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사는 27세 청년이 농사 짓겠다며 충남 공주시의 1만5005㎡ 크기 논을 취득했다. 축구장 두 개를 합친 면적. 게다가 그의 집에서 논까지는 145km 거리다. 강남 청년은 이 면적과 거리를 어떻게 감당하려는 걸까.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청년의 아버지는 이승련 서울고등법원 형사1-1부 부장판사다. 그는 딸 조민의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 재판을 맡아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 부장판사는 작년 6월, 이기택 전 대법관 후임 후보 17명에 포함되는 등 사법부에서 촉망받는 인물이다.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21년 공개한 <관보>에 따르면, 이 부장판사와 가족은 약 166억 7271만 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 그와 아내는 59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소유 중이다. 배우자와 차남은 비상장주식 총 99억 원어치를 갖고 있다. 당시 이 부장판사의 재산 규모는 사법부에서 4위였다.

이승련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 재산에는 위에 언급한 ‘강남 청년‘, 이 판사의 장남 농지가 빠져 있다. 그는 2021년 <관보>에 재산등록 고지를 거부했다. 재산등록 고지거부 심사기준 운영지침에 따르면, 직계비속은 재산등록의무자와 최소 1년 이상 주민등록표상 별도 세대로 분리돼 있으면 재산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셜록> 2020년 <관보>를 살폈다. 여기에서 장남 이 씨가 농지를 갖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 씨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에 위치한 필지 5개 총 1만5005㎡ 크기의 논을 증여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해당 농지의 실거래 가격은 총 3억100만 원.

증여의 경우에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관할 지자체에서 발급받아야만 농지를 취득할 수 있다. 농지법 시행령 제7조 2항에는 “소유 농지의 전부를 타인에게 임대 또는 무상사용하게 하거나 농작업의 전부를 위탁하여 경영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 신청인에게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직접 농사짓는 자, 자경(自耕)하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부장판사의 장남은 농사를 짓고 있을까?

지난 2월 17일 오후 1시경,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공주역로 향했다. 다시 공주역에서 차를 빌려 이 씨 소유의 농지로 움직였다. 내비게이션은 도로 한복판에서 도착지를 알렸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넓은 논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가드레일 옆 샛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한 손에는 지적도를, 다른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지도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농로 위를 약 5분 정도 걸었다. 지도는 산과 거의 붙은 저 안쪽의 농지로 안내했다. 산에 가까워질수록 지대도 높아졌다. 이 씨가 소유한 필지 5개 중 산에 가장 근접한 농지에 도착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승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장남 이 씨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에 위치한 논 1만5005㎡를 소유하고 있다. <셜록>은 2월 17일 해당 농지를 방문했다. ⓒ셜록

축구장 두 개(국제규격 7140㎡ 기준)에 해당하는 논은 잘 관리된 것으로 보였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씨는 2019년 7월 25일 충남 공주시 탄천면에 거주하는 증여자 이OO씨로부터 이 땅을 증여받았다.

<셜록>은 당시 이 씨가 공주시 탄천면사무소에 제출한 농지 취득 관련 서류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했다.

그는 농지취득자격증명신청서에 취득 목적을 ‘농업경영‘으로 명시했다. 농업경영계획서에는 2020년 3월부터 ‘자기노동력‘과 ‘일부고용‘으로 벼를 재배를 하겠다고 신고했다. ‘세대원의 농업경영능력‘ 칸에는 조부(당시 79세)를 함께 적었다.

정리하면, 27살 청년이 서울 강남에서 145km 떨어진 공주에 위치한 축구장 두 개 크기의 논을 자경하겠다고 관할 관청에 신고하고, 취득 자격을 인정받아 농지를 소유한 것이다.

이승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장남 이OO 씨는 농지취득자격증명신청서에 취득 목적을 ‘농업경영‘으로 명시했다. 농업경영계획서에는 2020년 3월부터 ‘자기노동력‘과 ‘일부고용‘으로 ‘벼’를 재배를 하겠다고 신고했다. ⓒ셜록

농지법상 농업인은 노동자를 일부고용 하더라도, 농작업의 2분의1 이상을 자기노동력으로 해내야 한다. 그가 정말 농사를 짓는지 여부는 마을 주민들이 알 터. 차를 몰아 덕지리마을회관으로 이동했다. 마을회관은 코로나19로 문이 닫혀 있었다.

가방에서 등기부등본을 꺼내 다시 살폈다. 농지 원소유자였던 증여자 이 씨의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공주시 탄천면 OO리…’

그 주소지에서 증여자 이 씨를 만났다. 자택 현관문 앞에서 이 씨에게 지적도를 보여주며 대화를 나눴다.

– 과거에 소유하셨던 덕지리에 위치한 땅이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난 잘 몰라. 명의만 갖고 있었어.”

– 명의만 빌려주신 거라면, 여기서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응, 근데 이 땅을 사용하려고 하는 겨?”

– 현 주인이 해당 농지를 직접 농사짓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땅 주인 찾아가서 물어봐요. 나는 80살 넘게 나이 먹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어지러워서 아무 것도 몰라. (예전) 기억도 안 나고.”

15년 가까이 농지를 소유했지만, 이 씨의 대답은 거의 “잘 모른다“로 끝났다. 이 씨는 “농사를 지은 적 없다“는 말도 했다.

이승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장남 이 씨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에 위치한 논 1만5005㎡를 충남 공주시 탄천면에 거주하는 이OO 씨로부터 증여받았다. <셜록>은 2월 17일 증여자 이 씨 자택에 방문해 입장을 들었다. ⓒ셜록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건 서울로 향하는 KTX 탑승 직전이었다. 중년으로 여겨지는 낯선 남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기자에게 소리쳤다.

