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관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는 2015년 1월에 꼼꼼한 판결문을 썼다.

“이 사건 농지는 1,655㎡(약 500평)로 그 면적이 적지 않고, 벼농사는 육묘, 이앙, 관리, 병충해방제 살포, 수확, 운반, 건조 등 각 작업단계마다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바, 원고가 위와 같이 여러 곳을 출장다니며 일을 하는 상황에서 퇴근 이후나 휴일에 휴식을 취하지 않고 이 사건 농지의 경작에 주도적으로 종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고등법원 2014누21738)

논농사의 특징은 물론 원고의 직업까지 고려해 자경(自耕), 즉 스스로 농사를 짓는지 여부를 살폈다. 박 판사는 2021년 2월 부산고등법원의 ‘넘버원’인 법원장 자리에 올랐다. 그가 타인에게 내린 과거의 판결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박효관 부산고등법원 법원장.ⓒ대법원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대한민국 <관보>에 따르면, 2022년 3월 현재 박 법원장의 배우자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일대에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농지의 형태는 답. 쌀을 재배하는 ‘논’이지만, 농업경영계획서상 주재배 작물에는 ‘채소’를 심겠다고 밝혔다.

해당 농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지난 2월 18일 오전 8시께,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광역시로 향했다.

박 법원장 배우자 소유의 농지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291번지에 있다. 부산역에서 차로 약 30분은 걸리는 곳이다. 마을은 한적했다. 오른쪽에 펼쳐진 수천 평의 밭에 비해, 주택은 몇 채 없었다.

도로 위 인적도 드물었다. 좌우를 살피던 시선을 거두고, 가방에서 지적도를 꺼냈다. 박 법원장 배우자가 소유한 농지는 지적도상 마을 안쪽에 자리했다.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폭의 길을 따라 걸었다. 10분 쯤 걸었을 때, 지적도가 가리키는 곳에 도착했다.

채소는 없었다. 추운 계절 탓만이 아니라, 채소 자체를 심을 수 없는 상태였다. 매실나무가 열 맞춰 심어졌고, 바닥은 검은색 천막으로 덮여 있었다.

박효관 부산고등법원 법원장의 배우자 이OO 씨는 2015년 7월 8일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필지 1곳 1,078㎡ 규모의 답을 4억 1천만 원에 매입했다. <셜록>이 지난 2월 18일 해당 농지를 찾아갔을 때는 매실나무가 심어져있었다.ⓒ셜록

혹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건 아닐까. 기자는 해당 농지 인근을 지나가는 마을 주민을 붙잡고 지적도를 가리키며 291번지의 위치를 물었다. 해당 농지 건너편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농민 A씨는 천천히 대답했다.

“어디 보자… (지적도를 가리키며) 여기 도로가 (해당 농지로) 오는 길이잖아요. 여기 건너편 농지가 우리 것이니까. … (해당 농지를 가리키면서) 요 필지겠네. (위치상) 요 정도 되겠네.”

A 씨는 매실나무가 심어진 농지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했다. 기자가 “나무 심어져 있는 이곳이 291번지 맞느냐”고 재차 묻자, A 씨는 해당 농지 앞까지 걸어와서 말했다.

“여기 땅 모양이 이상하게 생겼네. 이 지적도상 도면하고 이 땅 모양이 비슷하잖아요. 내가 볼 때는 나무 심어져 있는 이 땅이 (291번지) 맞는데?”

스마트폰을 지도 앱을 살폈다. 휴대폰 지도 역시 매실나무가 심어져 있는 땅을 화살표로 가리켰다.

농업계획서상 주재배 작물로 채소를 기재해놓고 실제로는 과수를 심어놓다니. 농지법 위반을 회피하고자 관리가 용이한 묘묙(어린 나무)을 심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농지 투기 수법이 생각났다.

