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못 챙겼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몰랐습니다.“
“아예 몰랐습니다.”
“몰랐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이렇게 모르겠다는 걸까. 4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 출석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의 답변이다.
이소라 서울시의원(비례대표)은 행정사무감사에서,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운영하는 우촌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비리에 관해 질의했다. 하지만 정근식 교육감에게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부모 부담금이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1년 치 학부모 부담금은 1480만 원(2022년 기준). 우촌초는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로 얼룩진 과거를 갖고 있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은 전 이사장인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부풀리고, 미리 섭외한 업체가 입찰에서 선정되도록 사업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적발했다. 그해 5월 최은석 교장, 이양기 교감, 유현주, 박현주 등 교직원 6명이 공익신고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외에도 학교장 업무방해, 학교 예산 횡령 등 각종 비리가 밝혀졌다.(관련 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학교 측은 제보자들을 학교 밖으로 내쫓고, 무더기 고소·고발에 소송까지 걸었다. 긴 법정 싸움 끝에 현재 학교로 돌아간 교직원은 이양기 전 교감이 유일하다.
2020년 8월 서울시교육청은 학교법인 일광학원 임원 모두의 취임승인을 취소했다. 하지만 일광학원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지난 9월 10일 일광학원의 패소로 끝났다. 무려 4년 동안 이어진 싸움이었다.
우촌초는 그동안 감사를 거부해왔다. 서울시교육청과 행정소송 중이라는 핑계로 교문을 굳게 닫고 열어주지 않았다. 2021년 이후 해마다 실시하는 종합감사는 물론, ▲리조트 회원권 구매 건 ▲학교회계 약 48억 원 지출 건 ▲학부모 불법찬조금 모금 의혹 건 등 감사를 전부 거부했다.(관련 기사 : <우촌초, 교비로 ‘억대’ 리조트 회원권 사고 감사는 거부>)
우촌초와 서울시교육청의 ‘악연’은 이처럼 뿌리 깊다. 정근식 교육감을 대신해 이소라 의원의 질의에 답변한 감사관이 “대화가 안 된다”고 말할 정도다.
이소라 의원 : “셜록 보도에 따르면, 전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주무관이 ‘관할 교육청에 감사 거부 이렇게까지 하는 곳은 처음이다'(라고 말했고), 교육청 대리 변호사도 ‘감사 거부할 거면 학교가 아니라 학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 “교육청 내부에 현존하는 (감사 거부가) 가장 심한 학교입니다. 교육청과 대화가 안 되는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행정사무감사장에서 “모른다”는 답변만 다섯 번 연속 반복한 교육감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정 교육감은 보궐선거를 통해 지난달 17일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행정사무감사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 크다.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은 의회의 ‘존재의 이유’. 1년에 한 번 서울 시정 구석구석을 시민의 눈으로 살피고 따지는 행정사무감사는 서울시의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지금 우촌초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3년간 하지 못한 감사 문제 ▲공익신고자 복직 문제 ▲보복성 소송 철회 문제 등, 모두 정 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이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정 교육감의 태도에 실망감을 숨기기 힘들다.
행정사무감사 전 시의회가 교육청에 요청하는 자료들을 통해서도 사전에 충분히 질의 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은 정 교육감 개인의 ‘면접고사’가 아니지 않은가. 정 교육감 혼자 행정사무감사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면, 다섯 번의 “모른다” 속에서 우리는 서울시교육청의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촌초는 2021년 이후 서울시교육청의 모든 감사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서울시교육청은 그에 대한 법적 조치는 따로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이소라 의원의 질의에,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이 대신 답했다.
“(일광학원에 대한) 법적 조처를 검토했지만, 성북강북지원청에서 감사 거부를 이유로 형사고발한 사건이 무혐의로 처분됐습니다. 그런 사례로 비춰서 무리하게 법적 조처를 취하는 걸 조심하고 (학교 측에 감사에 응하라고) 요구를 했었습니다.”(감사관)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후, 성북강북교육지원청은 지난달 16~22일 우촌초 종합감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종합감사는 2021년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우촌초 학교 업무 전반을 두루 살펴보는 목적의 감사다. 3년간 하지 못한 감사를 일주일 만에 해야 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감사를 기대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 의원은 “교육 현장이 비리의 공간이 되면 안 된다”며, 서울시교육청에 감사TF를 구성해 철저한 감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종합감사에서 의문점을 발견하면 추가 감사를 할 수 있다”며, “성북강북교육지원청과 상의해 만반을 준비를 하겠다”고 답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