“(충남 공주) 땅 때문에 아까 (집으로) 찾아왔다면서요! 왜! 왜! 뭐 때문에 그러는데요!”

기자가 “현 소유주인 이 씨의 자경 여부를 살피고 있다“고 설명하자, 신분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남성은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자경이요? 한국농어촌공사에 위탁 맡겨서 (임차농이) 농사짓고 있는데요? 알고 싶으면, 거기다가 물어보세요!”

이승련 부장판사의 장남은 농지 취득 약 1년 만에 한국농어촌공사에 임대 위탁을 맡겼다고 했다. 농사를 짓겠다고 농지를 취득 후 단시일 내에 한국농어촌공사에 위탁하는 건 대개 관련 법 위반을 피하는 ‘꼼수‘로 알려져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현재 ‘자경하지 못하는 정당한 사유‘나 ‘농지소유자의 농지 취득 후 최소 보유 기간’ 등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농지의 임대 등을 수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애초부처 농사지을 의사가 없는 사람들이 농지법 위반을 피하는 수단으로 이를 악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감사원도 2021년 10월 농림축산식품부 감사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농지소유자가 자경하지 못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어도 농어촌공사에 농지의 임대 등을 위탁할 수 있고 농지 처분 대상도 되지 않아, 농업경영 목적으로 취득한 농지를 실제로 자경하지 않은 채 소유하기만 하면서 향후 농지가격의 상승으로 재산상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등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기자는 지난 2월 24일,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한 임대 위탁 사유를 알고자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이 씨의 주소지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집에 없었다. 우편함에 질문지를 남겼지만,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 씨에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기자는 이승련 부장판사 측에 지난 2월 28일 서면 질문지를 보냈다. 이 부장판사는 서울고등법원 공보판사를 통해 지난 3일 반론을 전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주용성

그는 “농지법상 농지는 현재 영농을 하거나 향후 영농을 할 계획이 있는 사람도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면서 “장남은 2018년 6월 미대를 졸업하고 특별한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향후 진로를 고민 중에 있어 한적한 농촌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계획을 수립하고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적법하게 발급받았다“고 설명했다.

27세 아들이 축구장 두 배 면적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으면서 작품 활동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이 부장판사의 말은 다시 길게 이어진다.

장남은 졸업 후 여러 가지 진로를 모색하던 중 2020년 봄 미국 유학을 결정했습니다. 농지 소유자는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아니하는 농지는 그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년 이내에 해당 농지를 그 사유가 발생한 날 당시 세대를 같이하는 세대원이 아닌 자에게 처분하거나, 한국농어촌공사에 위탁해 임대를 하여‘야 하는데, 장남은 2020년 8월 8일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증여자 이OO 씨가 소유할 때부터 농사를 지어온) 이전 경작자 A와 임대 위탁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농지 취득 및 임대차 과정 모두 위법 사항은 없습니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 부장판사의 20대 아들은 2019년 7월 벼농사를 짓겠다며 농지를 취득했다. 하지만 유학을 가야 해서 1년 뒤에 농지를 한국농어촌공사에 임대 위탁했다.

벼농사를 꿈꿨다는 이 씨는 2020년 8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해 현재 유학 중이다.

이승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장남 이 씨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에 위치한 논 1만5005㎡를 소유하고 있다. 그는 농지 취득 약 1년만에 한국농어촌공사에 해당 농지를 임대 위탁했다. ⓒ오지원

기자는 장남의 자경 여부를 파악하고자 실경작자 A 임차농을 수소문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A 씨는 2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략 2008년부터 한국농어촌공사 통해서 증여자 이 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지금까지 농사짓고 있어요. (증여자 이 씨가 이 부장판사 장남 이 씨에게 농지를 증여한 이후) 새로 임대차 계약서 쓸 때 (이 부장판사 아들 이 씨) 한 번 봤지. 근데 이런 건 왜 물어보세요?”

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법무법인 위민 변호사)은 “원소유주 때부터 자경하지 않은 약 4500평의 논을 영농 경험도 없는 20대가 증여받고 자경하겠고 밝혔는데, 애초에 영농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는 “본인 해명에서 ‘한적한 농촌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답했는데, 이는 장남의 영농 의사가 없었다고 봐야 할 듯하다“고 꼬집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판사의 장남은 2020년 3월부터 논농사를 짓겠다고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자경하지 않았다.

현행 농지법 제6조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해당 토지의 개별공시지가에 따른 토지가액에 해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 씨는 정말 농사 지을 마음이 있긴 했을까?

독자 여러분께 기사 수정과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

<셜록>은 3월 20일 자 기사 “‘166억 재산’ 이승련 판사 장남의 불법 농지 취득 의혹”을 보도하며 “이승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장남 이OO 씨가 충남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에 위치한 필지 5개 총 1만5005㎡ 크기의 논을 친할아버지 이OO 씨로부터 증여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셜록>은 등기부등본, 농업경영계획서, 반론 답변서 등을 통해 이승련 판사의 20대 장남 이OO 씨에게 농지를 증여한 사람을 그의 부친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셜록>은 후속 기사를 준비하던 중 증여자가 이 부장판사의 부친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3월 30일 서면 답변서를 통해 “장남은 외할아버지로부터 증여받아 농지를 취득했고 이후 농지은행을 통해 임대 위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셜록>은 해당 기사에서 사실오류를 정정합니다.

심각한 사실 오류에 대해 이승련 판사와 가족, 독자 여러분에게 사과의 마음 전합니다. 앞으로 사실 확인에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이승련 부장판사 장남 농지 관련 사실오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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