박효관 부산고등법원 법원장의 배우자 이OO 씨는 2015년 7월 8일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필지 1곳 1,078㎡ 규모의 답을 4억 1천만 원에 매입했다. <셜록>이 지난 2월 18일 해당 농지를 찾아갔을 때는 매실나무가 심어져있었다.ⓒ셜록

박효관 부산고등법원 법원장의 배우자 이OO 씨는 2015년 7월 8일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필지 1곳 1078㎡ 규모의 답을 4억1000만 원에 매입했다. 농지를 취득하려는 사람은 농지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자체에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야 한다.

<셜록>은 이 씨가 부산광역시 금정구청에 제출한 농지 취득 관련 서류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냈다.

이 씨는 농지취득자격증명신청서에 취득 목적을 ‘농업경영’으로 명시했다. 농업경영계획서에는 2015년 8월부터 ‘자기노동력’으로 채소 재배를 하겠다고 신고했다. 농업기계 장비의 보유 현황에는 ‘분무기 등 영농장비 일체’를 적었다.

정리하면, 부산고법 법원장 배우자는 자기노동력으로 채소를 재배해 농업경영에 활용하기 위해 약 359평 짜리 답을 4억1000만 원에 매입한 것이다.

박효관 부산고등법원 법원장의 배우자 이OO 씨가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필지 1곳 1,078㎡ 규모의 답을 취득하면서 지자체에 제출한 농지 취득 관련 서류. 배우자 이 씨는 농업경영계획서에 자기노동력으로 채소를 재배하겠다고 기재했다. ⓒ셜록

이 씨는 농지 취득 관련 서류에 밝힌 대로 자기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어왔을까. 농지법상 농지를 보유하고도 자경하지 않으면 처분 의무가 발생한다. 농사 짓는 사람에게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씨가 직접 농지를 관리해왔다면, 마을 주민들은 그를 알 터. 기자는 같은 날 농지 주변을 서성이던 마을 주민 B 씨도 만났다. “291번지 농지 주인을 본 적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B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 땅 주인이 누군지 몰라요. 그런데 여기 주변 농지 대부분이 외지인들이 사놓은 땅이에요. 원래 50년 전부터 그린벨트 지역이었는데, 최근에 주변 농지들이 서서히 풀리면서 땅값이 많이 올랐거든요. 여기도 딱 보니까, 농지 사놓고 농사 안 지으면 벌금 나오니까 나무 심어놓았나 보네.”

B 씨의 말대로, 법원장 배우자는 다른 목적으로 농지를 매입한 걸까? 기자는 인근 부동산을 찾아가 해당 농지의 실거래가를 확인했다.

이 씨가 소유한 농지의 실거래가는 2022년 기준 1평당 약 150만 원. 2021년 4분기 기준 전국 농지 평균 실거래가(1평당 25만 원)와 비교할 때 6배 비싸다. 현 공시지가는 1㎡ 기준 18만6100원으로 농지 매입 당시 공시지가(8만2000원) 보다 2배 이상 상승했다.

공인중개사 C 씨는 “금정구 두구동 일대는 KTX 중간역사(노포역) 건설, 트램 설치, 추가 그린벨트 해지가 예정되어 있는 개발 호재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노포·정관선과 부산도시철도 양산선 일러스트레이션. 노포·정관선은 노포역(1호선)을 시작으로 해당 농지가 위치한 두구동을 지나 월평리, 정관신도시, 좌천역(동해선)을 연결하는 노선이다. 완공 목표 기한은 2035년이다. 부산도시철도 양산선은 부산도시철도 1호선 노포역부터 경남 양산 북정동을 잇는 경전철 사업이다. 이 사업은 이 씨가 매입한 이후인 2018년 3월 착공을 시작해 2024년 개통을 목표로 한다. 양산선 부지부터 해당 농지까지의 거리는 2.7km다. ⓒ오지원.

실제 양산시의회, 금정구의회, 기장군의회는 2019년부터 노포KTX 중간역사 설치를 건의하는 안을 공동 제안한 바 있다. KTX 중간역사 설치 요구 지역인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은 부산역과 울산역 사이에 있다. 노포동은 해당 농지와 차로 약 10분 거리다.

