채 전 의원은 해당 농지를 지인과 함께 총 15억 원에 사들였다. 부강면에는 부강역과 북대전IC를 잇는 4차선 도로가 뚫릴 예정이다. 이 농지부터 부강역까지 직선거리는 불과 2.2km다.

지난해 4월 채 전 의원의 반론을 듣고자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는 기자를 피해 동네 부동산으로 몸을 숨기기도 했다.

채 전 의원 사건을 두고서는 경찰과 검찰의 줄다리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세종북부경찰서는 지난해 11월 사건을 ‘불송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올해 1월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지난 3월 또 한 번의 불송치 결정을 내린다. 검찰 역시 다시 한번 송치를 요청했고, 결국 경찰은 ‘삼세번’ 만에 해당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현재 수사를 벌이고 있다. 채 전 의원 역시 해당 농지를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셜록이 농지법 위반으로 고발한 고위공직자들 수사 결과 현황 ⓒ셜록

셜록의 보도 이후로도, 고위공직자들의 농지 투기 의혹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권 인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부터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인근 농지 불법 취득 의혹으로 비판받았다.

최 씨는 아파트 시행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일대 농지 수백 평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공시지가가 최소 두 배 이상 오른 땅을 매입 가격 그대로 가족 회사에 팔아 편법증여 논란도 제기됐다.

장관 후보자도 농지법 위반 등이 논란이 돼 국무위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24년 동안 자신의 소유 농지를 친척에게 무상 사용하게 한 혐의로 형사 고발당했다. 대구지검은 지난달 25일 정 전  후보자에 대해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현직 대통령실 인사도 농지법 위반 ‘흑역사’를 피하지 못했다.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로 거론되는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는 강원 춘천시 농지를 직접 경작하지 않아 농지 투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 특보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이던 지난 2008년의 일이다.

“피고인의 행위는 농지를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농지법이 정한 경자유전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범죄이므로 엄한 처벌을 통해 근절할 필요가 있습니다.”(김상돈 전 의왕시장의 장남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문 중)

대통령 장모부터 장관 후보자와 현직 판사, 시장과 지방의회 의원들까지.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마저 농지법을 가볍게 여긴다면,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이 무너지는 건 앞으로 시간문제가 아닐까.

이 원칙이 무너진다면, 농촌공동체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투기수단으로 변질된 농지와 농지 가격의 기하학적으로 증가는 예견된 일. 농지 투기 근절을 위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셜록은 앞으로도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의 못 말리는 농지 사랑. 이 비뚤어진 사랑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돼선 안 된다.

“매실 음료 만들어” “농촌에서 작품활동”… 의혹만큼 다채로운 ‘변명’들

고위공직자 농지 투기 의혹을 취재하며 서류와 싸우는 김보경 기자 ⓒ셜록

셜록이 보도한 사례 중엔 형사고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사건도 많았다.

▲먼저, 박효관 당시 부산고등법원 법원장. 2015년 박 법원장의 배우자는 부산 금정구에 있는 1078㎡(약 326평) 규모의 논을 약 4억 원에 매입했다.

셜록의 농지 투기 의혹 제기에 당시 박 전 법원장은 “(직접 농사를 짓고) 농지 수확물(매실)은 건강음료로 만들어 자가소비 하거나 지인에게 나눠줬다”고 설명했다. 겨우 ‘매실 음료’나 만들어 먹으려고 4억 원이 넘는 땅을 샀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박 전 법원장의 농지 투기 의혹은 2022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박 전 법원장은 올해 3월 퇴직했다. 배우자 이 씨는 여전히 해당 농지를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이승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장남도 농지 불법 취득 의혹이 제기됐다. 20대 청년인 이 판사의 장남 이○○ 씨는 직접 농사를 짓겠다면서 1만 5005㎡(약 4546평) 즉, 축구장 두 배 크기가 넘는 논을 2019년 취득했다. 그의 집은 서울 강남구, 농지는 충남 공주시에 있었다.

취재 당시 이 부장판사는 장남의 농지 취득에 대해 “미대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 중에 있어 한적한 농촌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농부 예술가’를 꿈꿨다는 이 씨는 2020년 미국 시카고로 유학을 떠났다. 이 씨는 여전히 해당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고용호 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도 농지 투기 의혹을 받았다. 그의 배우자는 2014년 지인과 함께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농지와 임야 약 1만㎡(약 3030평)를 12억 5000만 원에 사들였다.

해당 농지에서 제주 제2공항 예정지까지는 차로 약 10분 거리. 2022년 해당 농지의 시세는 평당 약 250만 ~ 300만 원으로 추정됐다. 고 전 의원 배우자가 농지를 매입했을 때보다(평당 약 45만 원) 약 6배 오른 가격이다. 제2공항 건설이 현실화되면 농지 가격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이미 고 전 의원 가족은 농지와 임야를 담보로 약 22억 원을 대출받았다.

▲가족 소유 농지에 도로가 지나가게끔 ‘셀프 예산’을 짠 시의원도 있다. 바로 이태환 전 세종시의회 의장과 김원식 전 세종시의원이다. 2019년 두 사람은 도로 예산을 편성했는데, 그 위치가 이 전 의장 모친과 김 전 의원 배우자가 각각 소유한 농지와 맞닿은 땅이었다.

감사원은 “도로개설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을 야기했다”며, 세종시의회 의장에게 두 사람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전 의장의 모친과 김 전 의원의 배우자 모두 해당 농지를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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