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는 분홍색 보자기에 싸인 유골함과 추모 사진이 놓여 있었다. 눈길은 사진에 쓰여 있는 문구로 향했다.

“아픔 없는 곳에서 따스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너와 보낸 시간들, 너의 모습들 평생 기억할게. 가끔 꿈에 놀러 와줘.”

얼마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넌 포포. 오직 싸움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투견이다.

“포포가 유난히 저를 잘 따랐어요. 제가 참 아꼈었는데 작년 겨울에 죽었어요. (동물권단체) 케어한테 포포 사체를 인계받아서, 제가 개인적으로 장례를 치러줬죠. 얘가 ‘죽어서야 내 품에 왔구나’ 생각이 드는데, (이미 죽어버렸으니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거죠. 너무 불쌍해 죽겠어요.”

창가에 놓인 포포의 유골함과 추모 사진 ⓒ셜록

임희진은 동물권단체 케어(이하 케어) 전 동물관리국장이다. 케어의 불법 안락사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공익신고자다.

케어 불법 안락사 사건의 중심에는 박소연 당시 대표가 있다. 박 전 대표는 개와 고양이 등 구조동물 98마리를 불법 안락사했다. 동물 보호 공간을 확보하고 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로 인해 ‘법적으로 안락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동물들이 죽었다.

임 전 국장은 박 전 대표의 지시를 받아 불법 안락사에 가담했다. 그는 박 전 대표의 지시에 따라 안락사를 시행할 동물들을 선정한 후 수의사에게 넘겼다.

하지만 임 전 국장은 “동물을 위해, 더는 못하겠다”며 2019년 1월 공익신고에 나섰다. 본인 역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감수한 양심 고백이었다.(관련기사 : <“박소연 지시로 개, 고양이 230마리 죽였다”>) 호루라기재단은 임 전 국장의 공을 인정하며 ‘2019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케어의 불법 안락사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공익신고자 임희진 ⓒ셜록

임 전 국장은 2019년 7월 케어를 퇴사했다. 일명 ‘사무실 공동감금 사건’ 때문. 박소연 당시 케어 대표는 공익신고자 임 전 국장을 사무실에 감금하고 욕설을 하며 퇴직을 강요했다.

“너 하늘이 무섭지 않니? 밤길 조심해.”

너 때문에 개들이 다 죽고 있어, 이 썅X아. 도살되고 있다고. 그나마 안락사라도 해주는 게 좋다고 너는 너 그런 X 아니었어?”

하늘이 널 지켜볼 거야. 평생 너와 네 딸을 지켜볼 거야. 평생 양심 괴롭게 네가 어떻게 사는지 내가 두고볼 거야.”

케어 남성 직원 두 명은 사무실 문을 막고 임 전 국장을 약 7분간 감금했다. 이때 박 전 대표는 임 전 국장의 휴대폰을 빼앗아 던지거나, 옷과 팔을 잡아당겼다. 임 전 국장은 사직서를 제출한 이후에야, 케어 사무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임 전 국장은 박 전 대표를 공동감금 및 강요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사건을 우발적인 다툼으로 보고 박 전 대표를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던 사무실 공동감금 사건. 하지만 임 전 국장은 ‘재고소’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달 5일, 박 전 대표를 공동감금 및 강요, 모욕죄 혐의로 재고소했다.

박소연 케어 당시 대표는 개와 고양이 등 구조동물 98마리를 불법 안락사했다. ⓒ동물권단체 케어

사무실 공동감금 사건이 발생한 지 약 5년. 임 전 국장은 왜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걸까.

임 전 국장은 현재 경기도 모처에서 애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8일, 그곳에서 임 전 국장을 만났다.

“제가 (애견 카페에서) 돌보는 애들(학대견, 유기견 의미)이 너무 많아지니까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가 없더라고요. 서울 집에서 매일 아침 이곳으로 와서 청소하는 게 일이에요. 애들 밥통, 물통 갈아주고 똥 치워주고 마당에서 뛰어놀게 하고…. 애들 다 챙겨주고 저녁에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일상이에요.”

임 전 국장이 입은 검정 바지엔 노란 빛깔의 강아지 털이 한 움큼 붙어 있었다. 두 손은 거칠다 못해 군데군데 갈라졌다. 그 손으로 그를 향해 달려오는 강아지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현재 그가 카페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는 총 24마리다. 여기엔 학대견, 유기견, 장애견 등이 포함돼 있다.