노면전차 ‘트램’ 구축계획은 아예 확정됐다. 부산시는 2022년 1월 ‘도시철도망 구축 계획 2차 변경안’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노포·정관선이 포함됐다. 노포·정관선은 노포역(1호선)을 시작으로 해당 농지가 위치한 두구동을 지나 월평리, 정관신도시, 좌천역(동해선)을 연결하는 노선이다. 완공 목표 기한은 2035년이다.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사업도 있다. 부산도시철도 양산선은 부산도시철도 1호선 노포역부터 경남 양산 북정동을 잇는 경전철 사업이다. 이 사업은 이 씨가 땅을 매입한 이후인 2018년 3월 착공을 시작해 2024년 개통이 목표다. 양산선 부지부터 해당 농지까지의 거리는 2.7km다.

농지법 제3조에 따르면,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법무법인 위민 변호사)은 “신규 영농인이 농지를 4억 원씩이나 주고 산 지점이 이례적”이라면서 “논(답)에 과실수를 심어놓고, 농사짓는 것처럼 보이게 외관만 갖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반론을 듣기 위해 박효관 부산고등법원장 측에 지난 2월 28일 서면 질문지를 보냈다. 박 법원장은 부산고등법원 공보판사를 통해 지난 4일 반론을 전했다.

박 법원장은 농지에 채소 대신 과수를 심은 이유에 대해 “주 1, 2회 주말영농으로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는 잡초를 감당할 수 없어, 무농약 재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채소 재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이 때문에) 2017년부터 채소 재배를 그만두고 그 자리에 매실나무, 아로니아, 돌복숭아, 참죽나무 등 다년생식물을 심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박 법원장은 “해당 농지는 집에서 차로 15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라면서 “자경을 통한 영농체험과 건강관리가 농지취득의 주된 동기로서 부부가 함께 가지치기, 퇴비 주기, 나무 지지대 설치, 열매 수확 등의 작업을 주로 주말을 이용해 직접했다”고 설명했다.

부산고등법원 ⓒ셜록

그렇다면, 농지에서 수확한 농산물(매실)은 농업경영에 어떻게 활용했을까? 박 법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재배능력 부족 외에도 유실수가 아직 어리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아니하여 생산량이 기대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수확물은 음식용 효소로 만들거나 한약재와 혼합하여 건강음료로 만들어 자가소비하거나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농업경영을 목적으로 농지 359평을 약 4억 원에 매입했지만, 막상 수확물은 자가소비 활용에 그쳤다는 이야기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관계자 D 씨는 “약 350여 평의 농지를 약 4억 원을 주고 매입했지만, 수확물을 자가소비로 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농업인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맞는 경영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으하하하! 그건 가격 상승을 노리는 농지 투기로 보이네요. 농지 약 300평에 수익률이 좋은 작물을 심어도 연간 순이익으로 100만 원 나오기 어려워요. 그렇다면 이 고위공직자의 사례 같은 경우 400년을 농사지어야 농지 매입비 4억 원을 충당할 수 있는 거잖아요.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직 생활 열심히 하시지 참…”

법률전문가와 시민단체 활동가 지적한 대로, 어쨌든 박 법원장 가족이 소유한 농지는 (미실현) 시세 차익이 발생했다. 개발현황과 지가상승의 상관관계 고려하면, 해당 농지 가격은 앞으로 몇 배, 많으면 몇 십 배 더 뛸 수도 있다.

아래는 농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공직자에게 선고된 판결문의 한 대목이다.

“투기 등으로 인한 지가상승의 불균형은 근로소득으로 성실히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을 가져오고, 일부 재산과 정보를 독식한 자들에게만 재화가 쏠린다는 생각을 심화시켜 사회적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전주지방법원 2021고단791)

부산고등법원의 수장인 박효관 법원장은 이 판결문 앞에서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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