임희진 전 국장의 두 손은 거칠다 못해 군데군데 갈라졌다. 그의 바지에는 강아지 털이 붙어 있다. ⓒ셜록

임 전 국장이 재고소를 결정한 배경에는 새로 확보한 증거가 있다. 사무실 공동감금 사건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직원 3명이 최근 임 전 국장을 위해 증언을 하고 나섰다. 이중 한 명은 박 전 대표의 지시를 받고, 임 전 국장이 있는 사무실 문을 직접 막았던 남성 직원이다.

박소연 전 대표는 저 포함 남자 직원들에게 ‘임희진 못 나가게 막아!’라고 지시를 하였고, 저희 남자 직원들은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시간이 흐를수록 박 전 대표의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실망도 했습니다”(2023. 4. 13. 정○○ 진술서 일부 발췌)

‘사무실 공동감금’ 사건에서 공동감금 및 강요죄의 공소시효는 7년. 그리고 모욕죄(5년)의 공소시효는 올해 7월 1일 끝난다. 임 전 국장은 공소시효가 지나기 전 수사기관의 판단을 다시 한 번 받고 싶었다.

“시간이 5년이나 흘렀는데도, 그날만 생각하면 밤에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여요. 당시에 느낀 공포감과 수치심에 잠을 못 이루겠더라고요. 녹취 음성만 들어도 폭력적인 상황인데, 검찰은 단순 다툼으로 해서 불기소 처분을 했잖아요. 공익신고자로서 이런 수모를 겪었는데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게 한이 되더라고요. 다시 한번 수사기관의 판단을 받아보려 합니다.”

임희진 전 국장은 사무실 공동감금 사건에 대한 수사기관의 판단을 다시 한번 받고 싶다 ⓒ셜록

박소연 전 대표는 불법 안락사 혐의로는 이미 법의 심판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법관 심현근)은 지난해 2월 동물보호법, 농지법, 부동산실명법 위반 등 총 10가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실형을 선고했지만, 도주 우려는 없다며 법정구속 하진 않았다.

임 전 국장 역시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함께 기소됐지만, 법원은 그에 대한 형을 면제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 임 씨가 공익신고자로 인정된 점을 참작한다”고 설명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받을 때 ‘나를 기소해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어요. 제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되면, 당연히 박 전 대표도 기소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막상 기소되니까 너무 무섭고, 그 감정이 참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래도 법원에서 형 면제를 선고해서 그동안의 공익신고를 보상받은 느낌이었어요. ‘공익신고자가 형 면제를 받은 사례는 임희진이 최초’라고 말한 시민단체 사람도 있었어요.”

박소연 전 대표는 현재 춘천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그는 불법 안락사 사건과는 다른 사건인,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지난 1월 19일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소주병을 들고 형사기동대 차량 앞을 막아서는 등 경찰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다.

케어의 불법 안락사 폭로 후 2019년 12월, 임 전 국장은 호루라기재단이 주는 ‘호루라기 상’을 받았다. ©셜록

임 전 국장은 공익신고를 후회한 적은 없을까.

과거 돌아간다면 공익신고 안 할 거예요. 케어 보호소에 있는 애들은 (후원자들이 후원을 끊지 못하게끔) 볼모로 잡혀 있고, 바뀌는 건 하나도 없고요. 애들이 보호소에서 방치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요. 성격상 아예 눈감아 버릴 수도 없겠지만요.”

입으로는 “공익신고를 후회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다. 사무실 공동감금 사건으로 박 전 대표를 재고소한 것처럼 말이다.

“이미 저지른 이상 제가 안 할 수 없잖아요. 지금 이 상태에서 손 놔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떻게든 기를 쓰고 하는 거예요. 저도 키우고 있는 강아지들 신경 써야 하지, 우리 딸도 돌봐야 하지, 참 힘들어요. 그래도 끝까지 간다. 어쨌든 제가 벌인 일이니까 끝까지 가야죠.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임 전 국장 ⓒ셜록

마지막 질문을 마치고 임 전 국장과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임 전 국장은 차 뒷좌석을 트렁크처럼 썼다. 개, 고양이를 망라한 동물 사료가 차에 가득했다. 그는 밥 먹으러 가기 전 길고양이들을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여기 동네에도 길고양이들이 꽤 많더라고요. 인적이 드문 동네다 보니까 길고양이들이 먹을 게 없어요. 세 군데 정도 돌면서 사료랑 물 주고 있거든요. 매일같이 사료를 주니까 길고양이들이 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와서 먹더라고요. 오늘도 밥 먹기 전에 애들(길고양이들) 밥부터 챙겨야겠어요.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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